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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푸르르던 그날의 기억 2

여수, 바다와 함께 한 시간.

by 이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여수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둘이었다면 사실 가지 못했을 텐데 아빠의 합류 덕분에 가게 된 곳.


셋이 첫 번째로 만난 여수는 바로 예술의 섬 장도다.



이곳은 섬이지만, 배를 타고 가지 않는다.

섬이라는 이름이지만, 엄연히 육지와 연결된 곳.

길게 연결된 다리는 항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곳은 물때에 따라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은 바쁜 걸음을 했다.

혹시라도 너무 늦으면 오래 머무르지 못할까 살짝 걱정이 되었으니까.


점심을 살짝 지나 맑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장도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다양한 조형물들을 품고 있는 그 한적한 길을 셋이 나란히 걸으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가는 곳곳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시간,

나는 두 분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으니까.

이 여행에서 말이다.


감탄을 연발하며 조형물들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두 분을 보니 마음이 흡족했다.

여기 오길 잘했다.


빡빡한 서울에서 여유 없이 살아가는 시간들을 뒤로하고,

한적한 이곳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는 나는 그래서

더 마음이 아리기도 하다.


셋이 함께 다니는 길, 셋이 담긴 사진,

그리고 셋이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시간들이 새삼 소중했던 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던 날.


인기 있는 스폿마다 점을 찍듯 사진을 찍고 핫하다는 사진 구도까지 섭렵하며 그 시간을 오롯이 즐겼다.

장도를 나오기 전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시간,

나란히 앉은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저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하는 작은 소망도 생겼다.


점점 작아지는 두 분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길..

그런 소원의 마음을 바다에 빌고 나왔다.


장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바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여수 하면 여수밤바다!


크루즈를 빼놓을 수 없다.

주말이 아닌 관계로 불꽃쑈는 보지 못했지만,

여수의 아름다운 밤을 즐길 수 있는 크루즈를 빼면

섭섭하지.

게다가 부모님까지 계신데!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평일이니까. 하는 안일한 생각.

그리고 밤바다가 그렇게 추울 거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따뜻한 먹거리하나 준비 못한 우리의 크루즈는

즐거웠지만 춥기도 했다.


'여수밤바다, 그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크루즈는

낭만 있는 디제이 아저씨의 이야기로 진행이 되었다.


조명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밤바다에서 바라보는 그 불빛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무지개색 조명부터,

예쁘게 다리를 꾸며주고 있는 조명까지.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 밤바다를 즐겼다.


사실 나도 크루즈는 처음인지라,

그날의 기억이 참 예쁘게 담겨있다.

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 한계를 알 수 없지만,

그 자체로 나에게 주는 편안함이 있어 계속 바라보게 된다.

어두움 안에서도 달빛 별빛에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에도 반짝이는 바다는

그 모든 것을 품고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주는 위안..

살짝살짝 파도가 치는 배 위에서 즐기는 밤의 여흥.


기분 좋은 시간이다.

비록 차가운 바람이 몸을 식히고,

그래서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 시간 좀 넘는 바다 위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육지를 밟았을 때

귓가에는 아직도 여수밤바다의 감미로운 선율이 맴돌고 있었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여수밤바다, 그 조명의 이야기




저녁도 먹지 못하고 바로 장도에서 크루즈까지 쭉 이어진 하루였던 터라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의 배를 이렇게 오래 비워두다니..

살짝 죄송스러운 맘에 급하게 그날 저녁 메뉴로 선택했던 햄버거집을 향했다.


간당간당 한 시간.

거의 5분을 남겨두고 겨우 도착한 우리가

마지막 주문자가 되었다.

우리 뒷분들의 쓸쓸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살짝 승리자와 같은 기쁨을 누렸던 건 안 비밀...


요즘 말로 하면 러키비키인가?

이 여행은 정말 되는 여행이다.

어쩜 이렇게 모든 일들이 착착착 아름답게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부모님은 햄버거를 좋아하시진 않지만,

여수의 맛집이라는데 한 번은 맛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

사실 술도 마시지 않고 먹을 줄 모르는 우리 셋은

셋의 여행의 축배도 함께 들고자 맥주 2캔을 샀다.


그리고 함께 치얼스~


참 그랬구나, 그날의 밤 처음으로 셋이 함께 한 시간을

이렇게 보냈었구나.

기록을 하는 지금 기억이 새록새록 빛난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하루가 무척이나 아쉬워

잠들지 못했던 첫날,

밤바다와 함께 천천히 잠들었다.


햄버거와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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