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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결 Aug 21. 2023

부모가 된다는 것

어른, 본보기

사고가 나고 9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가해자가 부모와 함께 병원에 찾아왔다. 신호위반을 했고 상대측 과실이 명백했다. 나는 전치 14주, 운전자 동생은 6주, 뒷좌석 동생은 2주. 코로나로 면회가 어렵기 때문에 거동이 가능한 동생 둘이 만나러 갔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우리 애도 많이 다쳤다며 다리를 전다고 했다. 형사 합의금을 보험사도 모르게 줄 테니 진단서를 타박상으로 끊어 달라고 했다. 형사 합의금 600만 원을 준단다.


현재 그 부모는 우리를 과속으로 쌍방과실로 만들었다. 가해자인 운전자는 신호를 잘못 보고 좌회전을 했고 과속을 한 우리 차로 인해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하..

자기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내가 부모라면 내 자식을 옆에 두고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반대로 나는 내 자식의 잘못을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어렸을 적에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아이가 생기고 덜컥 무서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 나는 아직 덜 자랐고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책임을 지고 싶었다. 서로 좋아했고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부모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함께 성장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참 어리고 어리석었다. 나는 내 인생을 혼자 스스로 책임졌어야 했다.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 둘이 만나 결국 이렇게 되었다.



그 남자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날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화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데려와서 얼굴을 보여준 것에 감사해야 하나?


첫째 아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바로 이모를 따라 편의점을 갔다. 친정엄마는 둘째 아이를 안고 병실을 비워 줬다.


그 남자는 아이들 데려가서 어린이집을 보낼 거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왜 거기서 어린이집을 보내는지. 나는 당분간 데리고 있어 달라했고 그 남자는 갑자기 화를 냈다. 엄마가 어떻게 보냐며. 그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 남자의 엄마였다. 갑자기 바빠졌고 눈빛이 불안했고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5분도 안 되는 그 시간 동안 두 번의 전화가 또 왔다.


“어. 어. 엄마 ”


그 남자의 엄마와 전화를 끊고 그 남자는 나에게

”물 좀 그만 먹어 소변 주머니에 소변 엄청 많아. 주말에 첫째랑 같이 올게 “


저 말을 남기고 쫓기듯 병실을 나갔다.

나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소변 주머니에 피가 섞여 나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계속 걱정을 했고, 조무사 선생님들은 먹지 못하는 나에게 무엇이든 먹이려 했다.


친정엄마가 둘째 아기 분유를 먹이는 동안 그 남자는 친정 집에 있는 그 남자의 물건과 아이들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 젖병 세척 솔까지 꼼꼼히 챙겨갔다.


그 남자는 친정 엄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첫째 아이를 시켜 할미 사랑해요를 시켰고, 그렇게 현관문은 닫혔다.


친정엄마는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그 남자의 아버지 차에서 그 남자의 부모가 내렸다. 그 남자와 아이들이 나가니 그 남자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을 안고 각자의 차로 가서 운전을 했다.


한 때 시어머니, 시아버지였던 분들은 그 며느리였던 사람의 사고 소식에 자신의 손녀 손자를 데리고 갔다.


나에게 그분들은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이었다.


내가 그분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까?


불쌍한 사람들이다. 살면서 어떤 풍파를 겪으면 저런 행동을 할까.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하는 저런 부모 밑에서 그 남자는 자랐다. 그 남자는 자신 부모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남자에게 물었다. 아이를 그렇게 데리고 간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어 쫌 찔려.”


그 남자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지금은 서울 명문대 연구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같은 실험실 학생들에게 조언이라며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던질 것이다. 책임지지 않을 가벼운 말을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하고 있겠지.


교수님들에게 잡혀서 술 마실 시간은 있지만, 누워있는 와이프에게 전화로 이혼을 하자는 그 남자가 나의 아이들의 아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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