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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쓰는 라캉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by DreamHunter

세상에 프로이트 선생님만큼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합니다. 섹스에 미친 사람, 변태 성욕자들 중에 왕이요,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까지도 철저하게 버림받은 사람으로 알려졌으니까요. 긴 이야기 할 것도 없이 나무위키 검색하면 첫 줄에 '정신분석가'가 아닌 '심리학자'로 나옵니다.


그다음으로 억울한 사람을 꼽으라면 라캉이 있겠습니다. 프로이트를 계승한다고 했지만 정작 프로이트에게 만남 요청을 거절당했으며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프랑스 정신분석 학회에서도 파면당했고 그 후로는 철학자들에게 각광받다가 지금은 철학자로 분류되어 버린 정신분석가이지요.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이해하려는 도구로 우리는 라캉 이론을 공부합니다. 라캉은 프로이트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소쉬르 언어학을 일부 차용하였는데 글을 쉽게 쓰시지 않는 버릇 때문에 라캉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 평생을 소진해도 부족할 지경이 되고 말아서 라캉을 읽는 분들은 프로이트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라캉을 읽는 생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심리학 관련 석박사들이 90명가량 모인 곳에 들어가 정신분석을 공부한다고 하니 그거 왜 하냐고 묻습니다. 무의식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 짧게 답변드렸더니 아래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동의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반론도 없는 것으로 대략 그분들 입장이라고 생각하여 정리해 봅니다.


어차피 (정신분석) 개업이 어려워 직업으로 삼기 힘들다 판단하셨고 무의식을 더 파보고 싶으신 거라면 (중략) 철학으로 틀어서 무의식 공부하시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요? 무의식에 관심 두시는 것 같아서 철학을 말씀드려 봤어요. 말씀하신 라깡철학도 철학분과에서 주로 하니까요.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석박사 전문가들도 라캉은 철학자이고 무의식이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에서도 다루는 소재 정도로 치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닙니다.


무의식은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神입니다.


https://v.daum.net/v/20251002003738951

그러다 어제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 기사를 보게 됩니다. 유명한 미학자 진중권 교수가 쓴 정치 칼럼인데요. 제목이 무려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바로 클릭할 떡밥인데 내용은 무척이나 실망스럽습니다. 바로 내용을 보겠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주관성은 ‘상징계-상상계-실재계’라는 세 개의 질서로 이루어진다. 그가 동의하든 말든 지금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 삼분법을 ‘개인’이 아닌 ‘사회’ 상태에 *전용(轉用)해볼까 한다.

*전용이란 정해진 원래 용도랑은 다르게 사용한다는 뜻이니 어느 정도 감안은 하겠지만 굳이 정치 평론을 쓰면서, 더구나 그 내용을 보자면 라깡 이론을 차용할 필요가 있나 싶고요. 무엇보다 이분이 아예 제목만 그렇게 전용했으면 모르겠지만 (순서는 보통 상상계-상징계-실재계로 하는데 이것도 틀렸고) 일정 부분은 라캉 이론에 닿기에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언론은 진교수를 공신력 있는 미학자 내지 철학자로 소개하니 사람들은 이 글을 통해 라캉을 또 잘못 이해하겠구나 씁쓸했고요. 본글로 들어갑니다.


라캉은 ‘상징계’(symbolic)를 언어, 논리, 이성, 법률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내 멋대로 풀자면 교육, 학문, 공론, 사법, 의회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공유되는 의미와 규칙에 따라 행해지는 공적 활동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문장은 대략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절한 설명은 잠깐이고 바로 이상한 논리를 이어버리니 라캉 이론이 완전 산으로 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능인데 왜 다큐로 받고 지랄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각론으로 가기에 앞서서 진교수가 가진 모든 문제 출발은 그 용어를 그대로 쓴다는 것으로 지적하겠습니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것은 라캉이 불어로 주장한 이론인데 불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나마 편한 영어나 일어로 옮긴 2차 저작을 보고 한글로 번역한 결과 태어난 단어들입니다. 이제는 좋고 싫고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렇게 쓸 수밖에 다는 것이 중론이나 그렇다고 '상상'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아는 그 상상이라는 기표 그대로 라캉 이론 핵심으로 차용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마치 Australia를 중국 한자 중에 발음이 비슷한 놈으로 찾은 것이 濠洲인데 이것을 우리식 한문 발음으로 바꾸어 읽으니 '호주'라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여기 사람들에게 Australia is Hoju in Korean 이렇게 말하면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 지을 것입니다. 번역이 계속되면서 원본이랑은 전혀 다른, 쓰는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기표가 되었지 그 단어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는 '상상'이나 '호주'나 매한가지입니다.


