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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바다에 가라앉다

필리핀 보홀(4) 고요함과 흥겨움 사이

by 이설



오전의 바다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씻기도 해야 하고 밤의 여정이 남아있는 관계로 휴식도 필요하고.


하지만, 실상 쉴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바다를 다녀왔으니 빨래하고 정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날이 맑지 않아 과연 다음 날까지 마를까, 살짝 걱정도 됐다.

마지막 날이라서가 아니라, 다음 날도 입어야 할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 후의 일정은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선셋 투어였다.

해가 지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멋이 있으니, 놓치고 싶지 않은 투어였달까?

그래서 우리가 스페셜의 스페셜 호갱님이 됐을지도 모른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보홀에서 선셋을 보기 위해서는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선셋 스폿으로 유명한 리조트 안.

투숙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듯했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물론 선택관광 비용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리조트에 도착해 그 스폿을 향해 가는 길마저도 얼마나 예쁜지.

걸어가는 동안,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추기를 반복했다.



원시림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한 기분.

초콜릿 힐에서는 전체를 조망하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는 그 안을 탐험하는 듯하다.

물론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 험난하진 않았으니, 사진에 중점을 맞춘 옷차림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


선셋 스폿에 도착하니, 맥주 한 병씩을 건네며 빈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해 준다.

술은 즐기지 않지만, 분위기까지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


맥주 한 병씩 손에 들고, 치얼스~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에 취하듯, 그 순간을 음미했다.

마음이 취하는 기분으로.



태양이 바다에 가라앉으려고 하는 찰나.

이동하란다.


아… 이 패키지의 폐해여.

가장 보고 싶은 순간이 바로 눈앞인데, 자리를 떠야 한다니.

허망하지만 어쩌랴.

패키지에 매인 몸.


무겁게 몸을 일으켜,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었다.


그리고, 그 이동하는 순간

태양이 바다로 가라앉는 장면을 마침내 마주할 수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깊은 바닷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태양은,

다 져가는 쓸쓸함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여운처럼 느껴졌다.


태양이 지기에, 다시 태양이 뜨는 것이니까.


가끔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하루가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또 내일이 있으니,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선셋을 좋아하나 보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도 아름답지만, 지는 순간은 긴 여운을 남기며 더없이 아름답다.





아쉬운 선셋의 순간을 뒤로하고 떠나야 할 시간.

아쉬움은 컸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고요함과는 정반대의 신나는 불쇼.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아련함 가득했던 감정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어느새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요함과 흥겨움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원 없이 필리핀의 밤을 즐긴 날,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아쉬움이 남았던 우리의 필리핀 여행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의 익사이팅한 여정은 생각지도 못한 꿀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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