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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Mar 16. 2024

군중 심리 - 1부: 2장

군중은 변덕스런 감정이다

구스타브 르 봉 쎔이 쓰신 <군중심리> 중  1부 - 1장 지난번에 요약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이어 2장 상세 리뷰합니다. 이 글도 단순 요약이라기보다는 읽은 후에 제 생각을 첨언 부분이 많기에 실제 text랑 많이 다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1부 2장 군중 감정이랑 도덕성


군중은 늘 감정 과잉 상태로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계획도 의심도, 비판하거나 추론하는 능력도 없으며 맹신할 준비로 가득 차있다. 왜냐하면 군중이 되기 위해선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은 삭제되고  공통 분모로만 엮이는데 그 공통분모란 어린아이 같은 상태 혹은 문명을 받아들이기 전 미개인들 같은 열등한 부분들로 그것들만이 교집합이 된다. 


군중이 가지는 특성이 이렇다 보니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을 군중으로 묶은 후에 충동을 가하면 노예로 만들 수도 있다. 개개인은 뛰어난 사람들이라도 광신도라는 군중에 일부가 되면 충분히 노예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군중 기본 특성은 그들은 거의 무의식으로 인도된다. 군중 행동은 두뇌보다는 척수 신경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무의식이나 본능에 끌린다는 말씀인 듯) 군중은 그 점에서 완전히 원시 존재에 가까워지며 우연히 주어진 자극에 따라 행동한다. 즉 군중은 충동으로 움직이는 노예이다. 


생리학식으로 표현하자면 군중 속 개인은 반사 행동을 자제할 능력이 없다. 반면 고립된 개인은 그런 자극이 오더라도 그에 따라 행동할 경우 발생할 위험을 추론할 수 있기에 그따위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군중은 가해지는 충동/자극에 따라 관대하기도 하고 잔인해지기도 하며 영웅이 되거나 겁쟁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그런 충동에 사로 잡히면 그 안에 개인은 자기 보전성도 버리는 강압에 사로 잡힌다. 


군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극은 매우 다양하며 군중은 그 자극에 항상 반응하기에 그들은 매우 변덕스러워진다. 그러니 군중은 어제는 전혀 망설임 없이 피비린내를 풍기는 사형집행인으로; 오늘은 관대하며 영웅심으로 뭉친 순교자처럼 행동한다.


유시민 작가는 특정 강연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군중이하는 투표 결과가 왜 변덕을 부리고, 끝에서 다른 끝으로 휙 휙 이동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 답은 이렇게 초입부터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무의식에 대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셨기에 저에게는 너무도 잘 보이는 이 답이 유작가님께는 안 보이는 것인가 싶습니다.


군중은 봉기를 일으키면 절대로 자신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블랑제 Boulanger 장군이 대의를 내세워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하면 기꺼이 따를 사람이 십만 명도 넘을 것이다. 이렇게 군중은 무슨 일이 되었든지 간에 미리 계획할 줄을 모른다. 군중은 극도로 상반된 감정을 연속해서 느낄 수가 있다. 항상 순간에 받는 자극에 반응하고 따른다는 반증이다. 


군중이 이렇게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들을 다스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 특히 그들이 공권력을 장악했을 때 더욱 그렇다. 군중은 무언가를 열렬히 원한다. 그렇지만 그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원하지는 않는다. 끈질긴 의지를 발휘하지도 못하고, 지속해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원이 많아지면 군중은 막강한 힘을 가진다는 느낌에 자신들 욕망을 실현시키는데 무엇도 (e.g. 정부, 법, etc)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기에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 머릿속에서는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고립된 개인이라면 거리에 불을 지르거나 상점을 약탈하고 싶은 유혹을 설사 느낀다 하더라도 참는다. 하지만 군중 일원이 된 개인은 군중이 이룬 많은 수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힘을 의식하며, 누군가로부터 약탈은 물론이고 살인이라도 암시를 준다면 즉시 유혹에 넘어간다. 다행히 우리 인간은 신체구조상 이런 격한 감정 상태를 오래 지속하지는 못한다. 


