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후광의 섬세한 멋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케데헌의 사자보이즈가 불러 일으킨 '갓' 열풍

by 자유와 예술

‘바람도 비도 햇빛도 막아주지 못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자.’ 이는 개화기 프랑스인 달레 신부가 ‘괴상하고 우스운 미개한 물건’으로 표현한 갓이다.

그는 왜 갓을 이토록 조롱했을까?

제대로 갖춰 쓰지 않은 탓이다. 갓은 상투를 틀고 망건을 두른 뒤 풍잠에 걸쳐 써야 본래의 모습이 살아난다.


조선의 선비는 갓을 지극히 아껴 마치 자신과 한 몸으로 여겼다. 혼자 있어도, 손님을 맞아도 항상 갓을 단정하게 썼다.


19세기 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은 갓을 보고 여러 번 놀랐다고 한다.

‘지붕 또는 적어도 우산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확실히 크다.’(Griffis, 『은자의 나라 한국』),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지므로 어느 것이 대나무이고 어느 것이 비단실인지 거의 분간할 수가 없다.’(Lowell,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새털처럼 가벼운 ‘1.5온스 정도의 무게로 조선 사람들의 끝없는 걱정거리다.’(Bishop,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그들을 갓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투와 신발은 벗어도 갓은 머리 위에 머무르니 평생을 붙어 다니는 영원한 검은 후광”이라고.


케데헌(K-Pop Demon Hunters)!

넷플릭스를 통해서 전 세계에 공개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가 글로벌 흥행을 이끌며 이목을 끌었다. 덩달아 갓에 대한 열풍이 굉장하다.

‘저 검은 모자에 완전히 반했다(That black hat blew me up).’라고 할 정도다. 바티칸 성당에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해외 누리꾼 사이에서는 ‘사자 보이즈’를 닮았다며 화제가 되고 있다.


개항기 외국인들은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불렀다. 관(冠), 모(帽), 입(笠), 건(巾) 등 다양한 모자를 신분과 의식에 맞도록 썼기 때문이다. 흰색 또는 옥색의 도포를 입은 선비가 부드러운 곡선에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검은색 갓을 쓰고 붉게 빛나는 마노 갓끈을 길게 늘어뜨린 채 유유히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굴에 은은한 그림자가 서려 자연스럽게 기품이 드러나는 선비의 자태, 이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한가!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fancy hat, awesome hat, beautiful hat이라고 할까.


‘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소중하게 관리한 갓, 대나무를 명주실보다 가늘게 쪼개 만들었기 때문에 물에 젖으면 조금만 손대도 찌그러져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엔 고깔 모양의 갈모를 따로 챙겨 다닐 정도로 쉽게 부러진 갓. 100년 전 갑자기 사라졌던 갓이 다시 우리 곁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를 상징했던 갓, 흑립은 챙 있는 모자다. 누구나 쉽게 사고 금세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선비를 빛내주는 화려한 명품이다. 비가 오면 갓을 벗어 도포 자락 속에 넣을 정도로 아꼈다. 부서지면 수리했다. 모양이 틀어지는 걸 막고 먼지가 묻지 않도록 갓집에 넣어 보관했다.


갓의 겉모습은 마치 우주를 상징하는 듯하다. 수평의 너른 땅에 사람이 우뚝 서 있고 그 위에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있다. 땅과 사람과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마냥 평화롭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갓은 곡선과 직선이 정연한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갓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부드러운 곡선과 곧게 뻗은 직선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다. 서로 다투지도 충돌하지도 않는다. 비록 방향은 다를지언정 서로를 묶고 묶여 결국 하나가 된다. 결코 꺾이지 않은 가지런한 직선은 단아하고 정갈하다. 여유롭게 휘어진 부드러운 곡선은 다름을 포용한다. 전혀 꾸미지 않은, 단순한 직선과 곡선이 만나 완전함을 이룬다.


실오라기처럼 가는 대나무와 말총은 장인의 손끝을 거쳐 비로소 예술이 된다. 양태는 가운데가 봉긋하게 올라왔다 비스듬하게 떨어진다. 은근하고 노련한 곡선이다. 섬세한 올 사이로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와 아른거리는 색감을 드리운다. 먹칠과 옻칠을 반복해 선명하고 맑은 검정색이 드러난다. 흰색 도포와 어우러져 우아한 기품을 뽐낸다.


