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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Jul 12. 2024

CRITICAL POINT - 임계점 #1

사탄이 준 계약서

백승기, 2014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구상해야겠습니다. 시나리오 쓰는 것이 숙련된 작가라면 바로 시작하겠지만 저는 이야기 작가이니 먼저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하고 재미있게 풀어보고 그것을 문감독 조언대로 배경이랑 대사로 나누어 읽는 사람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도록 변환하면 되겠습니다.


제목은 우선 CRITICAL POINT (임계점)라고 정했는데요. 찾아보니 야한 웹툰이 같은 제목으로 있는 것 같더군요. 제 글도 야하니 뭔가 통하네요.


큰 골격은 호주 유학생 '라율'이가 지독한 타지 스트레스랑 외로움에 시달리다 신비한 꿈을 꾸고는 그것이 현실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백승기 감독 영화 <숫호구>에서 어느 정도 오마주 식으로 내용을 빌려 왔고요. 또 다른 큰 틀은 구약 성경 <욥기> 일부에서 따왔습니다. 문감독 말로는 성경을 골자로 하는 플롯은 동-서양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잘 먹히는 것이니 좋은 선택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거기까지 노림수가 있던 것은 아닌데 듣고 보니 기분 좋아졌습니다, 헤헤. 이렇게 되면 넷플릭스 진출^^


다시 글 내용으로 와서, 라율이라는 소심한 유학생이 특별한 꿈을 계기로 인생 임계점을 넘어가는 여정을 다룰 것인데요. 그 길에서 제가 기존에 만든 세계관이랑 다시 만나는 것도 설계하고 있습니다.


<날 사랑한 시리즈>에서 시작해 지금은 <살인자 시리즈>까지 넘어온 드림 회계사가 사는 세계랑 신학대학 교수인 김드림 교수가 사는 성스럽게 보이지만 은밀한 세계를 율이가 사는 세계랑 충돌시켜 보려 합니다. 물론 율이가 주인공으로 가는 길에 드림 회계사랑 김드림 교수가 행성처럼 나타나 부딪히는 서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셋은 또 각자 길을 가겠지요.


제가 워낙 무명작가이고 시나리오는 또 처음이라 지금 써봐야 그냥 브런치 글 하나 남기고 사라지겠으니 지난 6월에 넣은 세 가지 공모전에서 뭐라도 하나 걸리면 그것을 다시 지렛대 삼아서 스스로 유명세를 올린 후에 시나리오 작업을 충실히 할 계획이고요. 9월부터 하나씩 결과 발표가 있으니 우선은 이렇게 뼈대를 세워 놓고 계속 정신분석 공부를 하면서 내공을 키우겠습니다.


싹 다 탈락할 경우는 또 다른 공모전에 반응이 좋았던 <안녕, 루나>를 보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스로 지명도를 높이는 수작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결과에 상처받고 글 쓰는 것에 너무 지치지만 않는다면요. 자 그럼
 쓸거리를 [기-승-전-결] 형식으로 아래 정리해 봅니다.


라캉 쌤이름에서 "라"를 빌려오고 mz이름인 "율"을 사용;

꿈에서 악마를 만남으로 무의식에 영향을 받음;

악마 이야기는 구약 욥기에서 차용;

무의식은 환각을 만들어 내고;

이런 무의식 변화는 율이 사는 실제계를 변화시킴;

현실 삶에서 많은 여자를 만나는 과정은 '숫호구' 오마주;

드림 회계사 세계관 충돌;

김드림 교수 세계관 충돌;

결론은 꼰대식으로 권선징악으로 할지 어떨지 아직 구상 중.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가 평소 잘하는 이야기 풀어내기 방식으로 우선 이렇게 써 놓고 더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계속 고치며 완성도를 극한으로 올려놓은 후에 시나리오 변환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끝으로 이런 시나리오 쓰기 작업이 정신분석에 주는 영향도 생각해 봅니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알아가는 실천입니다. 그 과정에서 꿈도 해석을 하는데요. 꿈은 90% 이상이 이미지로 되어있기에 사람들은 그 이미지에만 중점을 두지만 그 이미지라는 것도 결국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라서 시니피앙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쓰기는 철저하게 글쓰기입니다. 그 안에는 상황을 설명하는 시니피앙들이 뭉쳐있을 뿐 단 한장 사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림이나 사진을 첨부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계획 의도가 들어간 제작 노트가 될 것입니다. 즉 시니피앙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시나리오 쓰기이니 이 얼마나 정신분석스러운 일입니까!


구약, 욥기 - 욥 쌤도 근육이 ㅎㄷㄷ


내 이름은 라율이다. 성이 "라羅"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름이 외자로 "율"인 것은 우리 선조 중에 "라유"라는 유명한 할아버지가 있어서 우리 아버지가 그걸 쓰려했다가 촌스럽다는 엄마 반대로 막혀 타협점을 구하다 탄생한 것이 "라율"이다.


