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나물 봄동이 Sep 08. 2016

아프지 않아, 엄마들은

거짓말, 그럴 리가요. 아프지 않을 리가요.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아프지 않아, 엄마들은

     

     

아기 낳는 나무가 있다면,

     

아기들은 더 이상 어머니의 뱃속에서 꼼지락거리지 않아도 될 테지 톡톡 산들바람이 수천 개의 나뭇잎을 건드리면 나뭇잎들은 순식간에 아기로 변해서 까르르 깔깔깔 웃음부터 웃겠지 옛날에 옛날에 어머니들은 어리석게도 뼈를 열고 아기를 낳았대 어머니들의 숨길로 이백팔십 일 동안 닦은 보드르르한 길로 미끄러져 나왔던 기억이 우습기도 하겠지 빨간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배냇웃음이란 말은 이미 없어졌겠지 나무를 엄마로 삼은 아기들의 손가락은 넌출넌출하게 금방 길어지고 젖비린내 대신 아기들의 몸에선 푸른 나뭇잎 냄새가 나겠지 아기들은 응애응애 우는 대신 망아지처럼 고개 흔들고 나무가 가르쳐 준 음악에 맞추어 푸르푸르 푸르르 두부리를 하지* 그러면 어김없이 비가 오고 나뭇잎들은 흠뻑 젖어서 아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푸르푸르 푸르르 두부리가 계속되고 어김없이 바람이 불면 새근새근 잠잘 생각도 못하고 까르르깔깔 까르르깔깔 자꾸 웃기만 할 거야, 곤지곤지 잼잼을 모르는 아기들은 어쩐지 아기들이 아닌 것 같아,

     

우리 낳을 때 아프지 않았어?

묻는 막내딸아, 어쩌면 엄마는 아기 낳는 나무 같았어

바람이 스치면 쏘옥 입술 내밀던 연둣빛 새싹아,

널 안았을 때 온몸이 후끈후끈거렸어

아빠는 뭐 이렇게나 예쁜 꽃잎이 있느냐고 온종일 들여다보았지

후훗, 신나는 일이었어

일생일대로 내가 최고로 잘한 일은 아기 낳는 꽃나무가 된 것이란다

 


*두부리: 아기들이 입술을 푸푸거리는 걸 뜻하는 경상도 방언.

남자애가 두부리를 하면 비가 오고, 여자애가 두부리를 하면 바람이 분다고들 한다.


         


     

[딸의 이야기]

     

“씩씩이들아, 이 글을 쓰면서 무지 기분 좋았는데 읽는 사람도 그럴까” 하는 제목으로 엄마가 시를 한 편 올려놓았다. 엄마와 우리 네 자매가 회원의 전부인 <작은 아씨들>이라는 이름의 비공개 인터넷 카페에 말이다. 소설 <작은 아씨들>을 좋아했던 문학소녀는 어른이 되어 바라던 대로 네 딸을 낳았다. 그러고는 딸들과 함께하는 인터넷 공간 이름을 <작은 아씨들>로 지었다. 각자의 게시판이 있는데, 그중 엄마의 게시판이 제일 활발하다. 엄마의 시 아래에는 읽는 자신도 기분 좋았다는 동생의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나는 울컥, 읽다가 잔뜩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아기 낳는 꽃나무’가 된 것이, 그리하여 우리 네 딸을 낳은 것이, 일생일대로 최고로 잘한 일이라는 우리 엄마.

시 제목을 다시 본다. 아프지 않아, 엄마들은. 거짓말. 그럴 리가요. 아프지 않을 리가요. 아프지 않아야 하니까, 아프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아프지 않다고 주문을 거는 거겠죠.


엄마는 우리를 예쁨이들, 공주들, 씩씩이들 같은 말로 불렀다. 우리에게 회초리 한 번 안 든 것은 물론이고, 욕 한마디 한 적 없다. 언젠가 성격 화통한 작은 고모가 어린 우리에게 이런 말도 했었다. “너네 엄마가 너네한테 가시나 소리 한 번 안 하니까, 나도 너네한테는 가시나라고도 못 부르겠다.”

정말 그랬다. 엄마에게 우리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딸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존재들인 거였다.


나는 엄마라는 나무가 낳은 꽃. 세상에 예쁜 향기를 전해야지.

나는 엄마라는 나무가 세상에 만들어낸 열매. 배고플 땐 열매 하나도 귀한 법. 지친 사람에게 웃는 순간을 선물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데 나도 언젠가 ‘아기 낳는 꽃나무’가 될 수 있을까?

“딸아, 내가 일생일대로 최고로 잘한 일은 너를 만난 거란다” 말해줄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