라캉 이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실재계'도 그 이름 기표를 그대로 받아들이니 똑같은 오해가 생깁니다. 실재계란 언어로 포회할 수 없는, 상징할 수 없는 잔여로서 어떤 책에서는 현실계 등으로 바꾸어 부르기에 '실재'라는 단어 자체는 라캉 이론하고 연관이 없다고 보아야 하며 이런 모든 논의는 '무의식'을 다루기 위해서만 의미가 있지 무의식을 쏙 뺀 상태로 이것들만 따로 다루는 것은 공염불입니다.


아쉽게도 칼럼에서는 허트루라도 무의식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라캉 이론을 전용한 칼럽이라지만 무의식에 대한 비유는 없으니 그 깊이를 알겠습니다. 어차피 엉터리라도 무의식을 조금이라도 거론했다면 진교수는 라캉 핵심을 어느 정도 이해 했구나 하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라캉 이론을 철학으로 알고 대략 읽은 티만 철철 흐릅니다.


정신분석은 실천이고 무의식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 상징, 실재를 다룹니다. 이걸 모르고 라캉에 접근한다면 만 원짜리 명언집이나 보시는 게 낫겠습니다.


한편, ‘상상계(imaginaire)’는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환상의 영역. 내 식으로 풀자면 영화, 만화, 게임, 아이돌 문화, 유튜빙, SNS의 셀카 문화 등 강렬한 욕망과, 이룰 수 없는 그 욕망의 환상적 실현의 영역이다.

위 문장처럼 상상계를 잘 설명하다가 갑자기 상상=환상=영상=문화 이렇게 넘어갑니다. 상상계는 저도 잘 이해 못 한 개념이지만 적어도 이건 아닙니다. 상상계라는 이름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미지계" 혹은 "형상계"라고 고쳐 쓰는 것 맞고요. 그래야 진교수처럼 인용하는 오류를 없앨 것입니다. 이미 굳어진 이름이라 이제는 바꿀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isphtm_2021100684619669673.jpg 거울단계를 통해 상상계로 들어가는 성기훈, 넷플릭스


상상계는 아이가 상징계로 들어가기 전에 겪는 단계로 주로 어머니 혹은 대타자와 나누는 이자관계에서 발생하는데요. 여기서 나오는 것이 감정이고 그중에 이미지도 있지만 아기가 주체 혹은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 만드는 불가피한 환상으로 이것만으로 떼내고 심지어 덕성을 가진 사물에 일대일 매칭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들은 상상계가 상징계를 파괴하는 현상이다. 문자문화가 영상문화로 이행함에 따라 텍스트 친화적인 상징계가 이미지 친화적인 상상계에 서서히 제 영토를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상징계를 대표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 상상계의 무차별적 공세에 무력함을 보인다.


검찰 개혁 찬반이나 글 내용 안에 들어있는 사실관계 오류는 등은 빼고 라캉 이론만 계속 보겠습니다. 칼럼은 상상계를 다룬 이후 자연스럽게 상징계로 넘어가는데요. 마치 상상계가 나쁜 것이고 상징계는 좋은 것으로 한쪽이 다른 쪽 영역을 침범해 공격하는 느낌을 줍니다. 전용을 했고 예능이고 아무리 감안해도 전혀 공감하기도 힘들고 상황을 돕기 위한 비유로서도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비교 대상이 더 어려워서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데 굳이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비유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흔한 대상 혹은 이해하기 쉬운 현상에 빗대는 것입니다. 상상계 상징계를 누가 압니까? 내가 볼 때는 진교수 자신도 빠삭하게 아는 내용도 아니구만 왜 쓸데없이 라캉 이론을 정치 칼럼에 비유로 삼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의도 상징계가 아니라 유튜브의 상상계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문제가 되는 문장 같습니다. 상징계는 기표로 이루어진 문자 세상이니 신문이고 유튜브는 눈으로 보는 이미지 매체이니 상상계다라고 진교수는 진짜로 믿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징계란 단순히 언어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체계가 있는 곳을 통칭합니다. 그리고 신문 안에도 다양한 이미지가 있어 독자들에게 환상을 제공하며 동일시를 일으키기에 상상계로서 기능을 하고요.


