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깨비 홍콩여행(4) 홍콩의 밤,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여행의 끝자락
저녁을 먹고 우리는 나이트투어에 나섰다.
참고로 이 투어는 선택관광이었다.
가격은 미화 30달러.
하지만 선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선택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여행 일정표상 다음 날 반일 자유일정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시간에도 선택관광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막상 홍콩에 오니 그 선택지는 '마카오 한정'이었다.
나이트 투어는 원래도 할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의 차이는
기분의 차이를 만들었다.
선택이라고 해놓고 사실상 강제적인 분위기는 조금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나이트투어는
페리를 타고 구룡반도로 건넌 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야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나는 처음엔 페리를 홍콩의 바다 위 야경을 즐기게 해주는 어쩌면 유람선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페리란, 그저 강을 건너는 짧은 교통수단일 뿐.
그래도 바다위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도시의 야경은 내게 예전만큼 커다란 감흥은 주지는 않았다.
서울, 부산, 여수…
우리나라의 도시 불빛들이 익숙해서일까.
우리나라의 야경과 별반 다를 게 없네 하는 살짝은 시큰둥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기분 좋은 출발이 아니어서였을까?
아니면, 나이의 영향일까.
이젠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이 나에게 더 큰 감동과 감흥으로 다가온다.
페리에서 내려 우리는 밤거리를 걸었다.
타국에서의 밤의 거리는 묘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함께라서 용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밤의 공기는 그래도 무척이나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낯선 거리 헤매기도 했지만, 서로를 챙겨가며 걸었던 그 거리는 즐거움이 되었다.
이곳에서 홍콩의 밤거리에서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인,
헤리티지 1881도 잠깐 들렀다.
들렀다고는 했지만, 둘러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냥 지나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사진도 별로 남길 틈 없이 후루룩 스쳐 지나가야 했던.
그래서 아직도 내가 본 것들이 본 게 맞는지 가물가물하다.
사진에 한 장이라도 남았다면 가본 곳이요, 아니면 안 가본 곳이지, 뭐.
이런 지경에 이르렀달까....
그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눈으로 스치고 야시장을 보기 위해 다시 2층 버스에 올랐다.
사실 2층버스도 관광용 버스를 기대했다.
왜, 2층은 천장이 없어서 탁 트인 전망을 선사는 그런 버스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냥 일반 2층 버스였다.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바라보는 재미도 없이 그냥 이동수단으로써의 버스.
이건 좀 실망일세..
관광용 2층 버스 타본 적 없는 1인으로써 정말 타보고 싶었단 말입니다...
야시장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적었다.
예전 홍콩의 야시장은 꽤 재미있었건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었나..
야시장의 규모는 작고 너무나 볼품이 없다.
그냥 화려한 매장들이 더 돋보이는, 야시장 투어라기보다는 시내 관광이 더 맞는 듯하다.
이제 이곳은 오히려 스포츠 브랜드 매장이 더 많은데 그중에서도 나이키 매장은 꽤 유명하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상품들이 많아 유명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나.
그래도 왔으니, 유명한 나이키는 가줘야지.
습했던 홍콩에서 처음엔 에어컨 바람이 너무 반가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거의 12시간을 밖에서 돌았던 일정 탓이 기운마저 없었다.
나를 포함 몇 명은 쇼핑 포기.
그냥 자리하나 차지하고 앉아 멍 때리기를 시전 하며, 우리 일행 중 몇 명의 쇼핑 타임을 구경했다.
홍콩에서 기대했던 쇼핑은 못했지만, 그래도 과일 쇼핑은 풍성하게 했다.
호텔에 들어가 한 상 차릴 계획에 조금은 기운이 나는 듯했다.
맛있는 과일은 언제나 환영!
야시장을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스타의 거리와 시계탑에서 야경을 감상했다.
야자수, 시계탑, 바다.
그 조화가 참 이국적이었다.
어쩌면 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장소가 여기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부러웠다.
타이쿤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여유가 물씬 풍겼다.
바쁜 건 우리뿐 인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풍경을 즐겨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눈가엔 다크서클이 실시간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시간이 있어도 체력이 없다.
주변의 풍경을 즐기는 것도 결국 체력이라는 걸 깨닫게 된 날이다.
그러고 보면 홍콩의 여행은 나에게 참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구나.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마음속엔 투덜이 스머프가 자리를 틀었다.
여행이란 때로는 고단할 수 있다.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많은 걸 보고 와야 한다는 생각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그 나라의 공기와 맛, 분위기를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홍콩 여행은 고단함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패키지여행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이뤄진 일정 수정,
그로 인한 뺑뺑이 같은 하루는 단순히 패키지 탓으로 넘기기엔 아쉬움이 컸다.
할 말 하않.
역시, 가능하다면
홍콩은 자유여행이 더 어울리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음 날의 자유일정을 보내며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