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절제를 어깨에 짊어지고

'맡겨진 소녀'를 읽고,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임을

by 자유와 예술

불편한 만남, 감동적인 마무리



흠칫 놀라 신경이 곧추섰다.

맡겨진 소녀! foster.

'adopt가 아니다. 전적으로 입양한 게 아니라 잠시 맡아 키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입양 아닌 잠깐의 위탁일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낀 채 마냥 신음하는 고달픈 소녀의 이야기일까? 모두한테 버림받은 채 무방비 상태로 내동댕이쳐진 외롭고 불쌍한 영혼을 달래는 위로 일까?'

나는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어느 비참한 운명을 상정했다. 어느 누구도 결코 원치 않았지만 끝내 태어난, 어느 누구도 입양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헝클어진, 결국 떠돌이 마냥 이곳저곳을 전전해야만 하는 가녀린 소녀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세상엔 아름답고 따뜻한 내용으로 채색된 책들이 수두룩한데 굳이 처참한 슬픔으로 점철된 책을 읽어야 할까. 가슴 가득 울려 퍼질 먹먹함과 용솟음치는 울분을 어찌 감당하려고?’

내가 이토록 부정적으로 반응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이태 동안 온몸으로 겪었던 비극적인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고, 내 이름은 숱한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더럽혀졌다. 한때 더없이 찬란했던 내 신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난 똑똑히 보았고 느꼈다.

'이 세상에 정의는 온데간데없다. 공정은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

오직 절망으로 그득한 참담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나는 굳게 다짐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더 이상 조급하거나 아등바등하지 말아야 한다.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의 기쁨에 탐닉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는 고요한 평온을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온전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몇 해를 살았으니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책을 읽는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남긴 진한 여운 때문이다.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부분에서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실존적인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주위의 무관심과 권력의 억압 속에서 그가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갈 멍에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공감한 걸까. 한동안 내 마음은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는 오랫동안 시대의 아픔을 고발하거나 음모와 배신이 일상인 책을 멀리했다.

피할수록 미련과 집착은 커진다.

도망친 곳에 천국과 낙원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두려웠지만 똑바로 대면해야 했다. 책을 읽을수록 결론이 궁금해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내내 마음 졸이며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드디어 마지막 문장. 그를 부른다. “아빠.” 딱히 그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단어를 본 순간, 내 가슴 한편에 오색 무지개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막연한 걱정과 근거 없는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졌다.

내 섣부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 홀로 몰래 숨죽여 본 스릴러가 감동이 넘실대는 드라마였다니! 가슴 가득 뭉클함이 차올랐다. 입가엔 엷은 미소가 절로 번졌다. 따듯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내 가슴속을 행복으로 물들였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꿨다. 소녀가 맞닥뜨렸을 온갖 시련, 그럼에도 가슴 가득 희망을 품은 채 당당하게 맞서가는 용기 있는 발걸음을.

무심하고 거친 성격, 집안 일과 밭일까지 신경 쓰느라 지치고 고달픈 상황, 넉넉지 못한 살림.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녀 앞에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렸다. 애정 어린 관심과 든든한 지지가 듬뿍 담긴 그곳엔 희망이라는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꾸준하게 불빛을 밝히며 깜빡거릴 굳센 희망의 등대! 여태껏 있는지조차 몰랐던 관심과 애정을 온몸으로 느껴본 소녀는 어떠한 고난과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호기심 천국, 타인은 필요악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공동체에서 타인의 존재는 그야말로 필요악이다.

만약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아리스로의 비행』에서 말했듯이 “육체가 쓰러지면 그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라는 것을. 오직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

가까울수록 피곤한 존재가 곧 타인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했고, 샤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에 비유할 정도였다.

관계에서는 적당한 경계가 중요하다.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서로 다투고 미워하다 결국 원수가 되기도 한다. 안도현 시인의 표현처럼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그 간격과 간격이”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누구나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차마 말하지 못 할 비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실수, 면도칼로 도려내고 싶은 악몽 같은 추억, 가슴 깊게 팬 상실의 아픔과 같은 것들. 그 돌덩이는 그냥 그대로 묻어두는 게 낫다. 모든 상처가 그렇듯 잘못 건드리면 덧나고 곪아 터진다. 시간은 모든 상처의 약이라는 셰익스피어 말처럼 딱지가 생겨야 새살이 돋아난다.

타인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무는 고요를 원하지만 바람이 멈추진 않듯 내 곁에는 늘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바람처럼 쉴 새 없이 간섭하고 수시로 경계를 침범하는 타인은 말 그대로 지옥과 다르지 않다.

