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랑
누군가는 푸르른 시절로 돌아가면
영어를 공부해 온 세상으로 나아가고
부족한 소양도 쌓아서 지식인이 되겠단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연애만 하고 살 것이다
내 후줄근한 모습도 보여주기 싫고
불쾌한 상대 냄새를 느끼면서 한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그립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며 각자 살리라
그래도 가끔은 내 공간을 침범하도록 허락하겠다
그러다 끌리면 언제고 만나 알몸으로 엉키며 향락하리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성경은 그만 덮고 정신분석을 탐구할 것이다
교회 활동 따위는 고양이를 대신 보내고
나는 온전히 연애에만 몰두할 것이다
많은 사람을 알 필요도 없고
쓸데없는 모임을 만들어 아웅다웅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로지 못다 핀 내 오르가즘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고파
상상했던 모든 쾌락을 좇을 것이다
결혼은 하지 않으련다!
천하에 없는 황진이가 아내라도 초라한 월급봉투를 그 앞에서 펼치고
아이가 없어도 걱정, 있어도 걱정; 집이 없어도 걱정, 있으면 이자율 걱정
매일 들이닥치는 삶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발기는 흐물거리고
이렇게 꼬무룩해진 팔루스는 프로이트 선생님 섬세한 손길로도 복구할 수 없으리니
결혼은 연애 무덤이 아니고 섹스 무덤이더라
그 어떤 요부를 얻은들 부모 용돈 문제로 한바탕 싸우고 나면
부모도 없고 돈은 재벌처럼 많다면 그런 싸움이 없겠지만
세상에 부모 없는 재벌이 되는 말인가?
연애만 실컷 하는 삶은 어떨까?
통장에 얼마가 있던지 서로 상관없고
내가 어떤 위험한 운동으로 몸을 상하고
어떤 허접한 글을 쓰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던
세상 쓸데없어 보이는 공부에 시간을 쏟은 들
그 사람에게는 다 멋있어 보이고 전부 신기한 매력이 되어라
환상 속에서는 그렇게 살기로 하자!
그렇다면 시들어버린 내 로맨스는 계속될 것이요
<사랑>이라는 기표는 멈추지 않고
끝없이 끝없이 미끄러져 나갈 것이다
상대가 내 허접한 이미지에 고착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 연인이 날 생각함에 도무지 누구인지 모르도록 할 것이다
그 사람이 날 한 가지 이미지로 규정하는 순간,
내 매력도 내 연애도 끝이 날 것이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상상하지 못하도록 거세하는 할례이며
미련한 답을 내려주는 답답한 선비 질이다
공유도 결혼하면 아내에겐 한 가지 이미지가 되어 버린다
세상 카사노바라도 누구라도 연애는 거기서 끝이 날 것이다
도사는 절대로 여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는 놈들을 혐오했지만
이제는 그게 여자들이 원하는 답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명확한 답을 여자들에게 주었던 자들은 모두 버림받을 지어라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고 밑 빠진 구덩이였음을 이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설렘으로 가득하고
화려한 섹스로 가득 찬 연상聯想만 할 것이다
모두가 지나고야 안다는 인생을
오늘 나도 알게 되었다
답을 알았다지만
이제는 실재로 이루기엔 너무 늦었나니
쾌락만이 가득한 어린 시절 상상계로 돌아가
근사한 수의사가 되는 환상을 또 지어낼 것이다.
... 가치 있는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이런저런 조직을 만들고.. 나라는 개인이 지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가져가버렸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아무렇게나 뒤엉켜버린 내 삶...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