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

살면서 깨닫는 그 흔한 진리,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by 자유와 예술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한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차츰차츰 내 곁을 떠나버린 그때, 나는 차디찬 외로움을 느끼며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참으로 외로웠고 한없이 무기력했다.

나는 무리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서글픔에 마냥 울적했다. 쉴 새 없이 나를 몰아치는 거센 폭풍에 도무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나는 막막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를 옭아맨 깊은 우울과 뜨거운 분노를 도무지 떨쳐내지 못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내 마음엔 온갖 소음이 들끓었다. 늘 자신을 의심하며 스스로를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급류처럼 거칠게 밀려오는 숱한 생각의 파편들에 휩싸인 채 언제나 조바심 내며 불안해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마음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치달았는다.


가만히 있어도 결코 쉬는 게 아니었다.

무엇을 떠올리든 불안, 걱정, 의심, 분노, 허탈,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내가 떠올린 온갖 생각들이 결국 나를 마구 짓눌렀다. 온갖 부질없는 생각들의 늪에 빠져 마냥 허우적거렸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으며 내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부질없는 생각의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 생각들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내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내 머릿속은 오직 번민으로 가득했다. 나를 삼킬 듯 거세게 밀려드는 그 나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나는 발만 동동 구른 채 안절부절못 했다. 나는 죽을 듯이 고통스러웠지만 어느 누구도 내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다. 설령 내가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라도 그들은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오로지 내 혼자 감당할 내 몫이었다.


나는 걸핏하면 나와 타인을 비교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썼다. 무심코 건네는 의미 없는 말, 적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소한 행동에도 쉽사리 상처받았다. 나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직 내 기준으로 섣부르게 판단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내 뜻과 방식대로 상대를 바꾸려고만 애썼다. 맘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며 우울해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며 적의를 드러냈다.


세월이 몇 년 흐른 지금,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에서 내가 겪는 수많은 고통은 대부분 외부 충격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그 나쁜 생각들에 집착할수록 나는 더욱더 괴로웠다.

내 가슴속에 맺힌 슬픔이 점점 깊어져 더 이상 내가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 두 눈에 잔뜩 고인 눈물은 뜨거운 오열로 강렬하게 솟구쳤다. 끝내 격렬하게 통곡했고, 내 몸은 심하게 흔들렸다. 서서히 눈물이 잦아들자 나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경험한 건 카타르시스였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누구나 한 번은 거친 폭풍우를 만난다.

2021년 가을 끝무렵, 나는 거센 폭풍에 휩싸였다. 등대조차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다에서 나 홀로 외롭게 표류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치밀어 오르는 온갖 암울한 생각들에 나는 기진맥진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 인간에 대한 깊디깊은 혐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경멸이 뒤섞여 엉망진창인 채로.


폭풍우가 내 삶을 마구 할퀴던 그때, 나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등바등하며 나를 옥죄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과 가장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내 마음이 전하는 소리에 다정하게 귀 기울이고 싶었다. 언제나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싶었다. 기분 좋은 날에 남들 대하듯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싶었다. 두려운 마음에 애써 주먹을 불끈 쥐는 대신 두 손을 활짝 펴 이미 벌어진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길 원했다. 아울러 타인을 내 방식대로 통제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

그때 내 심장에 깊이 박힌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가식 없는 담백한 내용.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내 마음이 끌렸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고,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튼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모든 사람들과 반드시 이별하므로 언제나 다정하라.'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작가가 마주한 얄궂은 운명에 처연한 슬픔을 느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Bjorn Natthiko Lindeblad)! 그의 인생은 유별나게 독특하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이십 대 중반에 다국적 기업의 임원을 포기한 채 홀연히 태국에서 열일곱 해 동안 숲 속에서 수행했다.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진 마흔 중반에 환속해 자유와 평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고 세상은 언제나 뒤집힌다.

작가는 '악마의 질병'이라는 루게릭병에 걸린다. 그는 '절망과 충격에 오장육부가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아 목 놓아 울고 싶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너무나 담담하게 새로운 현실을 조심스럽게 열린 눈으로 마주했고, 저항하지 않았고, 이상하지만 딱히 낯설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즉 그는 늘 깨어 있지만 현실에 절대 맞서지 않는, 바로 '알아차림'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그는 '죽는 그날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다.'라는 강력한 의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스로 인생을 멈출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평범한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질병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의연하게 대응했다.

그가 고민한 건 인생이 다 끝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끝을 맺는 방식이었다.

영원한 건 없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늘 깨어 있었다. 새로운 현실을 열린 가슴으로 담담하게 마주했고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건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소망이므로 그의 가슴은 미어졌다. 앞으로 놓치게 될 많은 일들을 아쉬워하며 슬퍼했다.

그는 떠났다. 두려움도 망설임 없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어진 음료를 마시고 조용히 평화롭게 잠들었습니다. 미리 알리지 않아 미안합니다. 이 가여운 몸은 드디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다정한 몸이여, 싸워주어 고맙소. 싸움은 드디어 끝났습니다. 이제 저는 축복받은 자의 기쁨을 느끼며 어떤 예측도 불허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걱정도, 의심도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햇볕처럼 따뜻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데미안(Demian)>에서 부르짖는다.

"계몽된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 속에 확고해지는 자기 자신의 길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길이든, 더듬어 전진한다는 그런 한 가지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진정한 천직은 다만 자기 자신에 다다르는 것 한 가지뿐이다. 인간의 과제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지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받아들여 의연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