이름 하나도 강력한 의지를 가지지 못해 세상이랑 타협하다 태어났으니, 나는 평생을 세상 사람들 눈치나 보며 풍파가 닥치면 고개 숙이고 늘 조심조심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패배감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은둔가라는 말씀은 아니다.


물은 1 기압 아래 100도가 되면 미친 듯이 끓어오른다. 그러면 물을 담았던 냄비가 몸부림에 덜덜 떨리고 넘치는 물방울은 자신을 달구는 불까지 꺼뜨릴 기세로 발광을 한다. 바로 직전 99도까지는 세상 조용하던 물이 1도가 더해지면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데 이 순간이 "CRITICAL POINT 임계점"이다. 나는 늘 99도까지는 달성하나 매번 그 1도를 넘지 못해서 애매한 인생이다.


결국 고국에서 뭐 하나 이루지 못한 나는 집안 돈을 업고 호주로 유학을 오게 된다. 듣기에 호주라는 사회가 한국보다는 경쟁이 약하다니, 기압이 낮으면 끓는 점도 낮아져, 물은 낮은 온도에서도 임계점을 돌파한다는 나름 과학 유튜버 같은 가설을 토대로 호주에 온 것이다.


와보니 나를 포함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법法이란 것을 대하는 태도가 호주 사람들이랑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호주 사람들은 법이라고 하면 지켜야 하는 것으로 outlaw라는 말은 단순히 법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범을 어긴 악인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에게 법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로 될 수 있으면 사바 사바해서 융통성 있게 사는 것이 미덕이다. 우리말 칭찬 중에,

이 친구는 법이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있는데, 이것을 완벽한 영어로 번역한다고 해도 호주 사람들은 이것이 왜 칭찬이 될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법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법이란 날 보호해 주거나 심지어(!)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호주 사람들에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게 법이란 귀찮은 것이다. 운전을 할 때 지켜야하 하는 교통법, 경제생활을 하면서 준수해야 하는 세법, 건물을 짓거나 사용할 때 따라야 하는 건축법들을 다 지키다 보면 나는 늦고 가난해지고 족세 채워진다. 그러니 법이란 어떻게던 잘 연구해서 교묘히 피해야할 대상이기에 한국 사람들이 법을 공부하는 것은 적을 알기 위해서이며, 그나마도 권력을 가지게되면 귀찮은 공부도 멈추고 그 권력 수준에서 법을 무시하고 만다.


교통순경보다 높은 관리는 교통법을 저촉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어딜 순경 따위가 높으신 권력자 차를 세워서 딱지를 떼는가? 우리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법을 초월할 존재가 되기 위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법을 피해 감으로써 얻는 혜택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리 좋기만 할까? 아무리 보아도 법을 피했다는 사실 그것뿐이다. 그리고 법을 지키며 사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우쭐해 하는 기쁨,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법을 피하기위해 들인 공력이랑 위험 요소를 고려해 보면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이미 늦은 이야기지만 내가 평생 가지지 못했던 부족한 그 1도는 법을 지키는 것 안에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법인데 그 밖에서 무얼 해보려 했으니 우리 집안사람들은 늘 임계점을 넘을 수 없었다.


숫호구, 백승기, 2014


호주에 내가 왔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세상이 변한 이후 우리 집도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었지만 현실이 불안할수록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더욱 돈을 쓰게 된다. 그러니 가계부 상황을 보면 유학하던 자식도 데리고 와야 할 판이지만 우리 집은 반대로 나에게 남은 종잣돈을 올인해서 이곳에 보낸다. 말라가는 부족을 살리기 위해 남은 식량을 다 털어서 바다를 건너온 척후병인 셈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이 99도인 내 불길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내가 아무리 무던한 놈이라지만 이번 노름판에서 우리 집안이 마지막 베팅했다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외로움도 모르고 비굴한 것도 모른 체 5년을 살아 대학을 졸업하고 영주권도 받았지만 삶은 펴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사냥을 해서 뭐라도 고국있는 가족들에게 보내했다. 그렇게 쥐꼬리만한 월급을 다시 토막 내다보니  삶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5년을 참았던 성욕도 이제는 더 이상 자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지랄을 해댔으나 가난한 유학생 출신 노동자를 좋아해 줄 만한 키가 크고 '근사한' 여자는 없었다. 그럼 근사하지 않은 여자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근사한 여자를 만나라는 명령은 내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절대 법령이라 거역할 수가 없었다.


