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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ug 29. 2023

종교의 기원 - 근친상간 기피 심리

프로이트 정신분석

Totem and Taboo (1913) 우리말 번역: '종교의 기원' 중 근친상간에 관한 논문 요약.


Glossary

-토템: 사물이나 동물식물 따위에 신명한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서 관계를 맺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동물이나 스포츠 클럽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를 만드는 것까지 내려옴. 결국 그 영험한 존재랑 연결됨을 상징함.


-금제: 해선는 안 되는 행동 Shall NOT 




토템은 보통 동물을 설정하는데 공포스러운 동물도 있지만 식재료가 되는 동물도 포함한다. 드물게는 식물이나 비 같은 자연 현상도 그 노릇을 한다. 토템은 원시 혈족이 공동으로 섬기는 조상인 동시에 수호령이자 보호령이다.  


이 보호령은 다른 혈족에게는 위험한 존재이나 이를 숭배하는 혈족은 알아보고 지켜준다고 믿으며 그 대신 신성한 의무를 져야 한다. 가령 토템은 죽여서도 안 되고, 훼손해서도 안 되며 그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토템 관계는 그 혈족이 지니는 사회 의무가 되며 이것은 그 어떤 관계보다, 심지어 혈연 보다도 위에 서기도 한다. 이 토템 체계를 통해서 원시 부족은 사회 의무를 만들고 성性 제약 기반으로 삼게 된다. 


이런 토테미즘 중에서 정신분석학 구미를 자극하는 제도를 보면, 모든 토템이 공통으로 가지는 규칙인 <동일한 토템에 속하는 자는 서로 섹스할 수 없다. 따라서 통혼할 수 없다>는 <족외혼속>이다. 이로 인해 남성은 같은 토템을 섬기는 자기 부족 모든 여성이랑 섹스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미개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근친상간을 기피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근친상간에 민감하다. 이런 흔적은 지금 사회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같은 어법말이다. 


동족 간 성관계를 금지시키는 토테미즘에 그 바탕을 둔 족외혼습은 집단 근친상간을 방지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민족이 보이는 근친상간 기피 심리는 토템제도 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어서 개인이 근친상간을 방지하는 <풍습>을 추가했다. 


이런 종류 금제는 어머니나 자매가 집안에 사내아이랑 성관계를 방지하는데 이바지한다. 많은 문명에서 사내아이는 누이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고, 통상하는 말에도 누이 이름 일부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사내아이는 일정 나이가 되면 집을 떠나 살다가 양식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 집에 여자 형제가 없는 것을 확인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식이다. 


사위 vs장모 / 며느리 vs시아버지

가장 광범위하며 엄격하게 발견되는 금제 규정은 사위랑 장모 상간이다. 많은 경우 사위는 장모 곁에 가는 것을 기피하고 장모는 사위 곁에 가는 것을 피한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면 장모는 길에서 내려서 등을 돌리고 사위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서로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혈연이 아닌 이런 가까운 친척 사이에 적용되는 풍습 목적이나 의미는 역시 근친상간에 대한 방어 수단이라 할 수 있으나 이런 사위 v장모 사위 금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Sir John Lubbock에 따르면 이 풍습은 과거 <약탈혼속>때문으로 본다. 부녀 약탈이 흔할 당시에 약탈당한 '엄마랑 딸'도 많았을 것이며 그 후에도 이런 과거 흔적이 상징으로 남아 그 기원이 잊힌 뒤에도 계속 풍습으로 내림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애정 충동이랑 적개심 충동이 어우러진 갈등 관계, <양가관계>라고 본다. 장모는 딸에 대한 소유를 포기해야 하는 데 대한 거부감, 딸을 양도받을 국외자에 대한 불신, 한 가정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주도자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충동이 있을 법하다. 


