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즐거운 떨림

하루하루를 늘 처음처럼

by 자유와 예술
처음이라는 희망의 씨앗


처음!

아,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단어인가.


처음은 꼭 봄을 닮았다.

설렘과 희망이 잔뜩 묻어있다.


처음은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있다.

과거와 깔끔하게 작별하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은 굳은 결심과 단호한 의지를 상징한다. 완전한 변화 즉 탈피(transformation) 하고 말겠다는 것이다.


향기 없는 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듯 시련 없는 영광은 밋밋하고, 고통 없는 환희는 싱겁다.


나는 나무의 겨울나기에서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겨우내 잔뜩 웅크린 채 마치 죽은 듯 서 있는 겨울나무는 봄이 되면 어느새 연둣빛 이파리를 제 몸 밖으로 밀어낸다. 이 얼마나 위대한 재탄생인가.


나는 봄이 되면 늘 입가에 미소를 달고 다닌다. 게다가 수시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렇게 나무의 재탄생을 찬양한하다.


나무는 여름 내내 가꿔온 무성한 이파리들을 가을 끝자락에 모두 떨어뜨린다. 이는 길고 차디찬 겨울을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내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메마른 앙상한 가지로 엄동설한과 마주하는 그 담대한 기상은 실로 장엄하다.


나무는 겨우내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생명들이 약동하는 봄이면 마치 처음으로 그 봄을 만난 듯 신나게 환호한다. 나무는 그 봄을 한껏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온갖 시련을 꿋꿋하게 버텨냈으므로, 짙은 고통을 씩씩하게 참아냈으므로, 엄혹한 겨울을 슬기롭게 관통했으므로.


신영복 교수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모든 처음은 누구에게나 늘 낯설고 불편하다. 눈에 익숙하지 않으니 놀란 토끼처럼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숱한 불면의 밤들을 보내며 어렵게 선택한 게 과연 유일무이한 최선의 선택일까를 걱정하느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도무지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매일 처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태어난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나는 오늘 하루를 처음 살아간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와는 완전히 낯선 새날이다. 내가 여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처음이 바로 오늘이다.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이미 떠나보낸 숱한 처음의 조각들


나는 여태 숱하게 많은 처음들과 마주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너무나 궁금해 처음으로 엄마 품 밖으로 얼굴을 내민 지 벌써 육십 년이다. 그간 대략 이만 이천 개의 해가 솟아났다 사라졌으니 어찌 평탄한 날만 있었을까. 숱하게 넘어져 깨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환호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굴곡진 삶 속에서 이룬 성취와 영광뿐 아니라 상처와 고통도 결국 내 삶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으레 때가 되면 당연히 다녀야 하는 학교를 난생처음 가던 그날의 풍경을 나는 여태 기억한다.

경북과 경남의 경계에 있는 촌구석에서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처음 본 넓은 운동장과 길쭉하게 늘어선 목조 건물에 압도당해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다. 내가 자그마치 꼬박 스물두 해를 학교에 다니고, 쉰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할 줄은. 이건 순전히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결과물이다.

처음을 어떻게든 마무리하지 못하면 계속 생각나는 법이다.

이를 미완성 효과 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이십 대에 포기했던 석사 과정을 스무 해가 지나 복원한 것도, 더 이상 학문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십 년이 지나 박사 과정에 등록한 것도 결국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언제나 잿빛이었던 이십 대의 방황과 좌절을 끝내고 꽤나 늦은 서른 살에 처음으로 직장에 출근하던 그 낯선 풍경. 무려 삼십 년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다. 엉겁결에 발령받은 곳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었던, 이름조차 생소했던 충남 보령이었다. 처음으로 셋방살이하며 한 아이의 아빠로써 단란한 가정을 꾸려 무려 삼 년을 보냈다.

무릇 모든 처음은 낯설지만 그다음은 훨씬 수월한 법이다.

나는 그 후로 여러 번을 내가 처음으로 가 본 곳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건 전북 전주!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서울에 있던 본사가 전주로 옮긴 덕분이었다. 아주 오래전 정읍의 어느 장례식장에 갔다가 서울로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잠시 스쳐 지났을 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한옥 지붕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과 검은색 기와가 절묘하게 대비되는 홍보용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곳에서 나는 무려 육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딱 십 년 전 유월 어느 날. 나는 한 해 동안 머문 서울 숙소를 떠나 전주 어느 원룸으로 짐을 옮겼다. 가족들은 여전히 대구에 머문 채 나 홀로 처음으로 전라도에서 지낼 터였다. 유달리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무심하게 두둥실 떠있던 그날의 풍경은 하나부터 열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달려온 용달 차량 기사님과 함께 호남제일문을 통과해 전주 혁신도시로 진입하던 그 순간, 나는 잔뜩 긴장했었다. 깊디깊은 지역감정이라는 앙금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으니 경상도 남자가 전라도에서 지낸다는 게 사뭇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식당이나 마트에 갈 때면 자주 머뭇거렸다. 느닷없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를 경상도 사투리에 공연히 따가운 눈초리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백 번 듣는 거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나의 긴장과 걱정은 두어 달 지나자 말끔히 사라졌다.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영구불변의 법칙이 있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반응도 똑같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메아리처럼 말이다. 나는 여섯 해를 머무는 동안 그들이 내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과 애틋한 정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주는 어느 곳보다 더 포근하고 정감 있는 도시였다.


나는 오십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적잖은 성취를 이뤘고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났지만 쉼 없이 아등바등 사느라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한 번은 겪게 된다는 중년의 허기!