모든 군중은 언제나 과민하게 자극에 반응하고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지만 그 정도는 인종(문화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듯)에 따라 매우 다르다.


맹신: 암시를 잘 받는 성질

군중이 가진 일반 특성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피암시성이고 암시가 인간 결합체에서 얼마나 잘 감염되는지를 보았다. 그러므로 군중 감정은 정해진 방향으로 급속히 향하는 것이다. 아무리 객관성을 가진 군중이라도 대개는 뭔가 기대를 하고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암시하기 쉬워진다.


군중은 뭔가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그럼 군중이 기대하는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것을 채워주는 식으로 답을 주는 요식행위를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군중을 노예로 만들 수 있겠군요. 정치인들이 들으면 혹할 내용들인데 잘 생각해 보면 고립된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상대가 무얼 기대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싫은 경험을 합니다. 조직 문화가 만연한 회사나 군대에서 윗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 짜증만 내는 것을 목격합니다. 윗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 무의식에 있는 내밀한 그것을 타인, 특히 부하에게 말하는 것이 자칫 자신을 너무 노출시키기에 위험해진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리를 귀신같이 알아내서 척척 대령하고 상관을 기쁘게 해주는 부하는 총애를 받겠지요. 그 부하는 심리학을 몸으로 배운 사람입니다. 


처음 주어진 암시는 감염되어 즉각 군중 모든 뇌에 이식되고 방향이 정해진다. 일단 이렇게 진입한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지려는 경향을 보이기에 거기에 몰두한다. 이런 암시는 이를 반대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고 애초에 주어진 자극에 따라서만 달라진다. (애초에 자극을 통제해야지 한 번 자극이 촉발되어 암시가 무의식에 전달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이야기).


군중은 단순한 논리로서만 생각할 수 있기에 말도 안 되는 일도 너무 쉽게 조작되고 전파된다. 군중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에 속아 넘어가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어느 건물 위층에 켜진 촛불이 파리를 포위한 프러시아군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단정지은 사건이 있는데 문제는 그 건물이 관찰자로부터 몇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지만 군중은 그런 타당성은 따지지 않고 그 사건을 믿는다. 


군중 사이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전설이 만들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무조건 믿으려는 성질 말고도 그들 상상력 속에서 사건들을 다시 왜곡하는 성향도 있기 때문이다. 군중은 이미지를 통해 사고하며, 일단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그것이랑 아무런 논리도 연관성도 없는 다른 이미지를 연이어 상기시킨다. 마치 우리가 멍 때리면서 어떤 사실을 마음속에 떠올리면 논리도 없는 관념들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상태랑 비슷하다. 


이성은 그렇게 상기된 이미지들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군중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왜곡은 실제 사건에 살을 덧붙이면서 군중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환상인지를 혼동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그들은 어떤 사건에 주관성이나 객관성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군중은 자기들 마음속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그 이미지들은 대부분 실제로 관찰된 사실이랑 별 공통점이 없다. 


군중은 직접 목격한 사건을 무수히 왜곡하며 또 이 왜곡은 그를 구성한 다양한 개인들 기질에 영향을 받아서 더욱 다양한 의미가 더해질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감염이 이루어지고 나면 왜곡된 성격이랑 의미는 군중 속 모든 개인에게 똑같은 의미가 된다. 집단을 이루는 개인 중 한 사람이 최초로 시작하는 왜곡이야말로 전파되는 암시 핵심이다. 기적을 즉시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목격자 한 명이면 충분하며 이것을 '집단 환각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군중을 형성하는 개인들 자질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박식하던 무식하던 군중을 이루는 순간부터 관찰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면술에 걸린 자를 지배하는 상황이랑 비슷하다. 


봉쎔은 최면에 대해 조금 잘못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때 최면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를 해볼까 하여 알아보았는데요.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최면에 걸리면 최면사 암시로 인해 인형처럼 움직이는 일 따위는 일어날 수가 없으며 본인이 원하면 바로 깨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일이나 최면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기막힌 일은 동화 속에나 있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봉쎔은 최면으로 그런 상황이 되며, 군중은 그런 모습이라고 여러 차례 비유를 하고 있네요.


