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Hunter Jan 16. 2024

종이 공포증

살다 살다 별..

박영사 측이랑 출간 준비 중입니다. 이제는 제가 뭘 하기보단 기다리면서 출판사 측 내부 결재, 계약서 작성, 표지 디자인 선정, 편집자 배정 등을 기다리면 된다고 하는데요. 제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니 지난 글들에서 오탈자나 비문을 찾아 고치는 걸로도 만족 못해 다른 더 할 것 없나 살피는 중입니다.



우선 <날 사랑한> 시리즈 제목을 정렬해서 튀는 것은 통일시키고 편집자들이 구분하기 쉽게 나누면서 저도 스스로 검수할 때 사용할 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표를 박영사 측에 드리니 무척 좋아하면서 키워드를 정해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하여 앗싸라 죽어라고 표를 업데이트하고 있지요.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좋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날 사랑한> 시리즈를 한 줄 한 줄 또 한 줄, 검수하려니 벅찬 감동보다는 이거 언제 다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글을 하나하나 끝낼 때 느꼈던 감동이랑 재미는 사그라들면서 피곤함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금껏 내 글을 가장 사랑했던 것은 저였습니다. 제 글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뭐랄까, 제 글이 보기 싫어지려 합니다. 그러다 오늘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종이 공포증이 생긴 것입니다.


부장님, 죄송해요 ㅠㅠ 글쓰기 입스가 왔어요.


뭔가 무의식에서 불만이나 억제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듯한데 지금 내 의식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니 이렇게 '종이 공포증'이라는 난데없는 증상으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는 분석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죠. 설령 용한 정신분석가가 지금 내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일순간에 찾아낼 방도도 없을 것이니 큰 일입니다.


시간은 있으니 차근차근 검수하라는 출판사 측 조언을 들었지만 상상력이 그리 풍부하지 못한 저로서는 당최 종이로 내 글이 나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같이 온라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도 기쁘고 자신 있는 일인데 그것은 읽는 이가 어떤 자세로 모니터 앞에 앉아 내 글을 읽을지 어느 부분에서 빵 터지고 어디서 같이 슬퍼할지를 장면이 환영으로 제 눈에 보이기 때문인데요. 한 번도 내 글을 종이 책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한 경험치가 없으니 그런 상상을 못 하게 되어 글이 막혀버립니다.


월간 디자인: 황순천 - 자동차 클레이 모델러

오래전 뉴스에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전에 찰흙으로 먼저 빚어 본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설계도가 나오면 실제 모습이랑 똑 같이 한 번 만들어 보는 작업을 통해 대량 생산 전에 오류나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본다는 개념인데요. 그래서 저도 제 글을 실제 책이랑 비슷한 재질 노트를 사서 제 손으로 <날 사랑한 이혼녀>를 필사해 보기로 합니다.


이미 엊그제 노사임당 작가님 제 글 일부를 필사해 주신 사진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한데요. 생각해 보니 악필인 제 솜씨를 보는 것도 괴로울 것이고, 이미 익숙한 내 글씨이기에 한 발자국 떨어져 보려는 지금 의도는 또 오염되어 퇴색할 테니 그보다는 노사임당 쎔에게 제 글 하나를 책으로 만들어 주시면 어떠한지 염치에 불구하고 또 부탁을 드렸습니다.


노사임당, 2024, 날 사랑한 이혼녀


한 참을 통화해서 제 의도를 설명드리고 카톡으로 내가 원하는 모델링을 말씀드리며 오래 자료가 오가고 그림을 받아 본 끝에 종이책 <날 사랑한 이혼녀>가 출간에 앞서 이처럼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공시가 [만 칠천 팔백 원] 실가 천만 원짜리 책이 날 위해 위대하게 탄생합니다!


노사임당, 2024, 사랑이라는 착각


노사임당 쎔은 지금 저보다 제 책을 만드는 일 때문에 더 바쁘시기에 요즘은 노쎔이 저자라고 해야 맞겠습니다. 제가 부탁한 이런 사사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일들을 모두 해주시면서, 중간중간 삐치는 제 예민한 성격까지 어르고 달래면서 '잘할 수 있다. 쉬었다 하면 된다' 제 마음 치료까지 병행하고 계십니다 (노쎔, 한국에 선물 한 보따리 가지고 갈게요^^).


또 한 가지 걱정은 제 책이 과연 온라인에서 종이로 자리를 옮겨도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살만한 것인가에 대한 부담입니다. 제 글은 공짜로 브런치에서 한 번 보기에는 좋겠지만 과연 만원 이상 돈을 주고 이것을 사서 간직해 달라고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출판 흐름을 보니 베스트셀러가 보이는 공통분모는 두 가지이더군요. 바로,


인기 작가 &

자기 계발서


제 글은 위 두 가지 조건에서 정반대 쪽에 있으니 자칫 출판사에 큰 손해나 끼치고 폭망 하는 것이 아닐지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요행이도 이 책이 어느 정도 팔린다면 두 번째 시리즈를 가자고 박영스토리 측에서 용기를 주시니 그럼 앞으로 제가 책을 더 출간하게 된다면 늘 노사임당 쎔하고 함께할 생각입니다.


우선 노쎔 서체가 제 글에 너무 잘 맞기 때문이고요. 무엇보다 유리 멘탈인 제가 글을 쓰는데 노쎔 위로랑 격려가 큰 위안을 줍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떨어져 내 글을 볼 수 있도록 제 needs를 정확히 알고 계셔서 뭐라도 부탁을 드리면 척척 날 위한 답이 나오는 느낌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영스토리 원고기획 부장님에게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종이 공포증>이랑 내 글이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심경 등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부장님도 많은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회계사님! 

글은 너무 고치지 마세요~ 

막상 종이 위에 글을 올리면 세상 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어색하지 않죠. 내가 어색할 뿐이고요. 

두려우세요? 

(필사본 만드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출판 작업이 시작되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게 될 겁니다~^^ 마음 단단히! 

한번 더 창작을 하시는 작업입니다! 

다르게 더 빛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더 어둡게 되면.. ㅠㅠ)


노사임당, 2024, 사랑이라는 착각


지금 호주 시간 밤 열 시 사무실. 한 시간 이내로 안 들어오면 실종 신고를 하겠다고 집에서 연락이 옵니다. 또 내일이 있습니다. 그만 두려워하고 그만 초조해하겠습니다. 다시 내 글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뭔 수가 또 있겠지요.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 총총



2024, 시드니, 사무실 밤 열시


작가의 이전글 슬픔을 이기는 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