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초등학교 선생님

by 경험수집가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싶은 것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초등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니까.”




나는 왕따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시골 학교지만 37~38명씩 3개 반, 한 학년에 120명 정도 되었다. 좀 특이했던 것이 반 편성이 3년에 한 번 되었다는 것이다. 1학년 때 같은 반을 하면 3년 동안 같은 반이었고 4학년 때 반이 바뀌었다.

3학년 때였다. 어느 날부터 친구들이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었는데 대답을 안 했다. 나를 빼놓고 놀이터로 나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A가 나에게 다가왔다. B 책상 위의 색연필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너 이거 잡을 수 있어?”

오랜만에 친구가 먼저 말 걸어준 게 기뻤던 나는 당연하지라고 이야기하면서 책상 위의 색연필을 잡았다. A는 그 후로도 몇 번을 나에게 질문을 했다. 오랜만에 행복한 쉬는 시간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여자 친구들 몇 명이 나에게 왔다.

“너 B 물건 함부로 만지고 훔쳐가져가려고 했다매?”

당황한 나의 말은 공중에 흩어졌고 아이들은 나를 노려봤다. 그 무리 안에는 A가 있었다.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한참 후에 들었다. 나랑 놀면 100만원 내야 한다고 A가 아이들에게 말했고 그게 무서워서 안 놀기 시작했다고.

엄마한테 울면서 말했다. 엄마도 같이 울었다. 엄마한테 친구네 집에 전화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망설였지만 울부짖는 나를 보며 A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우리 엄마가 A집에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는 교실을 맴돌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친구들과 다시 사이가 좋아져도 끊임없이 친구들의 눈치를 봤다. 자신감 있고 당당했던 나는 사라졌다.




5학년 때, 특기적성 컴퓨터 시간이었다. 한 달에 한번 시험을 잘 보면 선생님이 선물을 주셨다. 시험 보는 날 C가 내 옆에 앉았다. 시험지를 건네자마자 C는 나에게 말했다.

“1번 문제 답 뭐야?”

C를 바라봤다. 안 가르쳐주면 학교생활이 피곤하게 될 거라는 느낌이 나를 조여왔다. 조그맣게 1번 답을 알려줬다. C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2번 문제 답 뭐야?”

2번 문제 답도 알려줬다. 이제 시험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3번은?”

25문제 다 물어볼 생각인 건가? 당황스럽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조용히 말했다.

“3번은 2번이야. 근데 풀어보고 모르는 거 물어보면 답해주면 안 될까?”


그다음 날부터 나는 다시 왕따가 되었다. 학교는 전쟁이었다. 발표를 하면 앞자리에서 입으로 욕하는 아이들을 봐야 했다. 쉬는 시간에는 내 뒤를 지나가면서 아이들이 키득댔다. 너무 힘들어서 옆에 다가오는 친구에게 속을 털어놓으면 그다음 날은 내가 한 말의 사실관계를 물으러 오는 반 아이들을 감당해야 했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 가장 안쪽 칸에 들어가서 10분을 견뎠다. 아이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라고 빌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몇 달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빈 건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게 해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그게 습관이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소원을 반대로 비는 아이가 되었다. 난 안될 거야. 사람들은 나를 안 좋아할 거야. 선생님은 나에게 요즘 왜 발표도 잘 안 하냐고 물으셨지만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고 내 손을 잡고 울던 엄마 모습이 머리에 떠다녀서 엄마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혼자였다. 다시 친구들과 놀게 되었을 때 아무도 믿지 못하는 비관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가서 학생회 부회장도 하고 성적도 꽤나 좋았지만 나는 가출을 하려고 돈을 모으고 다양한 자살 방법을 검색했다. 가출을 준비하면서도 학교는 나갈 생각을 했다. 자살을 고민하다가도 내가 죽으면 신문에 한 줄 안 나올 것 같았다.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서 포기했다.




정신이 건강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낀 건 스무 살 무렵. 완전히 극복한 건 스물일곱 무렵이었다. 극복했다고 하지만 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A와 C의 자식들을 교실에서 내 학생으로 볼 자신은 없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몇 달이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까.


왕따라는 건 이런 거다.

한 순간의 기분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 너무 싫어서 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걸 겪은 누군가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인생을 써서 노력해야 하는 것. 죽을 때까지 원망하게 될 수도 있는 것.

너무나 사랑스러운 우리 반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죽을 때까지 원망받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선생님과 같은 초등학교 생활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몸과 마음이 안전한 우리 반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도할 거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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