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었는데 이른 장마였는지 며칠간 계속 비가 왔다. 흐린 하늘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축축한 공기로 숨이 막힐 즈음 7월이 왔고 정말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며칠 만에 눈부시게 나타나주었다. 푸르름이 늘 그 자리에 있는데도 며칠간의 비바람은 무겁게 몸을 낮추어 집 앞 기다란 나무 하나를 눕게 해버리고 온 세상을 물에 잠긴 잿빛 수채화로 만들었다. 그래도 그 어느 계절보다 채도가 높은 여름이 만들어주는 이 생생함이 좋다. 맞는 색을 찾아 알맞게 익어가는 계절처럼 아이의 두 볼도 빨개지고 팔다리도 햇빛에 그윽해진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뛰며 여름을 사는 딸은 틈만 나면 제 나름의 놀이 시간을 채우러 뛰쳐나간다.
1. 축구.
“ 엄마 내가 다니는 학원 중에 제~~일 좋아하는 학원이 뭔 줄 알아?”
“글쎄. 미술?”
“땡!! 축구야~”
그러고 보니 축구를 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하던 3학년 7월, 뒤늦게 축구 바람이 들어 아이의 재촉으로 처음 축구 학원에 데려갔었다. 열 명 남짓한 3학년 남자아이들이 열심히 뛰고 있었다. 유니폼도 없고 혼자 긴 머리를 묶지도 않고 와서 어쩌나 했는데 수업을 시작하자 앉아서 선생님 얘기를 듣는 아이들을 비집고 맨 앞에 앉았다. 아이는 성이 ‘한’씨라 뒤에 있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선생님 얘기가 끝나고 가벼운 몸 풀기부터 경기 전 필요한 발차기 연습 같은 것을 하다가 팀을 나눠 경기를 한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처음 왔는데 열심히 한다며 걱정 마시고 다음부턴 학원차가 데리러 간다고 하였고 나는 그 뒤로 더 이상 수업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매주 금요일 빠트리지 않고 축구 수업에 다녔다. 과연 언제까지 축구 학원에 다닐지 모르겠지만 5학년, 6학년이 되어도 변함없이 열정을 불사를 수 있기를, 현재 타이틀 유지중인 그 학원의 가장 나이 많은 축구하는 누나가 아닌 함께 조인하여 뛰는 다른 여자 친구도 만날 수 있기를!
2. 피구
피구 약속이 잡힌 토요일, 어김없이 부리나케 놀이터 옆 배드민턴장으로 달려 나간다. 또래 문화가 없다시피 보낸 작년과 달리 좀 커서 그런지 자기들끼리 약속을 잡아 등굣길을 같이 가기도 하고 “우리 지금 모였으니까 나와~”라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요즘 학교에서 반별로 피구를 겨루기도 하는데 진 팀은 져서, 이긴 팀은 이겨서 틈나면 모이는 모양이다.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지금 놀지 언제 놀까 싶어 내버려두게 된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그래, 실컷 뛰어랏~~
3. 수영
7월 다음 주부터는 학교에서 세 차례 생존 수영 수업이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하지 못하고 올 해는 수업이 확정 되었는데 반 친구들과 다 같이 수영장에 간다는 것만으로 설레는지 수업 날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다. 수영을 많이 못했던 시간만큼 물에 대한 갈망도 커졌겠지. 유아 때부터 꾸준히 한 스포츠는 수영이었다. 지금은 축구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이번 생존 수영이 다시 불을 지필지도 모르겠다. 3년을 배웠으니 물에 대한 감각은 몸이 알고 있을 터, 그 감각을 얼마나 잘 깨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올 여름 방학엔 이곳저곳 가까운 수영장을 찾아 다녀봐야겠다.
스포츠에 진심이고 여전히 놀이터와 자전거, 두 발 킥보드를 좋아하는 열한 살은 체육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 한껏 부풀어 오른다.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에요. 체육 시간이 있거든요, 머리 좀 꽉 묶어 주세요.”
몸을 쓰는 것의 효용과 즐거움을 알기에 나 역시 마음이 늘어지면 얼른 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요가 수업을 듣거나, 산책을 조금 오래 하곤 한다. 중요한 건 내 몸의 밸런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일이다. 고장 난 지퍼처럼 끌어올려지지 않는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몸을 통한 각성이 될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머리를 촘촘히 빗어 넘겨 꽉 묶어주는 일도 비타민 같은 에너지원이 될지 모르겠다. 늘 그 곳에 있는 푸르름과 아이의 단단해지는 어깨에 내려앉은 7월의 햇빛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