“옷장에 아직도 그 애 옷이 걸려 있어?”라며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고, “애가 그 집 늙은 사냥개를 따라서 거름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지 뭐니?”라며 아픈 사실을 떠올린다. 심지어 “제대로 돌보질 못하시는군요? 본인도 아시잖아요.”라며 마구 비아냥대며 헐뜯는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를 끊임없이 후벼 파는 잔인한 호기심! 어떤 욕망보다 더 줄기차고 더 긴급하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서 끝없이 정서적으로 학대한다.

정작 자신은 “콘크리트 판을 삐뚤빼뚤하게 붙인 작은 주택”에 “관목은 웃자랐고” “어수선”한 집에서 살지만 이웃의 고통을 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수전 손택의 표현처럼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자면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얻는 것은 가장 천한 인간의 행위이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품격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어야 한다.

품(品)은 입(口) 세 개로 이뤄진다. 사람의 말이 품격을 결정한다. 셰익스피어 말대로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면 자신의 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라비아 속담처럼 말을 할 때는 그 말이 침묵보다 나은 것이어야 한다.

재채기하고 코 푸는 소녀에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라고 거듭 되묻는다. 소녀는 그저 '아무 일도 없었어요', 라며 침묵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만큼 충분히 배웠고,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라는 걸 안다. 『모스크바의 신사』에 나오는 표현처럼 “침묵도 하나의 의견”이고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소녀는 아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불쑥 내뱉는 거칠고 험한 말은 잘 벼린 칼날과 다름없다.

눈 깜짝할 새 타인의 마음에 깊이 박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해야 하는 말 그 이상은 안 해야 한다.

“애들 먹이는 게 골치”라거나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거나 “탕아가 돌아왔구나.”라는 표현은 송곳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갑다.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 한다.

킨셀라 부부가 쓰는 곱고 따스한 말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 '착하다', '잘 아껴 썼다', '정말 예쁘다'는 말은 소녀의 상처를 씻겨내고 고통을 덜어준다. 아마도 그 소녀는 아저씨의 바람처럼 마침내 습자 연습장에 금별을 받았을 것이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을 받은 아프로디테가 상아로 만든 여인을 진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더 테레사의 말대로 친절한 말은 짧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메아리는 끝없이 울려 퍼진다.

유대감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진정한 관계 형성은 누군가를 세밀하게 돌볼 뿐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함께 보낸 순간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하다.

바닷가에서 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소녀가 발을 맞춰 걷도록 보폭을 줄여주고, 소녀를 목말 태워주는 아저씨 행동에서 나는『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한 것처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고,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길들여질 때, 곁에 있는 타인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것이다.



겸손과 절제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는 매일 조금씩 삶의 끝자락에 다가가는 중이다. 내가 피부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상관없이.

나는 최근에 두 개의 변곡점을 동시에 맞았다.

환갑! 세상에 태어난 지 60년 됐다. 100세 시대라는데 그건 평균일 뿐.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과연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가장자리 너머에 드리운 까마득한 절벽, 불굴의 패배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년퇴직! 나는 30년 다닌 직장과 작별했다. 과거를 잊고 다시 새롭게 살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맡았다.

환갑과 퇴직!

이미 정해진, 결코 피할 수 없는, 때가 되면 어느 누구나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숙명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낯선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아무 일도 없는 어제,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내일의 연속이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는데 삶의 풍경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마치 『겨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말하는 것처럼.

“이상해요. 제가 있던 세상에서는 이렇게 빨리 뛰면 보통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왜 주위 풍경들이 그대로죠?”

내 앞에는 완전히 낯선, 새로운 세계가 놓여있다.

보통은 제2의 인생 또는 노년기라고 부르는 그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오랫동안 소망했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 새로운 또 다른 나로 변해야 한다. 내 시선이 머물 곳은 바깥 아닌 내면이다. 앞으로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파머가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그러한 삶은 타인에게도 위협이니까.'

내가 앞으로 살아갈 그 세상엔 새로운 언어와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실수는 모른 체 눈감아주고, 모르면 알 수 있게 제대로 가르쳐 주고, 애정 어린 관심으로 따뜻하게 보살피고, 나아질 것을 믿으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워주는 킨셀라 부부의 말과 행동처럼.

특히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고,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 지내며, 부끄러운 비밀이 없어야 한다. 한마디로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가 왔으니 겸손한 자세로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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