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아름답고 멋져!”
요 며칠 남편의 갑작스런 입원과 작은 수술로 병원을 오가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건강검진에서 복부 CT 를 찍으며 발견된 맹장 주변의 염증으로 맹장을 제거하기로 하였고 간단한 수술이기에 1시간 이내에 끝날 거라고 회진을 도는 젊은 의사 선생님은 말했었다. 하지만 주변의 장기들이 염증으로 인해 붙어 있는 바람에 원래 구멍을 하나만 뚫으려던 복강경 수술이 세 개를 뚫는 것으로 변경되어 진행되었고 수술시간은 원래 1시간이었는데 3시간 넘게 지체되면서 나는 수술실 앞에서 거의 파랗게 질려있었다. 예고 없이 늦어진 수술이었고 수술을 하며 출혈이나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고 겁을 먹었던 것이다. 2시간 동안 불안한 상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진 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커다란 불안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었다.
남편이 어느새 마흔 아홉, 슬슬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자꾸만 올라온다. 7년 전 시아버님은 심근 경색으로 그토록 아끼셨던 자식들에게 말 한마디 남기시지 못하고 황급하게 떠나셨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건강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민감해지는 나를 본다.
병원을 오간 5일 동안 혼자 일기처럼 병원일지를 썼다.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걸까. 묻고 토닥이고 괜찮은지 물으며 어떤 것이든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경험이 나를 키워주는 거니까,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것을 잘 통과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돌보고 집에 온 날은 지쳐 눕자마자 도서관 그림책을 몇 권 꺼내 읽었는데 내겐 그게 나를 돌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마음을 채우고 활력을 찾는 내 나름의 처방인 셈이다. 마침 위로가 되었던 프랑스 그림책이 괜찮다고, 마음의 눈을 뜨라고 일러주었다.
“세상은 참 아름답고 멋져!”
눈의 나라 티베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라히와 나왕, 그런데 둘은 어려서부터 너무 다르다.
첫째 라히가 소심하고 겁이 많다면 둘째 나왕은 평온하고 명랑하다. 성격과 기질이 한날 한시에 태어나도 완전히 다른 쌍둥이 형제인 것이다.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티베트답게 거대한 산들은 얼음과 돌, 그리고 많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유목민들에게 야크는 너무 소중한 재산이다. 가난한 그들은 야크가 먹을 풀이 있는 곳에 천막을 치고 야크의 젖을 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날, 풀이 많은 곳에서 같은 천막을 치게 된 이웃의 사나운 개로 인해 라히는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옆에 있던 나왕은 어땠을까? 나왕은 그 개가 늠름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쓰다듬는다.
라히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섭고 거대하고 나를 위협하지만 나왕의 세상은 웅장하고 아름답고 나를 지켜준다. 이것은 라히와 나왕이 삶을 대하는 자세와 직결되어 라히가 공격적이고 방어적임에 반해 나왕은 거대한 자연에 순응하며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각자가 바라보는 눈은 마치 거울처럼 바깥세상을 비춰주는 셈이다.
사나운 개로 인해 이웃과 가족에게 조롱 받은 것처럼 느낀 라히는 세상을 저주하며 집을 나가고 거대한 얼음괴물을 만난다. 공포에 사로잡힌 라히는 결국 나왕의 도움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커다란 위로를 받는다.
“형, 가만히 산을 살펴 봐. 산꼭대기엔 바람에 날리는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아. 초모룽마(에베레스트)는 평온해.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야.”
눈표범을 보고도 겁내지 않고 위험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는 페이퍼 커팅으로 쌍둥이의 눈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가 마주보는 장면이 무척 강렬했다. 라히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지만 다른 눈빛을 갖고 있는 나왕에게 무엇을 느꼈을까? 무엇이 그가 모르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했을까?
“천둥 번개가 칠 때면 나는 늘 그곳에 있는 푸른 하늘을 떠올려. 왜냐면 하늘은 늘 거기에 있으니까. 형, 푸른 하늘은 늘 우리 위에서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고 있어! 이 먹구름은 푸른 하늘과 뒤바뀐 게 아니라 잠시 가리고 있을 뿐이야. 마음속으로 태양을 떠올리면 내 마음은 해가 다시 비치기도 전에 따뜻해져!”
그림책이 한 편의 명상 책처럼 느껴졌다. 라히가 세상을 아름답고 멋지게 생각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의 나라 사람들이 그렇듯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고 그의 눈빛을 볼 수 있기에 라히는 자신이 만들어 낸 끔찍한 생각들이 자아낸 무서운 세상을 알아차리고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침착하게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넨 동생 나왕의 따스하고 늠름한 눈빛이 참 아름답다. 지구별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눈이 많아진 티베트를 떠올려본다. 톡톡톡.. 내 안에 있는 눈의 마을엔 어떤 눈빛이 있을까?
길고 멀리 보면 삶의 작은 고난들도 감사할 일이다. 더 큰 위험 없이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건강검진과 수술도 그렇고 쉼 없이 달려온 남편의 강제적인 쉼도 그렇다.
걱정과 불안의 눈이 아닌 수용과 감사, 경외의 눈으로 매일의 일상을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높은 산, 초모룽마도 어쩐지 그렇게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세상은 참 아름답고 멋져! | 장 프랑수아 샤바 글 | 클로틸드 페랭 그림 | 김혜니 옮김 | 고래 이야기 | 2022.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