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아이콘, 크리스티안 에릭센

회사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

by 장작가


며칠 전 회사에서 CPR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길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단어의 뜻은 심폐소생술을 뜻한다. 경기장에서도, TV를 통해서도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갑자기 쓰러져서 가만히 누워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축구 경기 도중 저렇게 누울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사실 위급한 상황이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 주심이 빨리 확인하여 경기를 중단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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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한 번 정지되었다가 돌아오게 될 경우, 뇌에 손상이 가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로 복귀하고자 하더라도 원래 자신이 뛰고 있었던 자리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때 주목받았던 공격수 중 한 명이었던 신영록도 그랬다. 1987년 생인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의 경기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그에게 ‘영록바’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첼시의 디디에 드록바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2011년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뛰고 있었던 그는 대구FC와의 K리그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기는 중단되었고,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조치가 시행되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되었다. 그가 쓰러진 이유는 부정맥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의식 불명이었으나, 50일이 지난 후 극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여전히 재활 운동을 하고 있으나, 축구 선수로써의 복귀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점점 흘라가고 있고, 1987년 생인 그도 어느새 40살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에 그의 근황을 찾아봤는데, 여전히 정상적으로 걷기도 힘들고,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축구 감독을 꿈꾸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심장이 정지된 이후 다시 돌아와서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선수도 있다. 토트넘 핫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바로 그다. 토트넘에서 에릭센은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곤 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득점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던 델레 알리(D), 에릭센(E), 손흥민(S), 해리 케인(K) 네 명을 두고 언론과 팬들은 ‘DESK’ 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DESK’ 라인에서는 손흥민 혼자 남게 되었다. 에릭센은 2020년 토트넘을 떠나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으로 팀을 옮겼다. 그는 2021년 유럽에서 가장 잘하는 국가가 어디인지 가리는 UEFA 유럽선수권 축구대회에 덴마크 대표로 참여했다. 본래 2020년에 열렸어야 하는 대회였는데, 코로나 이슈로 인해서 1년 연기되어 2021년에 치러졌다.


6월 12일 조별리그 1차전 핀란드와의 경기였다. 측면에서 같은 팀 동료가 던져 주던 공을 받던 에릭센이 갑자기 쓰러졌다. 경기는 중단되었고, 의료 지원팀이 투입되었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고, 제세동기도 사용되었다. 응급조치가 끝났고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쓰러진 그는 다시 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심정지로 쓰러진 선수들이 다시 경기장에 복귀하는 경우를 잘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6월 15일에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상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심장에 자신의 불안정한 심장 심박수를 조절해 주는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는 6월 18일에 퇴원했다.


죽음에 가까이 갔었던 순간을 뒤로하고 그는 축구 선수로 복귀를 시작했다. 하지만 에릭센은 원래 소속팀이었던 인터 밀란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탈리아 1부 리그인 세리에A 에서는 에릭센과 같이 심정지 제세동기를 이식한 선수는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덴마크 오덴세에 있는 유소년 축구팀에서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브렌트포트에서 그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의 계약은 6개월짜리 단기 계약이었다. 그가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야박한 계약이기도 하지만, 그는 6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맹활약 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뛰다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경기장에 쓰러졌던 모습을 뒤로하고 그가 경기장을 누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었다. 에릭센은 스스로 자신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에서 좋은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브렌트포드와의 계약이 끝난 7월,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겼고,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12월에는 덴마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꿈에 그리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열렸던 기자 회견에서 에릭센은 다시 뛰기 시작한 첫날, 카타르 월드컵 출전을 목표라 삼았다고 이야기했다. 죽음에 가까이 갔다가 돌아온 후 다시 시작하게 된 선수 생활에서 하나의 큰 목표를 이룬 크리스티안 에릭센. 그는 92년 생으로 손흥민과 같은 나이다. 아직 2~3년은 충분히 더 뛸 수 있을 것인데, 그가 오랫동안 프로축구 선수로써 멋진 모습을 경기장 위에서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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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일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지인도 잠을 자던 도중에 심정지가 오면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적이 있다. 며칠 전에도 전화 통화하며 이야기하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그렇게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 일은 알기 어렵다 알기 어렵다 하는데, 정말 그렇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아무도 예상을 못한 채 찾아오는 일들은 참 황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예상 못 한 일이라 하더라도 대비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 에릭센이 그렇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도 했다. 그의 곁에 덴마크 동료들은 경기장에서 그가 쓰러졌을 때 그를 도왔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잘 훈련된 의료진도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에릭센도 살아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에릭센이 다시 경기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조금씩 도와준 셈이다. 그들도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고,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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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회사에서 받았던 심폐소생술 교육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교육이었다.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에게 그렇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순간이 올지 안 올지 알 수는 없다. 그 순간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교육을 통해 심폐소생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조금씩 더 알아볼 마음이 생겼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준비. 나와는 상관없을 일 이러니 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앞의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준비를 해두면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작은 일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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