착각에 사로잡힌 최초 목격자 증언이 사건을 엉망으로 만드는 예는 많다. 암시란 언제나 막연한 기억으로 개인이 일으키는 착각으로 출발하며 그 최초 착각을 긍정함으로 이루어지는 전염이다.


관찰자는 어떤 사건을 봄에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킬 특이점을 찾고 그렇게 연상된 개념은 이해 영역을 침해하고 모든 비판정신을 마비시켜 버리는 결정체 역할을 한다. 따라서 관찰자가 보는 것은 더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정신 속에 연상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어머니도 자식 시체를 잘못 알아본다. 


여성이나 아이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관찰자들이 하는 증언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법정에서 어린아이를 증인으로 세우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판사들은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나 심리학 기초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쉽게 안다. 다만 악의가 없을 뿐이다.


군중 관찰 문제로 다시 가자. 군중 관찰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대부분 감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암시하는 어떤 개인 착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군중 증언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해야만 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찰한 사건이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이고 그 증언이 가진 가치란 보잘것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책이야말로 순수한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란 잘못 관찰된 이야기들을 나중에 설명을 덧붙인 사실들로 이루어진 근거 없는 이야기다. 그런 책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회반죽이나 이기는 게 훨씬 더 쓸모 있는 일이다. 


물론 역사를 통해 문학이나 예술작품 등이 탄생하지만 지난 시대를 실제로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부처, 예수 등 위인들 실제 삶에 관해서 우리는 단 한 가지라도 알고 있을까? 군중 정신 상태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실제 영웅들이 아니라 전설 속 영웅들이다. 


군중 상상력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인종(문화라고 봅니다)에 따라 부단히 변한다. 예컨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냉혹한 신神 야훼는 테레사가 말한 신이랑 크게 다르고 중국에서 숭배되는 부처는 인도 부처랑 아무 공통점이 없다.


군중 심리학이 발달할수록 우리 역사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알게 되기에 미래에는 나폴레옹 역시 헤라클레스 전설 따위로 간주해 버릴 것이다. 역사는 오직 신화만을 전하게 된다는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군중이 느끼는 과장 & 단순함

군중이 드러내는 감정은 좋든 나쁘든 무척 단순하며 매우 과장되어 있다. 군중을 이룬 개인은 원시인들이랑 매우 비슷한데 섬세한 의미에는 접근도 못하고 전체를 뭉뚱그려 파악하며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감정은 한층 더 과장된다. 왜냐면 어떤 감정이 일단 표출되면 암시랑 감염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는 데다 그 목표인 확실한 동의가 그 위력을 엄청나게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군중은 감정이 단순하고 과장되기에 조금씩 일기 시작한 반감이나 반론도 군중을 이룬 개인들에겐 단번에 격렬한 증오로 폭발한다. 이런 과격함은 책임감이 없는 군중 특성으로 한층 더 과장된다. 군중은 숫자가 많으므로 무사하리라는 확신이랑 순간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리석고 무지하고 시기심 많은 개인이 궁중을 이루면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기력하다는 감정에서 해방되어 잠깐이지만 엄청난 힘을 갑작스레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런 감정은 원시 본능에서 물려받은 나쁜 것들을 자극한다. 


반대로 군중은 매우 고귀한 덕성을 갖춘 영웅 행동이나 헌신을 하는데 이는 역시 고립된 개인은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감정이 과장된 군중은 오직 과장된 감정에만 감동한다. 군중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웅변가는 과격하고 거침없는 확언을 과장하고 반복해야 한다 (봉쎔, 백 년 후인 지금은 허위사실 유포죄라는 것이 있어요ㅠㅠ).


