느긋하게 기다려주기로 다짐하는 하루하루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며 아이의 공부방을 세팅해 주기로 했다. 지난 학기는 매주 숙제만 확인해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부엌 식탁에 나란히 앉아 공부를 했지만, 이번 학기부터는 구글 미트(Google Meet)를 활용해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아이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남편의 오피스에 있던 책상을 3층 아이 방으로 옮겨주고, 오피스에는 좀 더 큰 사이즈의 책상을 중고로 데려왔다. 아이 침대 옆에 책상을 두고 연필, 색연필, 형광펜, 노트, 마커 등을 정리해 놓으니 아늑한 공부방 분위기가 났다. 부엌 식탁에서 공부하다 과자도 꺼내먹고 괜히 냉장고를 한 번씩 여닫으며 돌아다니던 아이가 공부방 책상 앞에 앉아 크롬북으로 수업을 듣게 된다니, 그새 또 많이 컸구나 싶었다.
드디어 가을학기 온라인 개학일. 학습 사이트에서 아이 반으로 들어가니 구글 미트 링크와 코드가 있었다. 아이는 코드를 넣고 ‘교실’로 들어가 오전 9시에 담임 선생님과 만나 인사를 했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백인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목소리만 들어봐도 밝고 친절하고 따뜻한 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의 집 공부방이나 책상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엄마나 아빠가 옆에 앉아서 도와주는 가정도 있었고, 아이 혼자 참여하고 엄마가 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참견하는 가정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마스크와 헤드폰을 끼고 앉아있는 걸로 보아 부모가 모두 일하러 가고 탁아소(daycare) 같은 기관에서 온라인 수업에 들어온 것 같았다.
다음 시간은 체육이었다. 구글 미트에서 체육 코드를 넣고 들어가 화상으로 체육선생님을 만났다. 미리 찍어둔 동영상 링크를 타고 들어가 디스코 댄스를 따라 하는 게 ‘체육’이었다. 각자의 방구석에서 동영상을 틀어놓고 쿵쿵거리며 디스코 댄스를 추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세상이 어쩜 이렇게까지 변해버렸을까.
체육 수업이 끝나고는 다시 담임선생님 코드를 넣고 교실로 들어갔다. 다음 시간은 수학이었는데, 첫날은 "잘 들리니? 잘 보이니? 음소거해줘. 카메라는 켜 둬”만 반복하다 끝나버렸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학습 사이트에 접속하다 보니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하고,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해서 튕겨나갔다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소리가 끊어지기도 하고 정말 난장판이었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티를 아직 못 벗은 나는 분노 게이지가 점점 올라갔고, 오전 내내 공부방과 거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과연 미국에서 온라인 교육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의구심만 가득해졌다.
오전 9시부터 11시 반까지 쉬는 시간 두어 번을 빼고 계속 수업을 했고, 11시 반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었다. 학교를 다녔더라면 점심시간 전이나 후 바깥에서 놀이를 하는 Recess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점심시간에 엄마가 만든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엄마도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 옆집 아이들이 초인종을 눌렀다. 제각각 집에서 수업을 듣다가 점심을 먹고는 밖으로 뛰어나와 놀기 시작했다. 그중 ‘학교’라는 곳을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 둘이나 있었는데, 두 아이 얼굴이 세상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이 난리통에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함께 뛰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당분간 감사 제목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1시가 되기 직전, 집집마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A야, 수업 시작한다!” “L아, 냉큼 들어와라!” “M아, 학교 가야지!” 소리 지르는 동네 아줌마들도 깝깝하기는 마찬가지일 거였다. 아이들을 위해 누가 수업 시작종을 좀 쳐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시간 후에는 영어 리딩 시간이었는데, 첫 수업에서는 아이들의 독서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각자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이 짧은 동화책을 한 권 읽어주신 후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다. 화면 앞에서 손을 들고 있다가 선생님이 지목하는 학생이 음소거 버튼을 눌러 마이크를 켜고 발표를 하는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영어가 아직 서투른 아이가 하루 네다섯 시간씩 온라인으로 수업과 아이들의 토론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겨워 보였다.
2주가 지난 후 담임선생님과 온라인으로 학부모 상담을 했는데, 아이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발표도 잘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즉각 물어본다며 아이의 적극적인 태도를 칭찬해 주셨다. 아이가 한국에서 이민 온 지 1년이 되어가는데, 메릴랜드로 이사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이도, 엄마도, 너무 힘들었겠다고 공감해주시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참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한 주, 두 주,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트가 다운되거나 구글 미트가 얼어버리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아이도 나도 온라인 수업 방식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다. 가끔 숙제를 다 해놓고 제출 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미완성된 숙제를 제출해버리는 일도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을 써놓기도 하고, 풀이과정을 쓰지 않고 답만 달랑 써서 제출해 점수가 깎이기도 한다. 왜 이렇게 꼼꼼하지 못하냐고 분노 폭발도 했다가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했다가 내 상태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요즘은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되찾고 있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찬찬히 다시 읽고 생각해보자” 아이를 다독거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의 적응력은 생각보다 빨라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수업에 참여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숙제를 업로드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온라인 교육 방식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강조한 대로 느긋하고 여유롭게 기다려준다면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온라인 교육이라는 전대미문의 산을 함께 오르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면서, 아이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고되지만 보람 있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자녀들에게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