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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Sep 22. 2020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두 번째 챕터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우리 가족이 메릴랜드에 안착한 직후 코로나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곧이어 메릴랜드 주에도 자가격리 명령(Stay-at-home Order)이 내려졌다. 모든 학교들은 휴교에 들어갔고, 주민들은 장을 보러 가거나 가벼운 운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외출을 자제했으며, 본질적인 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업체들은 당분간 휴업을 하거나 재택 근무령을 내렸다.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활동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하루 종일 집에 콕 처박혀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미국의 확진자 증가세를 확인하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고, 911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또 누군가가 실려가나 보다, 가슴이 철렁했다.


미국 전역의 주지사들이 토론하는 걸 들어보면 무증상 확진자라는 개념 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굳이 일반인들이 쓸 필요가 있냐고, 아픈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집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 한숨만 깊어졌다. 비상사태 선포 전부터 이미 마스크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메릴랜드주 래리 호건(Larry Hogan) 주지사의 영부인이 유미 호건(Yumi Hogan)이라는 한국분인데, 메릴랜드주는 영부인의 인맥을 통해 한국에서 전세기로 코로나 테스트 키트를 50만 개나 공수해 오고 초기부터 한국을 벤치마킹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기를 강제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비교적 빠릿빠릿하게 대처하는 주로 오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마트에 데리고 다니고 싶지 않아서 남편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장을 봐 왔다. 한국에서 어머님과 막내 동생이 보내준 KF94 마스크로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눈으로도 바이러스가 침투할지 몰라 안경도 쓰고, 양손에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마트에 갈 때마다 첩보영화를 찍었다. 특히 코스트코는 전쟁터 같았다. 입장 인원을 제한해 몇 백 미터씩 줄이 늘어서 있었고, 입구에서 안내하는 직원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위해 6피트(2미터)씩 떨어지라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이 안된다고 소리를 질러대고,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째려보았다. 매장 안의 직원들도 카트를 한쪽 방향으로만 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앞사람과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채찍을 후려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화장지, 손세정제, 비누, 라텍스 장갑, 청소용품은 물론 물, 파스타면, 통조림, 냉동식품 같이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한 식품들, 빵, 우유, 계란, 닭고기 같은 주식 재료도 사라져 구하기가 힘들었다. 식료품이나 물 사재기야 이해가 되었지만 화장지는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니고 부피도 큰 것을 왜들 그렇게 사 쟁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도 화장지가 점점 떨어져 가면서 마트에 갈 때마다 화장지 코너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편의점에 가면 아주 가끔 보이는 네 롤씩 묶어 파는 얇은 화장지라도 있을 때마다 사 와야 했다.


목숨 걸고 입장하는 코스트코 전쟁터 (Photo by dreamersonya)


주중에는 집에서 온라인 스쿨을 하는 아이의 과제를 봐주면서 재택근무하는 남편까지 네 식구의 식사를 챙겼다. 냉장고와 냉동실, 팬트리(식료품 보관 공간)에 사 쟁여놓은 식재료들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음식 종류 2-30가지를 냉장고 앞에 써붙여 놓고 한 주를 시작했다. 냉장고를 효율적으로 파먹기 위한 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 끼니 뭐 해먹을지 고민할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있었다. 외식은 상상도 못 하고 외부에서 픽업해와 먹는 것조차 불필요한 외출로 느껴져 주야장천 집밥을 해 먹었다. 복잡한 한 끼, 간단한 한 끼, 지난번에 먹다 남은 반찬으로 한 끼, 강약중강약 힘을 줬다 뺏다 하면서 리듬을 탔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육수를 한 솥 끓여 냉장 보관해놓고 쓰고, 국이나 수프, 양념한 고기류도 두 번 먹을 걸 만들어 반은 얼려놓기도 했다. 역시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나 적응을 하게 마련이었다.


삼시세끼 집밥 - 카레돈가스, 비빔밥, 월남쌈, 길거리 토스트 (Photo by dreamersonya)

 

그제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네 식구가 집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나니 동물적 감각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조금 정신이 들면 새로운 곳에 이사 와서 회사도, 학교도, 교회도 가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못하는 생활이 외롭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민 와서 이제야 두 번째 챕터를 열게 된 마당에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함께 앓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때에 노아의 방주 같은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고 지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했다. 코로나로 건강을, 사랑하는 가족을,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잃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며 자족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복에 겨운 것인가. 짜여진 일정도, 만날 사람도 없으니 그저 편안하고 아늑한 우리 집에, 또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겨있으면 되는 삶이란 또 얼마나 푸근한가. 정해진 시간까지 가야 한다고 서두르고 재촉할 필요 없이 아이들과 함께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도 하고, 개울에 돌멩이도 마음껏 던질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여유로운가.


고립되고 단절되었지만,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담백한, 다른 모습의 행복을 발견한 것 같은 희한한 기분도 들었다. 팬데믹 속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코로나가 퍼지기 직전 기적적인 타이밍에 취직하고 이사할 수 있었던 덕분이니 감사밖에는 할 게 없었다. 지금이라는 절대시간과 여기라는 절대공간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나와 우리 가족이 서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더욱 감사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속히 회복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이 귀한 기회를 더 깊이 있게,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동안 당연한 듯 감사 없이 누려온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를 회복하고 표현해야겠다는 결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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