더더구나 군중은 영웅들에게 과장된 감정을 요구한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영웅들 자질이랑 덕성은 항상 과대 포장되어야 한다. 그러니 군중은 영화를 볼 때도 실제론 말도 안 되는 용기랑 도덕성을 주인공에게 요구한다. 이러니 군중에게 말하는 기술은 분명 낮은 수준이지만 아주 특별한 소질을 요구한다. 


어떤 사업이던 투표던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면 경영자가 군중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군중 (소비자/투표권자) 정신 상태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매우 유능하고 섬세한 리더도 결국에는 판단 착오를 하며 실패한다.  


결론 내리자. 군중은 오직 감정에 대해서만 과장할 뿐 지능은 현저히 낮다. 따라서 군중은 감정 차원에서만 아주 높이 올라가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매우 낮은 곳으로 간다. 


군중이 가진 권위주의 (군중은 꼰대다)

군중은 어떤 사실을 절대 진리로 여기든지 아니면 오류로 치부해 버린다. 그들은 이성을 통한 사유로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암시를 통해 신념을 형성한다. 종교 신념이 얼마나 관용이 없고 인간 정신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라.


개인은 반론이나 토론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군중은 결코 그렇지 않다. 권위주의로 무장하여 관용성이라고는 일절 없는 것은 모든 군중에게 있는 성향이다. 


군중은 힘 있는 사람에겐 존경하고 순종하지만, 그들이 볼 때 무능력한 사람 행동에는 그 다지 감동받지 않는다. 군중은 온후한 지배자에게는 결코 공감을 표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폭군에게는 동조한다. 독재자가 군중에게 짓밟히는 일은 그가 권력을 잃고 약한 범주로 들어갔을 때이다. 


위엄은 군중을 매혹하고, 권위는 그들을 압도하며, 칼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군중은 허약한 권위에 대해서는 언제든 봉기하고 강력한 권위 앞에서는 언제라도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군중이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대 해석하여 군중이 혁명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군중 심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군중은 무의식 지배를 강하게 받으며 정신 문화유산에 예속되어 있기에 극도로 보수성을 띤다. 그들은 무질서에 싫증을 느끼고 대신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항상 택한다. 이런 보수 성향을 군중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방금 군중이 변덕이 심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보수성이랑 반대되지만 그런 변덕은 뜬구름 잡는 문제에 대해서 그럴 뿐이다. 군중이 전통이라는 것에 갖는 맹목성 존중은 가히 엄청나다. 그들은 생활이 뿌리부터 바뀌는 변화에 대해서는 무의식에 공포를 가지고 있다. 


군중 도덕성

군중이 변덕스럽고 수준이 낮다면 고귀한 도덕이란 없겠다. 우리는 사납고 파괴하려는 본능이 마음속에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군중은 살인 방화 모든 범죄를 저지를 있지만 또한 고립된 개인이 없는 고귀한 헌신이나 희생도 있다.  


개인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반면 군중은 어떤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이러니 투표는 개인 이익을 위해서 하지 않고 군중 심리에 휩싸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세상 가장 흉악한 악당들도 군중을 이루기만 하면 대단히 엄격한 도덕 원칙을 만든다. 그러니 열등한 인간들이 모인 집회에서도 사람들은 매우 근엄한 척하는 것을 관찰한다. 세상 양아치나 빈정거리기 좋아하는 건달도 어디서 조금 야한 장면이라도 보면 평소 지들이 하는 말버릇에 비하면 훨씬 고상하지만,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그 장면에 대해 구시렁댄다.


이렇게 군중은 저열한 본능이랑 고귀한 도덕을 모두 보인다. 그러니 군중에게 무욕이나 헌신 등 어떤 미덕을 주입하게 되면 어지간한 현자들도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고결한 도덕성을 소유하기도 한다. 물론 무의식으로 하는 짓이지만 그거야 뭐 중요한가! 


군중이 이성보다 무의식에 인도된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다. 만약 군중이 이성을 통해 움직인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기 이해관계로만 행동했을 것이고, 그 결과 우리 문명은 발달하지 못했다. 군중이 고귀한 희생이나 헌신을 안했다면 인류는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네요.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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