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명 속에서 살기 위해, 서로를 살인하지 않고 강간당하지 않기위해, 법을 세우며 본능을 희생해 욕망이 거세된 상태로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나는 포기한 본능을 마구 실현하는 듯한 연예인이나 주변 뺀질이들을 보면 견딜 수 없이 분노가 차오릅니다. 특히 욕구 중에 욕구라는 성욕에 대해서는 충분히 향락하는 듯한 놈이 보이면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합니다.
프로이트 선생이 섹스광이며 섹스 전도사라는 세간 평가가 무색하도록 선생님 글은 우리가 문명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사는 대신 포기한 욕망 때문에 겪는 히스테리 신경증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을 통해 거세된 우리를 달래주려 하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왜냐면 정신분석으로도 그 갈증은 완전히 해소가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욕망'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절대 채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라깡 쌤이 자주 말씀하시는 향락(욕동)이라는 것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내가 잃어버린 본능(사물)을 다 찾을 수는 없지만 <대상a>라는 파편을 통해서 일부 향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환상이 피어오릅니다. 공유같이 생긴 수의사랑 연애하는 K-드라마 스토리랑 비슷하겠습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나만 사랑하고 나만 아껴주는 능력 있는 멋진 이성 따위는 오직 꿈속에만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상상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대부분 말은 안 하지 속으로는 그 환상이 나를 매일 밥 먹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눈을 뜨고 추운 아침 하기 싫은 일을 하러 주섬 주섬 나가지요. 매 순간 자신에게 거짓말할 구실을 우리는 찾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 이것만 끝나면 좋아지리...
저는 주변에 널려있는 환상 잔해들, 그 사소한 파편들을 늘 주어 담고 진심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모으다 보면 날 만족시켜 주는 기적이 가끔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실패하기에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나를 세상 하찮은 놈이라고 규정하지만 그렇게 하는 일은 내게 적어도 오늘 하루를 살아갈 환상을 채워주니까요.
시드니에도 수많은 한인 단체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실체도 없고 정확한 내규도 세우지 못했으며 만나서 어떤 결과를 내지도 못하는 것들이 다수입니다. 마치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랑 비슷합니다. 저는 브런치 작가이기 위해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감투라고 쓸데없이 공력을 쏟느냐고 하지만 저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며 큰 기쁨이 됩니다.
재호주 유도회에서 사무총장으로 일을 하면서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합니다. 한국에서 연예인도 불러서 큰 행사도 마쳤습니다. 이런 협회에서 선지원금도 없이 일을 벌이고 잘 마무리한다는 것은 제가 보아도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법이란 간단합니다. 진심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물가가 살벌한 시드니에서도 임대료가 비싸다는 요충지에 전혀 돈벌이랑 상관없어 보이는 "종합 유술柔術 센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타격이 아닌 유도나 씨름 같은 무술을 총괄하는 도장인데요 백화점에 이것을 입점시키는 일로 제가 봐도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 날고 기는 사업장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파산하기 일쑤라는 백화점을 상대로 유술이라는 상품을 판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세상물정 모르는 놈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이런 짓을 하나 싶겠지요.
우리 고양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
오는 월요일에 백화점 총지배인이랑 마지막 미팅을 잡았습니다. 백화점 측에는 제가 보낸 제안서에 혹해서 이제는 그들이 몸이 달아 빨리 계약하자고 성화입니다. 그들을 설득시킨 전략은 이렇습니다.
- 당신네 백화점에는 매번 커피숍이나 식당 등 뻔한 사업장들 뿐 아니냐? 유술이라는 특별한 서비스는 분명 차별화를 준다.
- 더욱이 다른 사업장이랑 우리는 co-relation이 좋다. 부상이 많기 때문에 의료 시설이 즐비한 당신 백화점에 우리는 환자를 상시로 공급할 것이다.
- 아이들 수업이 많기에 엄마들이 오는데 수업하는 동안 미용실이나 식당 커피숍은 자연스레 엄마들로 붐빌 것이다.
- 수업이 없는 일요일은 지역 사회에 무료 강좌를 개설해서 백화점 이미지도 좋게 하겠다.
실제로 백화점은 이게 맞는 말이라고 판단하여 쿵쿵 뛰며 운동을 해도 좋을 위치를 찾아, 아래층에 주차장이 있는 공간을 특별히 개조하여 빌려주기로 하였으며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시설도 구비하도록, 우리를 위해 힘써 주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요일은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라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생각한 것이 우리 민속 씨름부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평소 알던 러시아 씨름 선수들이랑 몽골 씨름 국가대표들 그리고 유러피안 레슬링 (the Greco-Roman style)을 초빙해서 매주 일요일은 무료로 지역 사회에 개방하려 합니다.
거기 임대료가 한달에 천만 원인데, 너 돈 많냐?
아직은 추운 시드니
돈 없습니다. 다만 환상은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상으로 저는 다른 사람들을 꿈꾸게 만드는 능력은 있습니다. 내가 주는 환상에 취한 분들이랑 함께 진행하려 합니다. 그 장사 망하면 넌 사기꾼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 직업이 회계사라 더하기 빼기는 이미 맞춰 놓았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투자자랑 백화점 총지배인들을 모두 모시고 마지막 미팅을 준비하면서 지금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 하는지 이것이 내게 어떤 향락을 줄 것인지 상상을 하며 즐거워합니다. 막상 시작하면 다가올 행정상 문제나 자금 확보 따위로 다시 시달리다 보면 생각했던 결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또 살아갑니다. 그 고통이 환상을 잉태할 것이고 저는 다시 그 환상을 쫓아서 고통을 벗어나려 노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