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깨비 홍콩여행(3) 빅토리아 피크, 아쉬움 한가득 품고 나오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내려와, 맛없는 에그타르트를 먹고 우리에겐
잠깐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말 그대로 정말 짧은 그 시간 동안 점심도 먹어야 하고
자유 관광도 하라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쪼개야 하니, 맛집이라고 간 음식점도 감흥이 없다.
빨리 먹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만 있을 뿐.
그렇게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나와 벼르고 있던 제니 쿠키를 사고 나니,
소호 거리나 벽화 골목을 돌아볼 여유는 전혀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빅토리아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말에 창 밖을 보는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보인다.
저 많은 인파가 다 트램을 타기 위한 줄이란다.
그래서 보통 몇 시간의 대기 시간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그 말을 들으니 과연 오늘 안에는 탈 수는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을 활용한 짧은 여행이 시간을 쪼개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적어도 홍콩의 주말은, 여행자에겐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무언가라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지... 만,
이날을 계기로 홍콩은 주말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속으로 걱정 중인데
가이드가 ‘국제 가이드’ 자격이 있다며 바로 통과할 수 있단다.
그 자랑이 처음엔 조금 웃음도 나왔지만,
긴 줄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반가웠다.
그렇게 빠르게 입구를 통과하고 트램을 타러 줄을 서는데,
여기도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풍경이 보이는 자리를 향한 열망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간신히 트램에 올랐지만, 자리선점은 실패했다.
그래서 일행이 후다닥 앉은자리에 간신히 함께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빅토리아 피크를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홍콩의 부유층이 아직도 이 높은 곳에 산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때는 살해의 위협을 피해 피신하듯 오르던 산,
이젠 ‘명당’이 된 그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고.
예전에는 노예들이 가마를 메고 그 길을 올랐다고 한다.
세상에나..
역사를 안다는 건 때론 씁쓸한 기분을 들게도 한다.
거기에, 그 고된 노동의 한가운데서 그들이 먹던 음식이 딤섬이었다니,
음식에 마저 스며들어 있는 슬픈 역사다.
트램은 중간에 한두 번 멈췄다.
처음엔 고장이 난 줄 알았는데, 주말이라 중간 정류장에서 탑승객을 태우는 거라고 했다.
평일엔 잘 없는 일이라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 마음이 조금 설렜다.
올라가는 길도 아름다웠으니,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또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전망대는 유료와 무료로 나뉘어 있었고, 우리는 무료 전망대로 향했다.
보는 풍경은 비슷하다며 오히려 이쪽이 더 좋다는 가이드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직도 그게 가장 아쉽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 순간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화장실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주말이라는 특수사항까지 합쳐져 대기줄이 어마어마했다.
한가한 화장실 찾아 삼말리를 하다 보낸 시간이 하세월..
눈물이 앞을 가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훌쩍 줄어 있었다.
일행을 겨우 다시 만나 전망대를 살짝 구경하고
가이드가 추천한 다른 뷰 포인트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동동거리며 다녀야 했다.
정말 홍콩 여행은 자유시간의 얼마나 야박하게 주는지...
사실 여기엔, 내가 봉착한 문제가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현금 인출 문제였다.
전망대 근처 ATM이 보여서, 처음으로 그 트래블 카드를 써봐야겠다는 들뜬 마음이 문제였다.
해외 인출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야시장에서 쓸 돈을 인출하려 했는데 에러가 나온다.
한 번, 두 번.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에러는 끝날 줄 모르는데,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결과는 실패.
이미 모여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가서 길을 찾는데, 여기서도 헤매고.
겨우 일행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정신줄 붙잡고 합류할 수 있었다.
나 뭐보고 온거지??
나에게 빅토리아 피크는
화장실의 긴 줄, ATM과의 씨름, 등줄기 오싹하게 미아가 될 뻔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더 많이 남아있다.
조금... 슬픈....
사진으로나마 남은 그 아름다운 전경을 스치듯 본 그날의 홍콩은
여러모로 나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겼고 교훈 또한 남겼다.
여행 전에 필요한 건 한국에서 다 체크하자.
해외에서 헤매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