유튜브 역시도 제목이나 검색 기준은 기표로 되어 있기에 언어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고 영상은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논리랑 의미가 철저하게 각색된 곳이기에 오히려 상징계에 더 가깝습니다. 마치 문학 평론가들이 영화 평론가들을 폄하하는 지점하고 비슷해 보입니다. 자신들은 힘들게 문자를 읽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지만 이미 보기 좋고 편하게 각색된 영상만 보는 영화 평론가들은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다는 생각을 한다면 곤란합니다.


책은 글으로서 논리를 갖추었으며 영화는 화면에서 작동하는 논리입니다.


상상계의 역할은 자기완성의 환상을 주는 것. 어차피 상징계는 실재계를 대리하지 못한다.


이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일견 맞아 보이는데 자칫 상상계라는 것이 쓸데없는 환상만 심어주는 공간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울단계를 통해서 먼저 상상계에 들어가야만 그다음 상징계 (언어 질서)로 가기에 필수 과정입니다. 반복된 이야기지만 진교수는 상상계는 실재계에 미치지 못하는 하급 기관이거나 좋고 나쁜 덕성을 가진 대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문장 하나만 보아도 진교수는 라캉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니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news-p.v1.20250108.4666ab356cc54a98b15b9f930aa858a4_P1.jpg 성기훈을 상징계로 잡아넣는 프런트맨. 성기훈에게는 그가 아버지 대타자


상징계는 제가 다시 이름 정의하자면 [지식계] 혹은 [언어계] 아니면 [아버지계]로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지라는 대타자가 우리에게 언어를 통해 지식을 강제로 문신시키는 장소이니까요. 진교수는 어쩌면 상징계 안에서 늘 아버지랑 싸우는 자로 보입니다. 지도교수에게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것; 자신이랑 오래 팟캐스트 운영하던 유시민 작가를 공격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는 자신이 옳기에 싸운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으나 제가 볼 때는 자신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는 대타자를 보면 본능으로 치받는 느낌입니다.


PS21101100191.jpg 오징어 게임, 라캉 삼계를 잘 이해한 황동혁 감독


끝으로 실재계는 [진리계]라고 저는 다시 명명하겠습니다. 진리라는 단어가 이미 지식이라는 단어보다 높은 위치에 거하는 느낌을 주지만 주체는 자기 진리로 고통받는다는 명제를 따라서 진리는 고통이며 증상이고 실재는 진리 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진교수는 실재계에 대한 설명이나 비유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깊은 이해는 없어 보이고요. 그나마 실재는 육체로다는 방식으로 글에 표현하지만 완전 곡해입니다.


라캉 이론에서 '실재'는 '육신'을 뜻하기보다는 타자가 부여해준 지식이랑 대척점에 있는 설명할 수 없고 셈할 수 없는 대상으로서 진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위에서 지적한 모든 오류들을 실재계 부분에서도 반복하기에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진교수가 이야기하고 싶은 골자는 이렇게 보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일명 '개딸'들이 유튜브라는 상상계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살면서 상징계인 기성 언론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세태가 한탄스러운데, 개딸들도 결국 육신을 가지고 실재를 사는 인간들이니 그런 환상에 빠져 살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이런 예언 비슷한 저주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라캉 3계를 여기에 대입한 것은 비교 수법으로서 기발함도 전혀 없고, 이를 통해서 라캉 이론을 대중에게 알리는 효과는커녕 잘못된 지식을 전하고 있으며, 글 자체로서도 새로운 기표를 만들거나 빛나는 아름다움도 없네요. 결국 안 쓰니만 못한 글이라고 저는 평가하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진교수보다 제가 더 라캉 이론에 정통했다는 자부심에, 그를 지적하면서 나를 높이려는 유치함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살아서도 평생을 호도당하고 죽어서도 매도당하다 못해 후학들에게까지도 엉터리로 취급받고 인용되는 프로이트 선생님과 라캉 쌤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그들이 죄가 있다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글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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