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정은 안녕하십니까
대학교 졸업 이후 구직을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수없이 적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소개서의 양도 늘어났다. 당시 내가 자기소개서에 많이 적었던 단어는 ‘성실함’과 ‘열정’이었다. 수도권 대학교 출신 지원자들의 화려한 스펙에 대항할 나의 무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귀사에 입사하게 되면 열과 성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런 나의 외침에 화답하여 면접 기회를 준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취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의 ‘성실함’은 ‘학점’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나의 ‘열정’은 증명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지나서 ‘열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국어사전에 보면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는 뜻이 나와 있다. ‘애정’과 ‘열중’, 이 두 단어 중에 더 중요한 것은 ‘애정’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곧 열정도 있다.
‘사랑’은 마음 설레게 하는 단어다.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이름만큼 많은 사람이 어려움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단어도 없다. 4년 전 겨울, 광화문 광장에도 ‘사랑’이 있었다. 그곳에 켜진 촛불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의 아이들, 더 나아가 우리의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매서운 바람도 그들의 촛불을 끄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열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니 ‘pass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이해된다. ‘열정’을 뜻하는 ‘passio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pathos(파토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본래 고통, 수난을 뜻하는 말이다. 이 단어가 고대 로마의 라틴어에서는 ‘passio(파시오)’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현재 우리가 쓰는 영어 단어 ‘passion(패션)’으로 이어졌다. 본래 고통을 뜻하는 단어가 바로 ‘passion’이었던 것이다. 지금 영영사전에서는 ‘passion’의 옛날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예수의 삶을 그린 <Passion of the Christ>다.
‘passion’이라는 단어가 열정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도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과 연관이 있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과 이를 위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시련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뤄내겠다는 열정. 그 마음 안에는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이겨내고 성취해 내겠다는 의지가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자신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어필한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열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을까.
잠시 구직 시절의 나로 돌아가 본다. 과연 내가 얘기했던 ‘열정’은 어떠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나의 그것도 가짜였다. 주위의 다른 친구들처럼 많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을 기대하며 입사지원서를 적었기 때문이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 막연히 가고 싶은 회사가 있었지,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반드시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사랑이 생길 수 없었고, 내가 얘기했던 열정에도 진심이 없었다.
‘열정’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운 단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고통, 수난’의 의미를 알고 있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의미를 깨달았을 때, ‘열정’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 밖으로 꺼냈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치열하게 살았던 때의 기억을 꺼내 보면서 ‘열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2년 전 첫번째 책을 쓸 때 정말 치열하게 적었다고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회사에서 하루에 13~14시간 근무를 했다. 허리 통증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힘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감기로 약을 먹었는데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그 와중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전에 글을 썼다. 1개월 만에 원고를 써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써서 작가가 되겠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게 되는 일 모두에 ‘열정’을 쏟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면 열과 성을 다해서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다. 성과라는 열매를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꽃도 따가운 햇살과 거친 바람을 이겨내며 피어난다. 당신은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열정이 준비되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열정이 미풍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열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