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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푸르르던 그날의 기억 1

여수,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

by 이설



나의 여행의 기억을 어디서부터 더듬어 볼까 고민을 했다.


얼마 안 되는 경험들 중에 그래도 내 기억 속에 콕 박혀

있는 곳

나에게 여행이 재미있는 거구나 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곳.


코로나가 한창이라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묶여 있던 발이

조금은 자유로워졌던 시기 떠났던

여수가 기억이 났다.


아직도 기억하면 그 푸르렀던 하늘이 아름다워 머릿속

한 편에 콕 사진처럼 떠올리는 여수.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했던 여수.


그래서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려고 한다.




그 첫 여행을 계획한 건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다.

강렬하게 놀고 싶다!!! 는 마음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나는 뚜벅이였고, 내 지갑은 그렇게 두툼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여행은 나에게 너무나 미지의 단어였다.


제대로 여행을 해보지 못했던 내가 장소부터 뒤진다는

것이 머리 복잡했다.

검색을 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또 그렇게 떠나고 싶은 마음을 먹고 둘러보니

그동안 부모님과 제대로 여행을 한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에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싶어 엄마와 딸의

콘셉트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콘셉트로 찾다 찾다 찾은 곳이 바로 여수였다.

KTX를 타면 이동이 편하고 여수 자체에서도 만약 크게

동선을 짜지 않으면 호텔 근처에서 얼마든지

관광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 여수를 가자! 하고 엄마에게 계획을 말하니 엄마가

엄청 행복해하시더라.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나 자신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한테 말을 전하셨는데...

아빠가 서운해하시더라는...


그래서 셋의 여행이 되었다.

교통편도 호텔도 다시 다 정하고 동선도 다시 짜고


부끄럽지만, 내가 아직도 뚜벅이를 벗어나지 못한 관계로 사실 엄마와는 기차여행을 계획했는데

우리 집 유일한 운전자 아빠의 합류로 조금은

편한 여행이 되었으니,

나는 감사한 마음이 컸다.

엄마와는 가까운 곳만 갈 예정이었다면 이제 활동반경이 엄청 커졌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뚜벅이라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나긴 여정 운전으로

도움이 1도 되지 않아

늙은 아빠께 온전히 운전대를 맡기는 불효자 딸은

여행지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실제로 나는 부모님의 사진사로서 , 가이드로써 최선을 다했다! 살짝 투덜거릴 때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즐기는 시간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동선을 짰다.

정적인 것부터 조금은 액티비티 한 것까지.

그리고 맛집도 알아보고.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 일련의 시간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또 나름 재미도 있었다.

무언가 많이 보여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빠듯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또 여행이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10월의 끝에 도착한 여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보다 더 푸르를 수 있을까 싶게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눈이 부셨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호텔에서 짐을 먼저 풀 수 있었는데

호텔도 바다 전경으로 잡은 터라 호텔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그렇게 예술일 수 없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베란다도 있어 창을 열고 나가면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바닷바람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엄마 아빠의 감탄하는 소리까지 들으니

더더욱 뿌듯했다.

여기에 온 나 자신 너무나 자랑스럽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나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드넓고 푸르름이 한도 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의 한편 짐짝들이 하나씩 버려지는 기분이다.

무거워서 어쩌지 못하는 것들을 품고 사라져 주는 듯한,

바다는 추운 날에도 무섭게 파도치는 날에도 나에게는

위로와 따뜻함을 준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면 참 좋겠지만,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려대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함께하면서 시작부터 배고프면 안 되지.


그래서 열심히 찾아본 게장집으로 갔다.

사실 난 게장을 먹지 않는다.

엄마도 잘 드시진 않지만, 아빠가 좋아하시니 점심은

운전으로 고생하신 아빠가 좋아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이런 특권이 있어야 운전할 맛이 나시지 않겠는가?

불효녀의 효녀적 사고방식이다.


맛집이라더니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도 크게 대기가 없었다.

워낙에 큰 식당이라 그런 듯하다.

게장정식으로 3인분을 시키고 엄마와 아빠는 게장을

나는 사이드로 나온 것들로 배를 채웠다.

반찬도 편하게 가져다 먹으면 되는 곳이라 진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먹고 싶은 것들만 먹었다.

(사실 제가 좀 편식이 심합니다.)

그 사이드도 반찬도 푸짐하고 맛났다.

특히 첨 먹어보는 게국지? 요거요거 아주 요물스럽다.

입에 착! 감기는 맛이랄까?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그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에

나 또한 더 맛있게 먹었다.

아직도 아빠는 그때 그 게장이 생각나시나 보다.

그 게장 먹으러 여수 갈까?

농담처럼 하시는데, 농담 같지가 않을 때가 있다.

언제 한 번 다시 가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배부르고 나니 여행의 준비가 된 것 같다.

이제부터 슬슬 걸어야 하고 찬바람도 맞아야 하니 배는

든든해야지.

행복한 여행의 시작은 부른 배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니까요.





나의 여행이야기는 살짝 길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걸 내가 글을 쓰면서 느낀다.

뭔가 여행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그 기억이 그냥 휘리릭

넘기기엔 너무나 아깝고 그 시간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싶어 진다.


아마도 나의 첫 여수여행의 이야기도 그 연장선상에서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직은 여행이 무언가 결심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일이었던 나에게,

여수의 여행은 큰 의미가 있었다.

선뜻 가기 어려웠던 마음을 먹었던 것부터 계획했던 것들이 하나씩 기분 좋게 이루어지는 순간들,

그리고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일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면서

행복했던 시간들.

코로나로 지쳐있던 그 시절 여행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아주 즐거운 기억으로 나와 나의 부모님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 이야기는 살짝 프롤로그랄까?

온전한 여행의 시작 전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이 제 여행의 이야기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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