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나를 어디로 가게 하는 가

알 수 없는 인생

by 장작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마다 축구를 하곤 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프로축구 경기를 보기도 했다. 당시 나의 시선을 끌었던 팀이 LG치타스(현재의 FC서울)였다. 그때 팀에는 엄청난 골잡이가 있었는데, 바로 윤상철이라는 공격수였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선수 최초로 100골을 넣은 선수다. 어쨌든 그때 우연히 LG치타스의 경기를 보게 된 후로 나는 FC서울을 응원하고 있다.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나이를 먹고,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처음 축구를 접하고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금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글쓰기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정말 우리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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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 중계 도중 이런 일이 있었다.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했던 차범근이 우리나라와 독일과의 경기에 해설위원으로 나와 있었다. 당시 독일 대표팀의 수석코치에는 요아힘 뢰브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선수 시절에 차범근 위원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었다. 캐스터가 선수 시절 그는 어떤 선수였냐고 물었고, 차범근 해설위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 교체 선수였습니다.”


요아힘 뢰브는 사실 선수 시절 큰 성공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에 한 차례도 선발되지 못했다. 여러 구단을 옮겨 다니며 선수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중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범근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지만 그의 백업 선수 역할이었고, 그나마 백업 선수로써도 활약은 좋지 못했다고 한다.


선수 시절은 그렇게 좋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꽤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VfB 슈투트가르트, 페네르바체 SK, 칼스루헤 SC 등에서 지도자를 하며 경험을 쌓은 뢰브는 클린스만 감독이 이끌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에 수석코치로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한때 자신의 백업 선수였던 요아힘 뢰브가 독일 대표팀의 수석코치까지 된 것을 보면서 ‘좋은 선수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었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차범근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떠날 때에 요아힘 뢰브가 나중에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을 알았을까. 그렇게 월드컵에서 해설위원과 수석코치의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도 어느 순간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관계도 아닐 것 같은 두 사람이 과거 함께 했던 이력이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일들을 볼 때마다 사람일은 언제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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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수는 박주영이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 1부리그의 AS모나코라는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AS모나코를 거쳐간 또 다른 공격수가 한 명 있다. 바로 가봉 출신의 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이다. 두 선수 모두 AS모나코에서 뛴 적이 있다.


오바메양은 이탈리아 AC밀란의 유소년팀 소속이었다. AC밀란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 경기를 뛸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여러 팀에 임대되어 경기를 하기도 했다. 그가 임대를 다녔던 팀 중 한 팀이 바로 'AS모나코‘ 였으며, 당시 박주영과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명이 함께 같이 있었던 것은 오바메양이 ’AS모나코‘로 임대 왔던 2010-11 시즌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오바메양에 비해 박주영이 4살이 더 많았고, 경기력도 괜찮았다. 박주영이 당시에는 꽤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박주영이 팀의 모든 경기를 선발로 90분씩 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를 보좌해 줄 ‘백업’ 공격수가 필요했는데, 당시 그 역할을 한 것이 ‘오바메양’이었다. 오바메양은 그 시즌이 끝나고 나서 다시 AS밀란으로 복귀한 후 프랑스의 ‘AS생테띠엔’이라는 팀으로 다시 임대되게 된다. AS생떼띠엔에서 처음으로 한 시즌에 10골 이상 득점한 그는 다른 팀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독일의 명문구단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팀을 옮기게 된다.


당시 도르트문트의 감독이었던 이가 바로 위르겐 클롭이었다. 그의 지도를 받으며 오바메양은 더 발전했다. 클롭은 2014년 팀의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지만, 오바메양은 도르트문트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총 213경기를 뛰었고, 무려 141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는 더 큰 무대로 옮겼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로 갔던 것이다. 아스널에서도 팀의 주전 공격수 역할을 했던 그는 163경기를 뛰며 91골을 넣었으며,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AS모나코에서 박주영과 뛸 때만 해도 오바메양이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의 공격수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본래 그는 AC밀란 소속이었다. 당시 AC밀란에서 오바메양이 아직 어린 선수이기에 임대를 통해 경험을 쌓게 해서 성장하도록 한 후 자신의 팀에서 활용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임대 초기에 좋은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발은 빨랐지만, 여러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우리 인생은 앞으로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이가 나의 동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동료가 다시 내가 무찔러야 할 상대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정말 하찮게 보였던 어떤 이가 갑자기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뛰어난 선수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오바메양이 선수 생활 중 보여준 모습은 그가 최고 수준의 공격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도 어린 시절에는 박주영의 백업이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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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 인생은 길고,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 당장 몇 시간 후에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탄 버스를 탔는데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어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도 있다. 늘 언제나 화만 내던 친구가 내일은 기분이 좋다면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던 친구가 생각지도 못한 나쁜 짓을 하고 경찰서에 잡혀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는 확실하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불확실하다.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는 알 수 없다. 단 10초 후에의 일이라도 우리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5초 뒤에, 핸드폰 알람으로 ‘경고! 경고! 엄청난 크기의 소행성이 빠르게 지구로 접근 중! 대피 장소로 이동 바랍니다!’와 같은 문자가 왔고, 그로부터 10초 뒤에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선택을 하면서 길 위를 걸어간다. 그 길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이 길로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했다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타인이 걸어가는 길이 더 쉬워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모든 인생은 각자 개개인의 것이고, 선택 역시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에 정답이 없듯이, 인생에도 정답이 없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마음에 들고, 계속해나가고 싶다면, 이를 믿고, 완전히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전 까지는 최대한 노력을 다 해봐야 한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가봐야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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