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5) 고래상어와의 만남,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
마지막 날, 필리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고래상어 투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새벽,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투어가 진짜 블록버스터급 이야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고래상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선 새벽같이 일어나 또 한 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문제는 전날의 호핑투어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속이 썩 좋지 않았다.
가이드가 멀미약을 권할 때, 아무래도 오늘은 필요하지 싶더라는.
그래서 도착하기 직전 하나를 먹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정말 그 순간 나의 판단 칭찬해.
아침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지만, 어차피 바다에 들어갈 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전날 말려 놓은 래시가드를 챙겨 입고 흔들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맡기고 교육을 받았다.
요점은 간단했다.
"만지지 마세요."
어마어마한 크기의 순딩이라는 이 고래상어를 본다는 생각에 들뜨긴 했지만,
막상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자마자 그 마음은 긴장으로 180도 변했다.
보홀 바다에서 고래상어를 보는 스폿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이 작은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앞팀의 배가 파도에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훅 올라왔다.
우리가 탈 차례가 되어 배에 오르니, 현지 스태프들이 배를 밀어 바다로 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는 앞으로 나가질 않고, 파도에 밀리는 듯했다.
이때부터 느껴졌다.
바다가 심상치 않은데?
밀려오는 파도에 배는 출렁거리고 내 속은 울렁거렸다.
가두리 근처까지 겨우 겨우 도착했는데, 거기서는 또 수영을 해서 가야 한다.
하지만, 이미 바다는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였다.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배에서 앉아있는데, 배가 흔들릴 때마다 속이 더 안 좋아진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갈 수는 없지.
용기를 짜내어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에 들어가자,
현지 가이드가 나를 끌고 가두리 쪽으로 데려가는데, 내 몸은 이미 종이인형처럼 휘청거리고 있었다.
파도에 흔들, 물속에서도 흔들, 균형을 잡을 새도 없이 가두리 지지대를 붙잡고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스노클링 장비가 계속 벗겨지고, 바닷물을 입에 털어 넣는 수준으로 마시고 있었다.
순간 내가 고래상어를 위해 준비한 새우떡밥을 다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힘들게 바닷속으로 들러가니,
입을 떡 벌린 고래상어가 내 발아래에 있었다.
‘이대로 놓치면 저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가?’
정말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파도는 미친 듯이 치고, 고래상어는 웅장한 입을 벌린 채 유유히 헤엄치고,
나는 겨우겨우 나무에 의지해 있는데,
여기서 이걸 놓치면 저 입속으로 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순간 생각했다.
아… 진심으로 육지로 가고 싶다.
그래도 거대한 생명체를 직접 눈앞에서 보니 신기하긴 했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스노클링도 제대로 즐기고, 고래상어 옆에서 슬슬 수영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날은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
겨우 배에 올라타 육지를 향했지만,
배가 전진하지 못하고 자꾸 파도에 밀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이러다 육지 못 가는 것 아냐?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그러다 드디어, 육지에 닿았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헛웃음이 나오더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말했다.
“태풍이 오고 있어서 오늘부터 바다 일정은 모두 취소될 거예요.”
… 우리는 뭐지?
그 새벽 첫 타임으로 출발했기에 그나마 투어가 진행된 거겠지.
취소할 틈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해봐서 다행이다.
지금 이 고래상어 투어는 없어졌다고 한다.
하기사,
자연에서 살아야 할 생명체를 먹이로 유인해서 가두고 그걸 상품화한다는 건 인간의 이기심일 테니 어쩌면 없어지는 게 당연한 일 일지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차후의 이야기.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가 고래상어를 한 날
필리핀 호핑투어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말 긴박한 상황에 있었던 거였다.
우리는.
이거슨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다.
필리핀의 마지막 날,
돈주고도 경험 못 할 생생한 한 편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