나는 간절하고 절박하게 원했다. 나의 정신적인 배고픔을 채워줄 무엇을. 나는 그 해답을 예술, 특히 그림에서 찾았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집 근처 화실에 처음 간 그날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여럿이 이젤 앞에서 붓이나 나이프를 들고 캔버스에 유화를 그릴 때, 나는 연필로 스케치북에 선을 긋거나 원을 그렸다. 여태 모든 처음이 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서툴고 어설펐다. 선은 삐뚤삐뚤, 원은 울퉁불퉁. 정밀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야만 하는 소묘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나는 질식할 것 같은 한계를 절감했다. 만약 그때 내가 재주 없음을 탓하며 그냥 포기했더라면, 올 유월에 가진 첫 단독 개인전은 영원히 없었으리라.

나는 뭐든지 쉽게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무엇이든 그 세계의 끝까지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나는 숱한 덧칠을 통해 잘못을 수정하고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유화의 세계로 진입했다. 텅 빈 하얀 캔버스에 처음으로 유화물감을 바르던 그날, 내 손은 바들바들 떨었고 심장은 쉬지 않고 요동쳤다. 그 이후로 팔 년을 한결같이 토요일이면 화실에서 서너 시간을 오롯이 그림에 몰입하고 있다. 여전히 처음의 설렘 가득한 기분으로.

나는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렸다.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예술은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쳤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쉰 중반에 맞닥뜨렸던 그 참혹한 고통을 어찌 견뎌냈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림을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가쁜 숨을 고르는 안식처, 즉 케렌시아(querencia)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짐을 느낀다. 나는 올 유월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건 내가 여태 겪은 수많은 처음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결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두 번 다시는 없을지 모르는 마지막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


환갑! 태어난 지 꼬박 육십 년이 됐다.

내 머릿속은 단 하나의 문장에 집중했다. 의미 있는 삶! 행복해지려면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과 글과 그림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의미 있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대강의 준비를 마치는 셈이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줄곧 봉사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늘 그렇듯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는 법이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어느 토요일, 나는 버스를 타고 화실에 갔다. 대개는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들으며 살짝 잠에 빠지는 편이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겨울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버스가 대구박물관 앞을 지날 때 현수막 하나가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큼지막하게 또박또박 새겨진 문구. 전시해설 자원봉사자 모집! 마치 갓 인화된 사진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렷했다.

삶은 늘 우연의 연속이다.

어쩌다 마주한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건 순전히 내 몫이다. 나는 올 사월부터 일요일마다 박물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반드시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무턱대고 시작한 그 처음. 유별나게 어색했다. 모든 게 내 예상과 달랐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까마득한 생소함!

나는 그때까지 박물관에 가본 적이 한두 번에 불과했다. 게다가 무수한 세월이 흐른 고대 유물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그때 내가 느낀 이질감은 지극히 당연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시작할 것인가?

나는 스스로 길을 찾았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박물관엔 읽을 책과 자료가 무수히 많았다. 해설을 잘하고 싶다는 욕구에 목말라할 때, 역사를 전공한데다 켜켜이 쌓은 도슨트 봉사 경력을 갖춘 선배를 만났다. 정중하게 부탁해 개별교육을 받았다. 만약 그때 모른다고 회피하고 두렵다고 거부했다면, 처음의 굳은 의지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전시해설 봉사자로 무대에 선 사월 중순의 어느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몇 달이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나는 여태껏 숱한 자리에서 보고, 발표, 강의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전시해설은 정말 딴판이었다. 동공은 지진이 난 듯 흔들렸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얬다. 그토록 낯설고 어색한 그 처음을 견뎌냈기에 나는 비로소 느긋하고 편안하게 해설할 수 있게 됐다.


삶의 경계에서 처음 마주한 가장자리



나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차츰차츰 가장자리로 떠밀려가는 중이다. 캐나다의 가수이자 시인인 레너드 코헨이 ‘불굴의 패배(invincible defeat)’라고 했던 그 죽음을 향해서 말이다.

환갑 그리고 삼십 년을 다닌 첫 직장에서의 퇴직!

나는 지금 세상의 경계에 서 있다. 여태 겪은 그 수많은 처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완전히 낯선 처음과 결국 만나고야 말았다. 완강하게 거부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거스를 수 없는 막다른 상황과 맞닥뜨렸다. 거센 소나기와 짙은 어둠으로부터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그 튼튼한 우산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친 광야에 홀로 선 나그네처럼 앞으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오롯이 내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

일체유심조.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해방됐다. 나는 드디어 자유가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에서 내 방식대로 마음껏 헤엄칠 수 있게 됐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맸던 그악스러운 억압의 사슬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을 여한 없이 할 수 있는, 즉 해방의 시간과 자유의 공간이 활짝 열렸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맞이한 이 색다른 처음, 과연 나는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감당해야 할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어느 누구도 내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오직 내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이제부터 나 자신과 좀 더 솔직하게 만나야 한다. 모든 페르소나를 벗어던진 채 나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세상으로 향한 시선을 거둬들이고 나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여태껏 깊게 두른 거짓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부터 말끔한 민낯으로 나를 뚫어져라 마주 보아야 한다.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멀고 먼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의 처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맞이할 하루하루를 처음처럼 살아야 한다. 에크하르트의 말처럼 “매일 아침 기꺼이 인생의 초보자”가 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마음에 봄이 찾아올 것이다. 그 봄 속에서 나는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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