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다모임
<문제 상황>
체육창고 교구 사용 후 정리하지 않는 아이들
<논의의 초점>
1. 학생들에게 체육창고 정리의 기회를 주고, 이후에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면 창고를 개방하지 않는다.
2. 학생들이 스스로 관리해가며 계속해서 개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사람이 모인 곳에선 어디든 의견이 분분하다. 문제는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드세지는 내 생각이다. 드세지다, 드세지다 입 밖으로 흘러나오면 거친 것처럼 된다. 나와 맞은편에 선 사람을 비난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숱하게 옳고 그름을 따져왔고, 더 나은 방법,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때로는 나의 최선이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거나 답정너였을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아직은 어린, 그래서 생각할 시간, 생각을 키워나갈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참 어렵다. 답답함과 난감함, 통제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늘 동반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전교생 다모임 시간에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앞서 말한 논의의 초점 때문이었다. 나의 초점은 2번이었다. 하지만 체육창고의 교구를 이용해 신나게 놀던 아이들도 체육창고 개방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했다. 전교생 그리고 선생님들 앞에서 즉석 해서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논의의 초점은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아이들로 인해 1번으로 흘러갔고, 아이들은 청소방법만 찾아내면 계속해서 개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end가 아닌 and의 나날>
인생은 철저하게 'give and take'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체육 교구 뒷정리를 책임감 있게 잘하면 계속해서 이용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고, 뒷정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이용의 자유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give와 take사이의 and를 아이들이 노력해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열어보기도 전에 end로 마무리 지으려는 우리들의 경직된 생각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어른인 나도 and, and, 그리고 또 and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처럼 보이는 일에는 한번 해결하면 끝이 나는 것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문제도 있다.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문제를 한 번의 노력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해결 방법의 폭은 한없이 좁아지게 된다. 아이들을 그 좁은 틈 속에 넣어두고 원대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문제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초점이 열려있기를, 완벽한 통제와 관리보다 그 속에서의 기회와 성장이 훨씬 더 가치 있음을 다시 한번 새겨보며 end가 아닌 and의 나날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