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신발도 갈아신지 않고 교문을 나가려는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아이는 결국 교문을 나갔다. 도로로 뛰어갔다. 아이의 손목을 잡은 채 나도 힘껏 뛰었다. 아이를 만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신규 발령 받은 3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학교 밖을 나간 아이의 행방을 모르게 되면 어떡하지? 여기에서 이 손을 놓아버려도 괜찮은 건가? 이 앞은 도로인데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이를 뒤에서 안았다. 학교 돌담으로 붙었다. 가슴 높이까지 쌓인 작은 돌을 아이가 잡았다. 나는 팔은 아이를 안은 채 아이가 손에 잡은 돌을 손으로 꺼냈다.
“이러면 안 돼. 다쳐. 너 이렇게 가면 안 돼. 선생님이랑 교실에 가자. 교실에 가서 이야기하자.”
아이는 말없이 끙끙댔다. 비는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소리라도 쳐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한적한 시골길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비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로 머리가 흥건히 젖었을 때, 아이는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끌려가던 나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교실로 돌아왔다. 5년 동안 반이 바뀌지 않고 같이 생활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학교. 아이는 친구들이 자기만 무시한다고 했다. 그 날 우리 반은 학급 회의를 했다.
“선생님 그 아이 상담이라도 맡겨봐야 하지 않아?”
“작년에 비해서 엄청 좋아졌어요.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그 다음 해에도 아이는 선생님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을 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많이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정을 주기 시작하면 모두 예뻐보인다. 나는 아이가 성장한 모습만 보였다.
육아 휴직 후 복직해서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떠들었다. 선생님한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이었는데 질문한 아이조차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안하고 아이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 질문 받아주세요.”
“지금 선생님이 왜 조용히 하고 있는 거 같아?”
“선생님이 멍때리고 있는 이유를 저에게 물으면 어떡해요?”
당황했지만 교실의 상황과 아이의 행동을 지도했다. 선생님은 이미 그 전에 질문을 받았고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어른에게 멍때리고 있다라는 표현은 바르지 못하다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아이는 불만 섞인 말투로 계속 말했다. 그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기다려라. 곧 나의 매력에 빠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될 것이야!’
학기를 마치는 날, 그 아이는 선생님이 우리 담임 선생님이어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주었다.
“A야, 글 쓴 거 가지고 오세요.”
“에이 씨X, 아직 다 못 썼는데!”
“응 욕하지 말고 국어책 가지고 올까?”
아이가 내 앞에서 욕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쯤 나는 학교를 옮기면 힘든 반을 전담하는 교사가 되어있었다. 학교를 옮기면서 인사희망서에 희망 학년을 쓰려고 그 학교에 있는 아는 선생님에게 연락하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어느 학년을 써도 그 반 줄 거야.”
그래도 힘든 아이들은 괜찮았다. 아이들은 아직 아이들이니까. 오래 걸리더라도 성장하고 변화할거니까.
“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가 질문했는데 안 받아주셨다면서요?”
그날도 전화가 울렸다. 그 해는 유독 개인 번호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 모두 개인번호를 공개한다길래 나도 그냥 공개했다.
“어머니 그 상황은…….”
어머니를 이해시키기 위한 기나긴 설명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화가 오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어떤 날은 저녁 7시,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이 넘는 통화가 이어졌다. 어린 내 아이들이 크게 울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선생님도 아이 키우면서 왜 그러냐고 했을 때는 학부모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어느날 저녁 8시에 울리는 벨소리가 저장되지 않은 번호일 때,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손이 덜덜 떨려서 핸드폰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벨소리가 그치고 전화번호를 확인해봤다. 학부모가 아니었다. 그제야 긴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힘든 반은 내 차지였다. 힘든 반을 주는 대신 부장 보직을 준다고 했다. 이게 과연 혜택인가 싶어 거절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 반은 나에게 왔다. 말 한마디, 가정통신문 한 장, 주간 학습 안내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야 했다. 아이가 불편해하는 날은 한밤중에 장문의 문자가 왔다. 해결되지 않으면 국민 신문고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한 해 동안 문자는 많이 줄어들었고 우리 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10월쯤.
“옆 반 여자아이들이 우리 아이 뒷담화한다던데요. 해결해 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라는 말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말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어쩌면 1시간 동안 이어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이어지는 통화와 감정이 격앙된 목소리가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내 교직 생활이 끝나는 것 같았다. 애초에 해결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옆 반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하지. 교사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순간. 그 공포가 온 몸을 짓눌렀다. 그 다음날부터 옆 반 여자아이들을 하나하나 개별로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A와 이야기 나누고, B와 이야기 나누고, B, C와 이야기 나누고 A, B, C와 다시 이야기 나누고. 상담의 기본은 레포 형성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레포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과 상담하는 건 에너지가 정말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상담한 결과 너무나 운이 좋게도 문제는 해.결.되.었.다.
“난 아이가 힘든 건 괜찮아. 아이잖아. 그런데 학부모가 힘들면 정말 너무 힘들어.”
아이가 힘들어도 학부모가 호의적이면 지도할 힘이 생긴다. 하지만 아이가 괜찮아도 학부모가 힘들면 교단에 설 힘 자체를 잃어버린다. 아이는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지만 학부모의 한마디는 교사를 주저 앉게 만들 수도 있다.
올해도 나는 학부모님들께 온 마음을 담아 메세지를 보낸다.
학급에서 진행되는 교육활동을 지지해주시는 학부모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