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깨비 홍콩여행(1) 도교의 사원 웡타이신에서 시작된 여
여행의 첫날은 늘 피곤하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마음마저 늦게 시동이 걸린다.
그래도 그날은 일정이 조금 늦게 시작되어서 잠시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호텔 창을 열자, 아직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층 건물과 쓰러질 듯 보이는 낮은 건물들
아침에 마주한 이 장면은 홍콩을 여행하는 내내 따라다녔다.
과거와 현재의 어디쯤인가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첫 목적지는 웡타이신 사원이었다.
홍콩 사람들이 도교를 믿는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을 줄은 몰랐다.
종교와 미신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한 도교의 사원은 이름도 낯설다. 웡타이신.
우리식으로는 황대선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사실 이 사원은 원래 다음날 일정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변경되면서 하루 앞당겨졌다.
처음엔 뭐 어때,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작은 변동이 여행 내내 크고 작은 어긋남을 불러온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지.
가이드 왈 이 사원의 볼거리는 총 세 가지란다.
띠별 동물을 상징하는 12 지신,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산통, 그리고 좋은 인연을 이어준다는 월하노인.
‘산통을 깬다’는 그 말의 산통이 이곳의 점을 보는 통, 산통이란다.
언어의 유래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오늘 나의 운은 과연?
다른 것보다 요 산통을 흔들어볼 요량에 기대감이 올라갔다.
사원은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다.
붉은 기둥, 금빛 지붕, 휘황한 장식들. 눈이 바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사원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다들 손에 향을 몇 단씩 들고 다녔다.
흐린 날도 아닌데 사원 전체가 연기로 자욱했다.
외부임에도 그 뿌연 세상에 내 눈이 뭔가 문제가 있어 이렇게 보이나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입구엔 열두 띠 동물상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각 동물 옆엔 귀요미 조각상들이 함께 있었는데, 은근히 귀엽다.
자기 띠 찾아가 내 띠는 무엇을 들고 있나 보면서 사진 찍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가 산통을 흔드는 장소로 서둘러 가자고 했다.
아쉬움을 삼키며 따라갔더니, 그곳엔 이미 사람들이 산통을 들고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상황은 달랐다.
“산통이 없다네요. 그냥 숫자 뽑은 걸로 하세요.”
이 말을 하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이게 뭐지?
그때부터 슬금슬금 불만이 올라왔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사정도 이해는 됐기에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해서 간 곳이 월하노인이 있는 곳.
그곳에서는 빨간 실을 손에 감아 인연을 비는 의식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운명의 짝을 만나게 해 달라는 소망, 혹은 이번 생에 함께 한 사람과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
어느 쪽이든 괜찮다.
이건 해봐야지.
산통도 못 흔들어봤는데.
믿지는 않지만 안 하면 손해 보는 기분이랄까.
종교적인 부분에서 거부감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있다면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가서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산통을 흔들어 보고 나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만약 안 좋게 나오면 찝찝하려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히히.
그리고 12 지신상 옆에서 자신의 띠와 조우해 보는 것도, 월하노인의 빨간 실을 손끝에 감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의미든 간에 그 순간은 꽤 진지하고 재미있었다.
나름 인연의 실은 집중을 하기도 했고.
기대했던 여행과는 다르게 시작한 첫날,
이런 작은 기억이 있어 다행이다 싶은,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던 홍콩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