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 (3) 힘들었지만, 자꾸 생각나.
반딧불 투어를 마친 뒤, 겨우 숙소에 도착해 몸을 뉘였다.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마음은 들떴다. 왜냐고?
우리의 다음 일정은 아침 7시부터, 드디어 필리핀의 바다를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바다와는 인연이 없었던 나는, 이번 호핑투어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 날을 위해 풀페이스 마스크 스노클링 장비까지 챙겨왔으니 말이다.
조식도 겨우 먹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어떠랴!
바다다 바다!
패키지에 포함된 기본 호핑투어는 돌고래 왓칭과 발리카삭 거북이 투어였고,
우리는 여기에 스페셜로 나팔링 투어까지 야무지게 추가했다.
그날 오전 일정은 말 그대로 바다와 함께 풀타임.
호텔에서 래쉬가드를 챙겨 입고, 손에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가방엔 수건과 생수를 챙겨들고 호핑투어 장소로 출발했다.
첫 번째 코스는 돌고래 왓칭!
근데 말이지, 이 녀석들 아무 때나 얼굴을 보여주진 않는단다.
바다가 조금만 거칠어도 요 예민한 녀석들은 바닷속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간 시기에는 50:50 확률이라길래, 맘 졸이며 바다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발~~!!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걸까?
멀리서 돌고래 떼가 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멀리 있어 작디작은 점 같았지만, 분명 돌고래였다.
50%의 확률이 100%가 되는 순간. 기분 좋은 출발이다!
그리고 거북이를 보기 위해 발리카삭으로 향했다.
근데 왜 필리핀 호핑투어는 이리저리 떨어져 있냐고요…
거북이를 보기 위해선 큰 배 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또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작은 배에서는 뱃사공이 “고프로! 고프로!” 외친다.
단호하게 "No!"를 외쳤는데, 이게 문제였을까?
왠지 다름 팀들에 비해 거북이 보는 시간을 짧게 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장비는 참사를 일으켰다.
자꾸 벗겨지고 벗겨지는 사이 바닷물을 자꾸 먹고...
거북이 보는 시간보다 마스크랑 사투를 벌인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거기에 바닷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수케이스에 들어간 핸드폰이 먹통이 되버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그날의 호핑...
짧고 얇게 만나고 온 바다거북이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사진은 없고, 눈에만 담아 온 그날의 바다.
생각하면 아직도 아쉬운지고...
사실 이 투어에는 버진 아일랜드도 포함돼 있었는데,
그당시 산호초 훼손 사건이 우리 여행 직전에 있었고 그 여파로 폐쇄되어 갈 수 없게 되었다.
왜 자꾸 자연을 보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건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보호 명복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니 할 말은 없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런 이유로 또 굳이 이동을 해서 스노쿨링을 하란다.
그럴 거면 거북이 좀 더 보면 안되는 거였나요?
그렇게 바다를 여기저기 바쁘게 찍고 다시 큰배에 오르면,
발리카삭 거북이 배의 뱃사공을 위한 팁을 걷는다.
솔직히… 안 주고 싶었다.
불친절했다고요!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실 바다와 바다 사이의 이동이 더 힘이 들었다.
살짝 지친 상태였지만, 우리에겐 아직 나팔링 투어가 남아있습니다!
솔직히 속으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신청해버렸으니.. 해야지..
근데, 요 나팔링 투어는 할만하다!
튜브에 매달리면, 현지 가이드가 그 튜브를 끌고 다녀준다.
우리는 그냥 둥~~둥~~ 떠 있으면서 바다 구경만 하면 끝!
그리고 진짜 정어리떼와 바다 협곡이 예술 그 자체다.
그야말로 물속의 절경!
낮은 바다에서 갑자기 절벽처럼 깊게 떨어지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니모 같은 아기자기한 물고기부터 이렇게 큰 물고기도 있다고? 싶은 어마어마한 녀석들까지, 정말 다양한 어종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 깊이가 있어 스쿠버다이빙을 많이 하는 곳이라고 하더니, 나팔링 투어를 하는 우리 옆에서는
익사이팅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에 있었다.
나중에 나도 해봐야지, 괜시리 부럽다.
하지만, 우리의 투어도 알차다.
중간에 가이드가 프리다이빙으로 물속 도넛도 만들어준다.
돈을 내고 하는 투어이긴 하지만, 정말 이 가이드한테는 팁을 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친 건 지친 거다.
살짝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가, 투어가 끝났다. 얼마나 속으로 다행이다를 외쳤는지 모른다.
우리 일행은 너무 좋아해서, 내가 힘들었다는 말을 선뜻하기 어려웠다.
사진첩에는 남지 않았지만, 마음엔 선명히 남아 있는 그날의 바다.
어쩌면, 기억 속에만 남은 풍경이 더 오래가고, 더 아름답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 바다의 이쁘디 이쁜 청명한 얼굴을 만났던 하루.
그리고 그 후 다시 만난 바다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