갓은 초정밀 수공예의 결정판이다. 갓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공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갓을 만드는 장인, 즉 갓일이 만드는데 꼬박 2주 이상 걸린다. 갓은 대나무, 말총, 명주실을 섞어 만든다. 각각의 재료는 가늘고 힘이 없지만, 규칙적으로 얽히면서 견고한 뼈대를 갖춘다. 여기에 인두질과 먹칠과 옻칠이 더해지면 검은색의 간결미가 드러난다. 머리카락보다도 가는 대오리와 말총은 숙련된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만나서 비로소 갓으로 거듭난다.


갓의 양태, 즉 챙을 둥글게 다듬으려면 인두질을 해야 하는데, 이는 트집 잡는 것이다. 트집을 잡으면 양태의 중간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며 아름다운 곡선이 된다. 갓이 해어지고 틀어져 수선을 맡기면 트집을 잡아 수선비를 비싸게 받았다고 한다.


갓은 연대와 협력의 산물이다. 가는 대나무실, 즉 죽사를 엮어 테를 짜는 양태 작업, 말총으로 몸통, 즉 대우를 엮는 총모자 작업, 양태와 대우를 조립해 명주를 입히고 옻칠하는 입자 작업을 거쳐야 한다. 지극히 어렵고 복잡해 양태장, 총모자장, 입자장이 제각각 따로 작업한다. 또한 장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양을 갓의 꼭대기, 즉 모정에 새겨 넣었는데 이를 ‘정꽃’이라 한다.


갓은 맨머리에 그냥 쓰지 않는다. 상투를 틀고 풍잠을 단 망건을 두른 다음 그 위에 갓을 올린다. 갓은 눌러 쓰는 게 아니라 머리에 얹는다. 갓은 상투와 망건과 풍잠과 어우러진다. 상투는 머리카락을 위로 끌어올려 정수리에서 감아 맨 후 동곳으로 고정시킨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망건을 두르고, 망건 양쪽에 단추처럼 생긴 관자에 당줄을 걸어 망건을 고정한다. 망건의 앞 중간에는 풍잠을 달아 갓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고정한다. 풍잠은 바다 거북의 등껍질인 대모 또는 쇠뿔을 반달모양으로 만든다. 이 풍잠이 갓 속에 은은히 비치는 모습은 멋스럽다.


양태의 극히 미세한 구멍을 통과한 햇빛은 은은하고 아른거리는 명암을 자아낸다. 결코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닌, 다소 몽환적인 빛이다. 갓 쓴 사람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나면서 상대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곡선과 직선을 번갈아 엮으며 미세한 구멍을 남겨둔 덕분이다.


갓은 절제와 품위를 상징이다. 깊숙이 눌러 쓰지 않고 머리에 꽉 맞게 쓰지도 않는다. 그저 머리에 살포시 얹는다. 갓을 쓴 선비는 몸가짐이 침착하고 진중해야 한다. 상체를 반듯하게 편 채 고개를 꼿꼿이 세워 정면을 응시하면서 넓은 보폭으로 의젓하게 걸어야 한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수양한 후에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지향했다.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다음 갓을 쓰는, 사뭇 까다롭고 번잡한 절차는 단지 겉멋만 가꾸는 치장이 아니다. 올곧은 기개와 자기절제를 드러낸다. 특히 빛이 통과하는 은은한 투명함은 도덕적 떳떳함과 품위를 표현했다.


군자가 거울을 보는 건 치장이 아니라 “태도를 존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의관을 바르고 가지런하게 하는 의관정제의 유교적 가치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게 바로 갓이다. 선비는 늘 격식에 맞게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했다. 반드시 갓을 썼고 손님이 오면 방에서도 갓을 벗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갓은 매무새의 마침표였다. 실학자 이덕무의 말처럼, 아무리 바쁘고 게을러도 선비의 머리에는 갓을 쓰지 않으면 안 되고, 갓을 앞으로 푹 숙여 쓰고 챙 밑으로 남의 기색을 흘겨 살피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 또한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인류가 만든 숱한 모자 가운데 갓만큼 가볍고 엄숙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없다. 갓은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이며 한국의 이념이 물질 자체로 응집된 “머리의 언어”다.


갓은 1930년 전후로 급격히 사라졌다. 이젠 그 누구도 갓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갓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의미를 던진다. 자신을 먼저 수양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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