개인 정신분석 결과, 결혼 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성심리 욕망 충족을 도모하는 여자는 부부 관계가 냉각되거나, 단조로운 감정만 있는 부부생활 때문에 위기를 자주 겪는다. 어머니는 나이를 먹어 가면서부터 자기 자식 자리에 자신을 놓아 보고, 자식을 자신이랑 동일시함으로써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식 감정 체험을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통하여 젊음을 유지한다’는 말처럼 실제로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얻는 가장 귀한 심리 이득은 이것으로 결혼이 주는 절망감에서 여자들을 지켜 주는데 자식이 없는 여자는 이것을 지니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어머니랑 딸 사이에 감정 이입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는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딸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 이입은 종종 어머니로 하여금 딸이 사랑하는 사위를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한 경우 이런 성향은 심각한 신경 질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장모가 사위에게 사랑 충동에 사로 잡힐 때가 자주 있는데, 문제는 거기에 저항하는 장모 마음속에서 대립하는 갖가지 힘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모습에 갈등이 연출된다. 이 경우 장모는 사위에게 매몰차고 가학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위 쪽에서 볼 때도, 연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충동 때문에 복잡해진다. 남성 대상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어머니나 누이인데  근친상간 금지로 그 대상이랑 유사한 외부 대상, 장모로  옮겨 간다.  


남성은 최초 선택지로 돌아가려는 충동을 느끼고 내부에 깃든 모든 경향은 반발하는데 이런 충돌이랑 쉽게 결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새로 나타난 대상 ‘장모’이다. 장모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대상도 아니고, 무의식에 각인된 대상도 아니기에 쉽게 거부할 수 있다. 남자가 딸에게 사랑을 기울이기 전에 먼저 장모 될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친상간 방지 풍습에서 혈족 관계는 직접 충동이고 이것을 방지하는 의도는 ‘의식’인 데 반해 사위랑 장모처럼 인척 관계 경우는 ‘무의식’ 중개물을 통해 매개되는 환상 속 유혹이다. 

야만인들이 근친상간을 기피하는 심리는 워낙 오래된 것이고 내가 보탤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현상은 <유아기>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며, 신경증 환자 정신생활이랑 분명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사내아이가 최초로 선택하는 성대상이 근친상간이며 자라면서 이 심리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예외 없이 다양한 단계 속 심리 유아 현상을 드러낸다. 그러니 신경증 환자는 어린 시절을 지배하던 성심리 조건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실패했거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이 두 가능성을 각각 <발육 부전>과 <퇴행>이라 한다.  


근친상간 충동에 지배되는 대對 양친 관계를 신경증 환자 <중핵 콤플렉스>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 발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심리 역시 지금은 억압을 통해 극복이 된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감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 후 무의식이 된 근친상간을 미개인들은 여전히 무서운 재앙으로 느끼고 있고 이것을 방지하느라 엄격한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시는 것처럼 말이 요약이지 일부 인용을 빼고는 제 맘대로, 이해한 수준에서 쓴 글이기에 무덤에서 프로이트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냐' 벌떡! 일어나실 수준입니다. 의사도 아니며 정신분석에 대해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한국인 출신이 100년 후에 한국어로 번역된 글을 읽고 다시 정리한 것이니, 오스트리아어로 쓰인 원저작하고 엄청난 간극이 있겠습니다. 이런 2차 저작이 읽기는 좋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작가님들께 조금 편하게 원작을 소개하기 위함이요, 반드시 원저작을 읽으셔야 합니다.


정신분석 이론 한 줄을 가지고 제 개인 서사를 버무려 뽑아냈던 지난 글들은 프로이트에 아직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 흥미를 드리고자 했음입니다만 <요즘작가>님 요청으로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론하고 수필을 분리해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 최근 따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허접하지만 제 글들이 작가님들께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로 인해서, 내가 처음에 꿈꾸었던 것, 프로이트는 괴팍한 성욕주의자 영감탱이라는 잘못된 시선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기를 바랍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우리 작가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마음을 좋게 보시어, 그들 무의식 속에서 내가 이토록 흠모하는 프로이트라는 표상이 아름답게 만들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푸른 별처럼 빛나는, 단 한 줄도 버릴 것이 없다는, 프로이트 글을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나누겠습니다.

  


브런치 글을 쓴다는 것은 프로이트 선생에게 제가 올리는 제사祭祀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며,

이만 총총.



추신: 프로이트 저작을 읽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마치 내가 더 총명해지는 착각도 들지만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도움으로 함께 읽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 심리학자 등이 어울려 프로이트 저작을 읽는 오픈톡 모임이 있습니다. 아래 <프로이트를 읽는 사람들>에 오시면 함께 공부하시고 교제 나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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