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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달 Jan 07. 2020

지극히 개인적인 오늘의 사색

회사에서 오늘도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하다 보니 느끼는 게 많다.

개인적인 주관으로 어르신이라 불러주고 싶은 꼰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장에는 어르신(?)이 존재한다. 꼰대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쓰지 않기로 한다.

 20대 초반에는 직장 내 어르신이 그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생각을 했었다. 괜한 반항심에 시크한 표정으로 어르신 대우를 해주지 않아 눈총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점점 나이가 들고 보니 나 역시 비슷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도 든 적이 있다. 마음에도 없지만 나한테 눈웃음 보이며 웃어주거나 챙겨주는 사람에 대해 좋은 편견을 가지게 된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 또한 좋지 않은 태도지만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마음이 열리게 되더이다.


 요즘 참으로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

전부터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있는데 같은 회사에 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4살 정도 어리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원이고 그 친구는 직급이 한 단계 위이다. 하지만 다른 부서이기 때문에 크게 직급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서도 편하다는 이유로 지시형의 말투와 무거운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친하더라도, 내가 나이가 많더라도 내가 먼저 일어서고 존대를 하며 조심하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느 날 그 지시형의 말투와 무거운 엉덩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스스로 쿨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화를 잘 못 참고 욱하며 성격이 안 좋다고 종종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은 센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다는 듯이 들리곤 했지만 개인적인 성격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점 내가 불편감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내가 인지하는 순간 모든 순간이 편견으로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직장 내 어르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라고 자책도 해봤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점점 그 친구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다른 회사를 다닐 때는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사이가 한순간에 이렇게 마음이 돌아서게 되다니 참으로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친구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도가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불편하게 느낀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장 내 어르신. 혹은 꼰대라고 불릴 수 있는 기준이 반드시 나이가 수반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나이 어린 친구들이 불편하고 눈치를 보게 될 때도 있다. 혹자는 내가 소심하고 떳떳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아닐 때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마음이 올 곳고 생각이 명확하며 자기 주관과 소신이 뚜렷하며 매사에 열정을 가지고 달리는 친구들은 내가 봐도 본받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 젊은 친구들이 정말 존재한다 생각보다 꽤 많이.

 하지만 그 반대의  젊은 친구들도 많이 존재한다 생각보다 꽤 많이.

내가 나이가 더 어렸을 적에 그 반대의 친구들 중에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때가 기억에 떠올라 입술을 말이 물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이 일하는 곳에 얼마나 많은 다른 생각들이 존재할까 싶다. 그래서 회사들은 항상 화합과 단합을 외치는가 보다. 하지만 그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던데...


 개개인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되 명확한 근거가 따라와야 하고 또 그 개성과 생각을 들었을 시 인정할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회사의 분위기가 아주 중요하고 그 회사의 리더의 마인드가 정말 중요한 걸 느낀다. 내가 다니는 이 중소기업은 10명 만나면 6~7명은 이 회사에 대한 미래에 확신이 없고 이직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이니까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 하는 일이나 지금 있는 자리에 대해서 항상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루에 8시간 혹은 10시간이 넘게 머무르고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간 일하면서 이직을 5번 정도 한 것 같다. 길게는 3년 정도 다닌 회사도 있고 짧게는 6개월 정도 다닌곳도 있다. 물론 이직의 이유는 다 있었지만 사람 때문도 있었다. 사람을 견디지 못해서 도망치듯이 퇴사를 한 회사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후회도 남는다. 한방 지르고 나올걸.. 그렇게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에 나를 좀 먹게 된다면 퇴사가 맞는 것 같다. 나의 밥벌이를 옮길 만큼의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가 자발적이 아닌 도망이라니.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해 보이고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이제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다. 마음의 스위치를 끄는 법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중심이 타인이 아닌 '나'라는 것을 습관적으로 트레이닝하다 보니 얻게 된 인생의 방패막이다.

직장에는 내 뜻대로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들 또한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응석을 받아주고 속상한 속풀이를 다 이해해주는 사람은 엄마, 아빠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상은 치열했고 무미건조했다. '나'부터 챙기고 나부터 아껴야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는 주지 말자는 다짐 아닌 다짐으로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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