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흩날리는 벚꽃들 사이에서
여행이란 무엇일까.
한때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낮과 밤을 온전히 보내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전주의 벚꽃과 함께한 여행은 그 정의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전주 여행은 나에게 조금 특별했다.
이제 막 알게 된 동갑내기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그들과 길을 나섰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내게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단양이 변화의 시작이었다면, 전주는 그 변화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나의 변곡점을 지나오면서 나는 지나온 나를 후회했다.
두렵다는 이유로, 무섭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이것은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했냐고?
전혀.
오히려 세상이 불편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굳이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에서 만난 변곡점을 시작으로 나는 조금씩 달라져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여행은 그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확실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낯설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단지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인 이들이 내게 준 것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의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위안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 작은 위안을 붙잡고 나는 이 관계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힘들었다.
내가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모임에 나가다 보니 익숙하지 않던 감정들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동갑내기 친구들의 "우리 여행 갈래?" 하는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다.
특히나 여수를 제외하면 전라도와는 인연이 없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전주가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니.
그런데 KTX에 몸을 싣고 떠나니 전주는 금방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친구가 있었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과 차량과 함께.
그렇게 전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겹벚꽃을 보기 위해서.
사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는 편이었다.
벚꽃축제 같은 곳은 더더욱. 게다가 꽃구경을 가는 일은 내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 있을 줄이야!
하지만, 흐드러진 꽃들을 보는 순간 머릿속을 채우던 걱정들이 사라졌다.
겹벚꽃은 마치 오랜 시간의 정성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듯했다.
한겹 한겹 쌓여 있는 꽃송이 하나하나에 봄의 시간이 가득 담아 피어있는 듯 보여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자 꽃잎들이 흩날렸다. 분홍빛 꽃비를 맞으며 그 순간 나는 그 장면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러웠던 내가, 어느새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내 웃는 모습이 어색했다.
왠지 모르게 더 못나 보일 것 같아 최대한 입을 가리고 찍는 나였는데, 이날 찍은 사진들을 보니 조금씩 그 웃음이 자연스러워 지고 있었다.
아마도 동갑내기들과의 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녀들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풀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이 쌓아온 시간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지만, 첫 만남치고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늘 사람이 많은 곳을 피했다.
절대 만날 일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겹벚꽃이 가득했던 하루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힘들 게 뭐 있어.
내가 안 해본 걸 해본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앞으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깔깔거리며 웃던, 낯선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아직도 그날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물론, 아직도 관계라는 것은 내게 조금은 어렵고 어색하다.
관계란 쌓이고 쌓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렇게 빠르게 만들어진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저 이렇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은 성실하게 쌓여갈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 쌓이는 시간 속에서, 이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들과 함께 걸었던, 그러나 살짝 한 걸음 뒤에서 쫓아가던 그 벚꽃길,
나를 앞으로 더 나아가게 했던 그날.
이제 곧 다가올 봄을 생각하니, 그 벚꽃이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