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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Jul 18. 2022

행운씨와 불운씨_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행운을 찾아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신설학교여서 주변에 문구점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 안에 대형 문구 브랜드가 입점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진 걸 보니 온라인 쇼핑이 대세인 코로나 시기에 큰 점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생들이 문구를 사려고 굳이 복잡한 몰 안에 들를 일도 없으니 타겟 고객의 접근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무인 문구점들이 생기는 것을 몇 차례 본 적 있었는데 드디어 올 초쯤, 이곳에도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미 문방구”라는 무인 문구 샵이 오픈했다. 딸에게 전해 들은 것은 함께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는 같은 아파트 친구 어머님이 열었고 요즘 아이들이 “미미 문방구”를 가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유일한 문구점일 테니 소소하게 아이들이 간식거리를 사거나 준비물을 사기도 하고 삼삼오오 등하교 길에 손잡고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지난달 선물 포장할 일이 있어서 지나가다 잠시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포장지를 산 적이 있었다. 천 원짜리 포장지 결제가 현금 동전으로도 가능하고 카드로도 가능한 걸 보며 이 작은 매출들을 모아 유지가 될까 했었는데 아마도 하교시간은 꽤 아이들로 북적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장난감과 독특한 문구도 비치되어 있었는데 가끔 부모님과 함께 들어온 아이들은 득템의 경험도 누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우리 집 따님은 지난번 벼룩시장에서 번 돈을 투명한 비닐 주머니 같은 곳에 잘 펴서 넣어두더니 어느새 지갑엔 천 원짜리 몇 장만 남아 있었다. 물어보니 편의점에서 칸쵸를 사 먹은 적도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뽑기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슬쩍 작은 책을 하나 꺼내 보이며 미미 문방구에서 샀다고 보여줬는데 손바닥 크기의 가벼운 책이었다. 장난감 같아서 잘 보지 않고 지나쳤었는데 등교 길에 데려다주며 얘기하다가 좀 크면 영어 말고 다른 언어도 공부해보라는 말을 하던 차에 아이가 가방 앞주머니에서 그 작은 책을 조심스레 꺼내 펼치더니  “으앗.. 엄마 ‘내 대답은 Yes’가 나왔어”라고 말했다. 문득 생각나서 저녁에 찾아 꺼내 보니 “마법의 고민 해결책”이라고 쓰여 있었다. 첫 장에 안내된 고민 해결 사용법은 이러하다.


1. 복잡한 고민이나 질문을 생각합니다.

2. 손을 책 위에 올리고 10초 이상 집중하며 생각합니다.

3. 다른 손으로 책을 훑다가 답일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멈춥니다.

4. 페이지를 여는 순간, 궁금해하던 답이 나옵니다.



에고고~ 열한 살 아이도 이런 게 필요한 건가? 애매한 상황이나, 답변이 망설여질 때, 결정 장애가 올 때 우리는 어떤 신속한 누군가의 조언과 확신을 듣고 싶어 진다. 선택지를 내가 골라야 하는 수고로움 대신 내게 마땅한 운명적인 지시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랄까? 예전에 주역 책을 읽고 주역 점을 치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 운세나 어떤 사안에 대한 예측 같은 것을 참고 삼아 보려는 것이다.  대나무나 산가지 대신 약식으로 주사위 7개를 이용했는데 점을 칠 때마다 느낀 것은 주역은 완전히 좋은 것도 완전히 나쁜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되기도 하기에 점을 칠 때처럼 내 결정을 신중하게 돌보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이후에 자연스레 주역 점과 멀어졌다. 하지만 내 선택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나약한 내 선택과 의지에 힘을 실어줄 무엇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행운은 어디에 있을까?


그림책 모임에서 읽었던 “행운을 찾아서”에서는 행운 씨와 불운 씨의 이야기가 각각 앞, 뒤로  전개된다.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이지만 두 사람이 여행을 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행운 씨는 가슴속의 순한 바람을 느끼며 휴가를 즐길 타이밍이라 생각한 그때 여유롭고 느긋한 여행 계획을 추진한다. 가장 필요한 짐만 챙겨 여행 가방 하나를 들고 고양이를 돌봐 줄 이웃에게 들러 커피도 마신다. 늦어진 비행 일정을 신경 쓰지 않고 마침 필요했던 모자를 사며 복권도  한 장 산다.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여 기차를 놓치고 버스를 탈시간이 되자 갑자기 운전을 하고 싶어진 행운 씨는 계획을 바꿔 렌터카 사무실로 간다. 운 좋게 방금 들어온 빈 차 한 대를 타고 버스를 놓쳐 난감한 상황의 아주머니를 태워 마을까지 데려다준 행운 씨! 세례 레 섬에 도착하여 호텔 지배인인 살바도르 씨의 식사에도 초대를 받고 그의 딸 마리나를 소개받은 행운 씨는 마침 그녀의 사무실이 행운 씨 아파트에서  두 구역 떨어진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불운 씨의 여행은 어땠을까? 그는 직장을 잃어 기분 전환 겸 가방 두 개에 여름옷과 겨울옷을 가득 넣고 양손으로 가방을 움켜 쥔 채 잠이 든다. 서두르고 뭔가에 쫓기는 듯 급하게 나서는 불운 씨는 세례 레 섬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다 찼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급하게 렌터카 사무실에서 빌린 차를 타고 출발한다. 그리고 버스를 탔지만 깜빡 잠이 들어 배를 갈아탈 정류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낯선 곳에 내리게 된다.  비바람을 막을 대피소에서 웅크린 채 눈을 붙이고 다음 날 여객선을 타고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 도착한 불운 씨. 하지만 너무 많은 여객선의 손님들로 빈 방은 없고 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놀이 공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복권!


사건들이 연결되어 두 사람이 같은 날 서로 스치며 지나가던 여러 장면들이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다. 각 이야기의 끝인 책 중간 접힌 페이지를 펼치면 행운 씨와 불운 씨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꿈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행운이 오든, 불운이 오든 모든 과정에서 선택하는 것은 나이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태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행은 행운이 되고 그 반대의 상황 역시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일까? 태도를 연마할 수 있다는 관점이라면 주사위의 결과는 아직 모르는 것일까? 부디 선택이 향하는 곳이 행운이기를, 설령 불행인 날이 있다 해도 그 다음의 선택은 행운을 향하기를 : )



행운을 찾아서 |  세르히오 라이를라 글 | 아나 G. 라르티테기 그림 | 남진희 옮김 | 살림 어린이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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