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커피맛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한가함이 남긴 커피의 맛, 카멜커피

by 이설


같은 커피를 마셨는데

그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마도 그 차이는

커피가 아니라, 그날의 시간과 마음에 있는 건 아닐까?





m.s.g.r.라는 네 글자를 처음 봤을 때,

비밀스러운 암호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게 카페 메뉴 이름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웃음이 나왔다.

미숫가루라니.


위트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 m.s.g. r. 의 주인공 카멜 커피에 대해

맛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은 터였다.

특히나 이곳의 시그니처 카멜커피는 특히나 더.


그래서 언젠가는 가봐야겠다고,

막연하게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다.


문제는 장소였다.

막 문을 연 더 현대.

평일이든 주말이든 사람들로 넘처나고 있던

더 현대에 위치한 카멜 커피는

그 인기를 자랑하듯 늘 사람들로 넘쳤다.

지나칠 때마다 늘어선 줄을 보고 있노라면

쉽게 가지진 않았지만

카멜 커피에 대한 호기심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리자! 큰 결심을 하고

드디어 더 현대 카멜을 찾아간 날.

막상 가보니 무작정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종이를 쓱 찢은 번호표를 나눠준다

소중한 번호표를 손에 쥔 순간

번호의 숫자에 식겁했지만, (무려 200번대!!)

그래도 기다려야지. 암.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카페를 찾아 앉았다.

이 웃긴 상황 속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나 더딘지.


혹시나 순서가 지나갈까 싶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몇 번이고 스쳤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일인가?!


드디어 내 차례가 거의 다 됐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고도 다시 기다림.....

그나마도 테이크 아웃이기에

조금 더 빠르게 받을 수 있었지만

이미 기다림은 거의 2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나 손에 쥔 커피는

생각보다 작다.

괜히 더 허탈한 기분.

이걸 위해 2시간을 기다렸나?


한 입을 마시면서

기다림을 작은 크기의 허탈함을 모두 보상받는

맛을 기대했지만,

그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흠...


그날 이후,

카멜은 나에게 그런 곳이 되었다.

굳이 시간을 들여 찾아갈 필요는 없는 곳.




그러다 연남동 골목에서

우연히 카멜을 다시 만났다.


줄도 없고,

기다림도 없었다.

같은 아날로그 주문서, 같은 메뉴였는데

그 느긋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은

그날 마신 커피를 이상하리 만큼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 크림커피가 생각나는 날이면

한가한 연남의 골목을 찾게 되었다.


아주 인상적인 맛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다.

과하지 않은 단맛과 고소함,

마신 뒤 남는 은근한 진함.


무엇보다 좋았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같은 커피라도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은 이렇게 달라진다.


기다림 끝에 마신 커피보다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마신 한 잔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연남의 한가한 골목에서 만난 카멜.

그날의 그리고 그 이후의 카멜 커피는

충분히, 충분히 맛있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