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깨비 홍콩여행(2)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웡타이신 사원을 서둘러 다녀온 덕분에, 그다음 일정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다음 장소는 홍콩섬.
부랴부랴 이동해,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중경삼림 촬영지로도 유명한 그곳은 이미 인파로 북적였다.
주말이란 특성상 더 그랬을 수도...
하지만 길게 늘어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순간, 왠지 데자뷔가 느껴진다.
벌써 한참 된 홍콩여행에서 이곳을 왔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생경했다.
과거와 현재의 어디쯤인가 있는 기분이다.
사진을 찍고, 바람을 맞으며, 그리 길다는 느낌 없이 끝까지 올라갔다.
그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타이쿤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나는 보지 못했던 곳이다. 아마도 그냥 지나쳤겠지.
과거에는 감옥이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겉은 깔끔했지만, 안쪽에 남겨진 독방들을 보며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너무 좁은 공간을 보니, 괜스레 답답한 느낌도 들면서.
밖은 반대로 활기찼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했고, 야외 카페엔 사람들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풍경 속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20분.
가이드는 그 시간 동안 홍콩 명물 베이크드하우스타르트를 사러 갔고, 우리는 잠깐의 여유조차 없이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무엇을 봤는지 모르게 시간에 쫓기면서도 이 타르트를 기다렸다.
사실 나는 타르트를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에 유명하다니 궁금은 하다.
그. 런. 데.
약속시간에 만난 가이드는 빈손으로 덜렁 와 있는 게 아닌가.
줄이 길어서 결국 사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살짝 화가 났다.
아무것도 안 샀다고? 그 말이 더 황당했다.
패키지여행이 이렇게 약속된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때부터였다.
가이드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건.
실망한 마음을 품고 내려올 땐 계단을 이용했다.
한 방향 에스컬레이터의 단점이다.
올라올 땐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였지만, 내려갈 땐 그냥 많은 계단일 뿐이다.
늦은 점심시간, 배는 고프고 타르트는 없고,
급히 사 온 다른 가게의 에그타르트는 계란 비린내가 확 났다.
억지로 한 입 먹었지만 배만 고프지 않다면 먹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휩쓸리듯 움직인 시간의 시작.
맛집 앞을 스쳐 지나가며, 사진만 찍고 바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시간들.
그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가이드’라는 것.
하말하않.
즐거움이 되어야 할 여행이 그것도 그 시작부터 불만이 가득하면 안 되지.
그래도 웡타이신 사원에서의 시간이 오래 남는다.
홍콩에서 사원을 간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며 떠오르던 지난 여행의 기억들도.
익숙한 풍경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서글펐다.
화려하게 새로 지어진 건물 옆에
낡고 오래된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
그 모습은 마치 과거와 현재 그 어디 즈음에서 멈춘 시간들을 보는 듯한 홍콩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가장 홍콩답다고 느껴졌던 풍경은 결국,
그 낡고 허름한 골목들,
세탁물이 펄럭이고, 트램이 느리게 지나가는 그 거리들 그리고 오래되어 볼품없는 건물들이었다는
건 왠지 입안을 씁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