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시절 아이는 배가 고파도 울고, 우유를 먹어도 울고, 졸려도 울고, 자고 일어나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눕혀놔도 울었다. 하루 종일 우는 통에 산후도우미도 식은땀을 흘렸다. 무조건 울고 보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말을 하지 못하니 아이가 우는 이유를 정확히 몰라 매번 속만 끓었다. 유선이 막혀 가슴 마사지를 받은 날이었다. 선생님은 젖을 물리는 횟수와 시간을 줄여볼 것을 권유했다. 아이가 적정량의 우유를 정해진 시간에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젖을 물리니까 아이가 습관처럼 우는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수유하는 횟수와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아이는 더 심하게 울었다.
“애 울게 두지 말고 젖을 물려.”
“선생님이 정해진 시간에만 주라고 했어. 조금만 기다리면그칠 거야.”
“애가 저렇게 우는데 습관은 무슨 습관이야. 전문가 말이면 다 맞는 줄 알아?”
하루에 약 19번씩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마치 젖소가 된 기분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젖을 물릴 때마다 느껴지는 가슴 통증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어쩌면 가슴 통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젖을 덜 물릴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선생님이 젖을 물리는 횟수를 줄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이 반갑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이 말한다고 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며 딱 잘라 말했다. 욱하는 감정과 서러운 감정이 동시에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젖을 물리는 사람은 나야. 물릴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도 나고.”
나의 방어적인 태도에 남편과 초반엔 많이 부딪혔다. 남편이 하는 육아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는 직접 아이를 품고 낳아봤기 때문에 나만큼 남편이 육아에 대해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남편과 육아를 함께하려고 하지 않았고, 남편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아이’가 아닌 ‘나의 아이’로 키웠다. ‘육아’라는 울타리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주변을 전부 차단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남편도 점점 육아에서 한 발 물러섰다.
남편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 서로 충돌할 때마다 육아는 더 힘들어져 갔다. 나의 뇌 구조와 남편의 뇌 구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는 이런 서로를 힘들어했고, 생각의 차이는 곧 대화를 단절시켰다.
나는 들끓는 모성애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