숫호구, 2014


99도로 살던 내가 호주에 와서 1도를 얻어 난생 처음으로 임계점을 넘겨보았지만 그것은 대학 공부라는 한 가지 분야에서였다. 졸업을 하고 보니 내 앞에는 끓여야 할 냄비가 줄줄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다시 100도까지 끓여야 했지만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랑은 다른 자질, 새로운 방법을 요구했다.


맘에 드는 여성들에게 몇 번 고백을 해보았지만 번번이 까였다. 법을 잘 지키게 생긴 내 모습이 싫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다시 outlaw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미칠 지경이었다. 공부하라고 해서 했고, 졸업하라고 하시어 했고, 나가 싸우라 해서 싸웠고, 여기까지 왔으나 여전히 1도가 부족하다 했다.


서리같이 차가운 여자들 경험이 내게 쌓였지만 그렇다고 불길 같은 성욕이 식지는 않았다. 그렇게 괴로운 날이 계속되다가 나는 꿈을 꾸게 된다. 너무나 명확한 꿈이라 지금도 그것이 마치 현실인 것만 같다.


꿈에선 멀끔한 모습을 한 검은 악마가 나를 찾아왔다. 자신을 사탄, 악마 따위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그 행색으로 그가 서양식 악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마는 자신이 신神이랑 모든 권세를 똑같이 누리며 능력도 행사한다 했는데 단 한 가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만 가지면 자기도 신이랑 같아진다고 했다. 심지어 이 세상을 지금 당장 지배하는 것도 성스러움 Divine 보다는 악 Demonic이 아니냐며 자신을 과시했다. 설득 되었다.


그러자 내게 제안을 했다. 신은 우둔한 너를 사랑한다. 네가 신을 버리고 내게 영혼을 넘기면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 더 이상 슬픈 사랑을 하지 않도록, 신이 설정해 놓은 네 운명을 끊어주리라! 이렇게하는 것이 과연 사탄에게 어떤 실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 해주면 된다니 나는 거절할 이유가 크게 없었다. 단지 신이 있다면 지옥 불길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다 거기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좀 되었지만 이미 충분히 현실에서 불맛을 보아온 나였기에 잠시 고민 끝에 '그러겠사옵니다' 했다.


영혼을 판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나를 규정했던 신이 없어지고 그가 만든 법이라는 것도 사라졌다. 나는 다시 자유로운 한국사람이 된 것이다. 악마는 내게 자세한 계약 내용을 주었다.


첫째, 너는 이제 마력을 가지게 되었다. 네가 원하는 여자에게 가서 진심으로 고백하면 여자는 너에게 몸을 열 것이다.


둘째, 너는 매 30시간 안에는 무조건 섹스를 해야 한다. 사정을 마치는 순간 그 30시간은 다시 시작된다.


셋째, 내가 준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강제로 아니면 위계를 이용해서, 병사처럼 행동하면 날 믿지 않는 것이 되기에, 너는 오로지 말로써 여자 마음을 열고 왕처럼 그 다리 사이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넷째, 만약 30 시간을 넘기게 되면 너는 게으른 종으로 내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니 계약은 파기되어 나는 다른 종을 찾으러 가겠다.


끝으로 너는 이렇게 계약이 파기되면 전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미 신 눈밖에 났고 네 뒤를 봐줄 사탄도 없으니 말이다.




꿈을 깨고보니 이게 무슨 황당한 개꿈인가 싶었다. 내 얼마나 세상이 밉고 굶주렸으면 이런 염병할 꿈도 다 꾼다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현실에 적용할만했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내게 마력이 생겼다면 안쓰면 나만 손해 아닌가?


그래 이제 그럼 나는 법을 초월한 존재여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좀 알아야 했다. 여자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 패턴이라는 것도 이제는 충분한 정보로 축척되어 문서로 있을 것이다. 그 법을 먼저 들여다 보기로 했다.


단정한 머리 & 코털 정리, 깨끗한 옷차림, 은은한 정도인 향수, 부드러운 말투, 매너 있어 보이는 천천한 움직임, 성실해보이는 직업 이런 것들을 필요로 했고 대부분은 다행이 이번주 안에 싹다 실행가능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동네 호주 은행에서 일하던 차라 박봉에 쫌쌩이 같은 직딩이지만 대략 성실해 보였다.


준비가 되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나는 아직 사정한 것은 아니니 30hours 시간-어택이 시작하지 않았다. 그럼 처음으로 누구 몸에 씨를 뿌릴까 물색을 해보았다. 얼마전에 남친이 있다며 날 거절했던 일식당 직원이 떠올랐다. 그래, 너로 정했다.


가자!


숫호구, 2014



영화는 허구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은 사실이다.
- the unkown



https://youtu.be/VVP-FJj35MI?si=eGenzpxZ7egwAN2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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