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여인의 마음 밑바닥을 본다면...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부엌 어느 구석에
잘 쓰지 않고 버려둔 알루미늄 냄비의 밑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어 보렴.
아마 까맣게 타버린 원망 같은 것이
굉장한 마찰음으로
널 놀라게 할 것이다.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종이가 있다면
그 종이를 서로서로 부비게 해 볼래.
어쩌면 연보라색 그리움 같은 것이
아지랑이의 숨소리로 얽히어
널 울먹이게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거리에서 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걸인에게 다가가
너의 뺨을
그에게 쓰윽쓱 문질러 볼래.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며
사랑 비슷한 것이 바알갛게 용광로 쇠가 끓는 소리내며
널 참혹하게 할 것이다.
마침내 분주한 일상의 톱니바퀴에
위태로이 굴러다니는 여인의
마음 밑바닥을 긁어 보렴.
그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인가.
쇳소리보다
아지랑이의 얽힘보다
또 쇠가 끓는 소리보다
더욱 절박한 마찰음을
도저히 당신의 고막은 감당할 수 없으리니…….
여기서 보고서도 이만 중략하여야 한다.
[딸의 이야기]
엄마가 순식간에 써내려갔다는 이 시. 분주한 일상의 톱니바퀴에 위태로이 굴러다니는 여인, 그 여인의 마음 밑바닥이라…….
“얘들아 큰일 났다.” 갑자기 우리 방에 들어와서는 무슨 일이냐고 놀라 묻는 우리에게 “엄마가 거울을 봤는데, 엄마 얼굴이 너무 예쁘다.” 말하던 우리 엄마.
늦은 밤 버스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버스 안에서 자신만의 노트에 시를 쓰고 또 쓰는 우리 엄마.
언젠가 서점 주인이 될 거라는 우리 엄마.
예전에는 내가 있었으면 할 때 없는 엄마가, 그러니까 내가 있었으면 하는 자리에 있지 않는 엄마가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이 원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가 원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소녀같이 꿈꾸고, 아이처럼 웃고, 철인처럼 일하는 우리 엄마…….
마음 밑바닥을 긁어도 마찰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늘 즐겁게 사는 사람, 우리 엄마.
엄마,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