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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그 끝에는 웃음이 남는다

필리핀 보홀 에필로그 - 잊지 못할 망고의 추억

by 이설

재난영화 한 편을 거나하게 찍고도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까지 한참 남은 우리는,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가뿐하게 투어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가 말한다.

태풍이 오고 있으니, 나무 밑으로는 되도록 가지 말라고.

혹시 열매라도 떨어지면 큰일 난다고 했다.


험난한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아직은 태풍의 초입이라 그런지, 바람은 불고 날은 흐렸지만 견딜 만한 정도였다.


이제 정말 남은 건 쇼핑.

성당 한 바퀴, 시장(?) 한 바퀴만 돌면 쇼핑 타임이 이어지고, 그 뒤엔 자유시간이 기다린다.

나름 유명하다는 코코넛 커피 한 봉지와 치약 하나씩을 들고 나온 우리는,

처음으로 필리핀 전통음식을 맛봤다.


보면 우와, 먹으면 음...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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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스페셜한 관광이 끝나고 대망의 자유시간!


우리는 알로나 비치에 가기로 했다.

필리핀 보홀에 와서, 알로나 비치라는 이름이 붙은 호텔은 보거나 지나쳤지만,

정작 해변은 못 가봤다는 이상한 아이러니를 해결하고자.

(그동안 갔던 바다들이 어쩌면 다 알로나 비치일 수도 있지만, 왠지 안 가본 느낌이랄까..)


태풍이 불어와도 여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분명 아름다웠을 텐데,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해변은 어쩐지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결국 우리는 철수.


이렇게 아쉽게 끝나다니, 마지막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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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이 여행의 끝은,

진한 노랑의 달콤함이 가득한 망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완성되었다.


가장 여유로웠던 필리핀의 오후,

저녁을 먹고 마지막 일정인 마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이 남자,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개.

커피냐, 아니면 첫날 맛있게 먹었던 망고 아이스크림이냐.


1분도 안 되는 고민 끝에 당연히 망고!로 만장일치 되었다.


"한국 가면 이런 맛없어. 그럼 생각날 거 아냐."


그래서 망고 가게에 들어갔는데, 왜 그날따라 사람이 그리 많은지.

간신히 자리를 잡고 첫날 먹었던 컵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던 찰나,

옆 테이블에서 뭔가 범상치 않은 메뉴가 보였다.


커다란 접시 위에 수북이 담긴 망고 아이스크림,

그 위에 생망고까지 듬뿍.

마침 또 그걸 먹고 있는 건 한국인.


주저 없이 물었다.

"그거 메뉴 뭐예요?"


우리는 묻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보지 말았어야 했다.


이 한 마디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시작될 줄이야...


주문은 했는데, 사람들이 몰린 탓인지 음식은 감감무소식.

마사지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나올 기미는 없다.

물어보면 "곧 나올 거예요"라는 대답만 반복.


그래, 마음 급한 건 우리지, 그들은 아니니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메뉴가 등장.

우와! 정말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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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이드가 들어오더니 한 마디 한다.

"이제 나오셔야 해요~."


동공지진.


그때부터 우리는 바빠졌다.

이제 막 나온 메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1인용 포장컵을 들고 후다닥 달려와, 입에도 넣고, 컵에도 담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손놀림은 점점 현란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웃기는지.

깔깔거리면서 정신없이 담는 우리를 보고는,

우리 양옆 테이블 손님들까지 먹던 걸 멈추고, 거의 놀란 눈으로 우리 한 번 아이스크림 한 번 번갈아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부끄러울 시간이 없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욱여넣자 머리는 띵~

그래도 남길 수 없다는 의지를 활활 태웠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웃겼던 그 순간.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이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떠난 나의 첫 여행은

이렇게,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떠나기 전엔 걱정이 앞섰다.

혹시 감정이 상하면 어쩌지?

하지만 지금도 그 멤버들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났어."


완벽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가득 쌓인 즐거운 기억들 덕분에 그 추억만 꺼내도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해외여행의 첫 장,

지루할 틈 없이 웃음으로 꽉 채운 필리핀의 시간들이

기억을 통해 다시 기록되는 이 순간, 설렘으로 내 마음에 다시 한번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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