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난리 대만여행(10) 화산 1914로 향하는 길, 따사롭던 순간
융캉제에서 화산 1914는 그리 멀지 않았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괜히 가만히 있기 아쉬워졌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아 슬슬 걷기로 했다.
최대한 덜 걷자고 했지만 괜스레 오후의 풍경을 놓치기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변덕을 부렸다.
전날 지우펀에서의 비 오는 서늘함을 느낀 탓이었을까.
그 순간 따사로운 햇살이 유난히 반가웠다.
그래서였을까.
대만의 거리 풍경이 더없이 좋아 보였던 건 말이다.
골목마다 다른 표정이 있었고, 간판마다 특유의 개성이 가득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그늘 아래도 낯선 빌딩의 모습도 모든 게 맘에 쏙 들어오는 오후,
낯선 거리 풍경 모두가 여행자의 눈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되었다.
길을 걷다 예쁜 건물을 보면 멈춰서 사진 한 장,
귀여운 간판이 보이면 또 한 장.
그렇게 목적지까지의 20분은 금세 흘러갔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게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에겐 일상이겠지만, 여행자에겐 모든 것이 새롭고 예쁘다.
여행자의 눈으로 도시의 풍경을 가득 담아내고 있는 순간,
멀리 붉은 벽돌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 화산 1914였다.
이름부터 인상적인 이곳은 예전 맥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란다.
거기에 하나 더 붙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대만 MZ세대들의 ‘핫플’
핫플은 지나칠 수 없지.
오래된 벽돌 건물들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길목이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이라는 이곳은,
그 건물도 일본스러운 느낌이 있다.
그걸 보니, 전날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중국이지만, 어머니는 일본인 나라가 대만이라고.
그 문화에 스며든 일본문화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전시실과 소품 가게들이 이어졌다.
향초, 도자기, 가죽지갑, 엽서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폴리마켓처럼 꾸며진 가게들은 각각의 개성들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혹시나 그 순간의 ‘추억’으로 살 것들이 있을까
한참을 구경했지만, 빈손으로 나왔다.
어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워낙에 건물들 사이사이 예쁜 곳들이 많아서인지, 이런 물건을 파는 곳 말고도 사람들이 넘친다.
벽돌 담벼락에 기대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여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그 틈새에 끼었다.
여행 후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잊힌 순간 꺼내보면 그 순간이 다시 빛난다.
화산 1914를 다니며 이곳만의 분위기에 푹 빠졌다.
내가 알 수 없었던 어떤 과거의 시간 안을 살포시 경험하는 느낌, 그 위에 현대의 시간이 겹쳐 있는 듯했달까.
오래된 역사와 새로운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둘을 이어주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다,
복잡한 현재를 벗어나 느긋한 과거가 머무는 느낌,
오래된 멋 그대로를 품고 있는 곳이기에 MZ들이 더
열광하는 곳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건물과 그 사이사이 골목,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가다 뜻하지 않게 작은 공원을 만나게 되었다.
왠지 뜻하지 않은 보물상자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현지인들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풍경.
도심 속인데도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그냥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어찌나 힐링인지.
여행 중엔 소소한 일상들도 추억이 된다.
그날의 햇살, 그날의 소리, 그리고 그날의 공기까지 모두.
화산 1914는 그렇게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기에 좋은 곳이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장소에 가까웠다.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도 여유가 느껴지고,
번잡함 속에서 고요함이 존재한다.
고요함을 즐기는 와중에도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왜냐고?
이 화산 1914에서 우리는 꼭 가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카페 CHLIV.
핫플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꼭 누리고 말리라!
비록 느긋하게 걷는 여행이었지만, 이 하나는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