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수다 사이, 여유의 시간-에이투비
성수는
늘 속도가 빠른 동네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곳에 가는 날이면
설레기보다는 먼저 숨을 고르게 된다.
모든 게 느리게만 흐르는
나와는 다른 속도란 생각에 말이다.
몇 번을 와도 이 동네에서 느끼는
템포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착하기 전부터 몸이 먼저 긴장하고,
사람이 많을 거라는 말 한마디에
아직 보지도 않은 거리 앞에서부터 어깨가 굳는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각오를 하고 갔는데도 생각보다 한산했다.
평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네의 얼굴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괜히 다행처럼 느껴졌다.
붐비는 시간을 피하고 싶어
어중간한 시간을 골라 나온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둘 필요 없는 오후였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카페를 찾다가
커피가 괜찮다는 리뷰 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다.
큰 고민 없이 향한 곳, 에이투비.
그때는 몰랐다.
이곳이 그렇게 힙한 카페라는 걸.
카페가 있다는 성수역 2번 출구 쪽은
우리가 있던 3번 출구에서 꽤 걸어야 했다.
이렇게까지 멀 일인가.
고작 2번과 3번의 거리가.
길치인 나는 지도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고,
길눈 밝은 친구는 말없이 앞서 걸었다.
그 덕에 도착했을 때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옛 공장이었을 것 같은 건물.
괜히 한 번 더 올려다보게 되는 외관이었다.
1층의 초록색 대문이 눈에 들어왔고,
그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진짜 카페가 여기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계단 끝의 문을 열자
밖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펼쳐졌다.
조용하지만 가볍지 않은 분위기.
성수 특유의 감각은 남아 있으면서도
머무는 사람을 긴장시키지 않는 공간이었다.
좌석 간 간격의 여유만큼 나도 여유로워진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꽤 한산했다.
그래서 이곳이 인기 있는 카페라는
사실을 더더욱
인지하지 못했던 듯도 하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잠깐 사이,
빈자리는 거의 사라졌다.
자리에 앉으면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주문은 카운터에서 하지만
음료는 다시 자리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사소한 차이인데,
이런 순간들이 카페에 대한 인상을 조금씩 바꾼다.
디저트도 유명해 보였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음료만 주문했다.
나는 디카페인 허니카토,
친구는 핸드드립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굿나잇’.
이름처럼
정말 무사히 밤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허니카토는
콜드브루를 베이스로
위에 벌집이 올려진 메뉴였다.
콜드브루 특유의 향이
벌꿀과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의외로 잘 어울렸다.
잔에 담긴 모습도
괜히 한 번 더 보게 됐다.
사실 헌터라떼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늦은 시간의 커피 앞에서는
디카페인이라는 선택지와 늘 타협하게 된다.
그래도 허니카토가 주는 만족감은 충분했다.
과하지 않은 달달함이
몸에 남아 있던 하루의 피로를
조금씩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수다.
맛있는 커피와 수다.
이 조합 앞에서는
굳이 더 많은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해가 지자
에이투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카페라기보다는 바에 가까운 얼굴.
같은 공간인데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다음에 성수를 다시 찾게 된다면
못 마셔본 헌터라떼를 핑계로
다시 들르게 될 것 같다.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에서
이상하게도 조용했던 하루.
성수라는 이름보다
그날의 여유로움을 먼저 기억하게 만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