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난리 대만여행(9) 융캉제, 달콤한 오후의 시작
딘타이펑에서의 점심은 분명 든든했다.
하지만 여행자의 배는 늘 여분의 공간을 품고 있다.
특히 냄새로 먼저 유혹해 오는 길거리 음식 앞에서는 그 어떤 의지도 무력해진다.
골목 사이로 기름 냄새가 흘러나왔다.
쌀 반죽이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식욕을 깨웠다.
그곳은 대만식 토스트로 유명한 노점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줄에 합류.
우린 배부른 여행을 지향합니다.
주인장의 손은 놀라울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넓게 편 반죽 위에 치즈와 계란을 얹고, 토핑을 살짝 올린 뒤 돌돌 말아낸다.
마치 짧은 공연을 보는 듯했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손에 닿은 따끈한 토스트의 온기가 배부른 우리의 식욕을 자극한다.
한입 베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맛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현지의 맛이다.
크게 특별하지는 않아도,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한 추억의 맛이다.
대만 사람들은 아침을 집에서보다 거리에서 사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가게 앞의 대부분은 현지인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덕에 토스트를 먹는 시간 동안 현지인들의 일상 한가운데에 스며든 기분이 들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잠시 그들 사이에 섞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하루를 흉내 내는 느낌이랄까.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내가 있었다.
길 한복판에 서서 토스트를 먹었을 뿐인데 관광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그 순간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현지를 걷기 시작했다. 조금은 느긋하게.
그러다 정말 우연히 대만의 누가 크래커의 최고봉이라는 가게를 지나게 되었다.
오! 이렇게 발견한다고?
유명한 가게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사실 무척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우리가 간 수요일은 이곳의 공식 휴무일.
전날 이미 샀으니 굳이 뭐 하러 사.
하는 마음에 포기했는데 문이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요일을 확인했다.
잘못 알았나?
하지만, 분명히 수요일이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었다.
이거 완전 행운인데?
어쩐지 운이 좋은 날 같았다.
슬그머니 들어가니 누가크래커가 가득 쌓여 있고 한편에서는 수제로 계속 이 과자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게 안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안 살 수가 없지.
별다른 대기 없이 바로 구매, 그 순간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줄 서지 않고 유명 디저트를 손에 넣는 건, 여행자에게 의외의 보너스 같은 일이다.
집에 돌아와서 이곳의 크래커를 먹었을 때,
왜 이곳이 최고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훨씬 부드러운 누가의 식감, 거기에 크래커 맛과 단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입안에서 천천히 녹아드는 느낌이 좋았다.
융캉제는 그렇게 우리의 ‘배부른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길가에는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골목골목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융캉제에서의 오후는
배부르고 그래서 따뜻했고 그래서 여유로웠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오후였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특별한 풍경도, 대단한 사건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런 평범함이 오히려 오래 남는 건 아닐까 싶다.
유명 관광지의 화려함보다, 헤매던 길 안에서 신이 난 우리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시 간다면 뭘 할까 생각해 본다.
새로운 곳들을 가게 될까? 아니면 다시 딘타이펑을 가보고 토스트를 먹어보고
크래커 맛집들을 투어 하며 보내게 될까?
같은 공간 같은 곳에 있어도 똑같은 느낌은 아니겠지.
똑같은 길이라도 그날의 햇살이나 기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순간의 그 거리의 풍경을, 사람들의 부대끼는 소리들을,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하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미화된 느낌이지만,
그 푸르른 그늘 아래 그 길을 걸었던 순간을.
단,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융캉제 명물 망고빙수를 먹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일까, 그날의 아쉬움이 아직도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음엔 꼭 먹어야지, 하면서도 왠지 또 다른 일로 흘러가겠지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그게 여행이지.
괜스레 피식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