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 공놀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축구의 기원을 찾아서

by 장작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던 어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왔다. 고기가 먹고 싶었던 그들은 사냥을 하기로 했다. 무리 지어서 돌아다니던 중 저 멀리에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를 발견했다. 우르르 달려가서 잡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던져서 맞추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 들고 던졌다. 사냥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많지 않았던 그들에게 돌멩이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그들은 보다 효율적으로 사냥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훈련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 손에 들어오는 솔방울이나 같은 것들을 모아서 던지면서 훈련을 했다.


그런데 훈련을 하다 보니 그것이 또 재미가 있었다. 그들이 무기로 사용한 것 중에 한 손에 들어오는 것은 던지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은 굴리거나 발로 차기도 했다. 동그란 공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물체를 던지고, 굴리고 발로 차는 모습은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해왔던 습관 중 하나인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오랜 세월 동안 대를 이어가며 해온 시간들을 봤을 때 휴대전화를 사용한 시간보다 어떤 동그란 구형의 물체를 던지고, 차고, 굴려온 시간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축구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스포츠다. 우리가 공을 발견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던지거나 차게 되는 것은 오래된 인류의 습관 때문일 것이다. 사피엔스는 사냥을 위해서 목표에 조준한 뒤 동그란 무언가를 던지거나 찼고, 이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위해 둥그런 물체를 사용하던 인류는 언젠가부터 문자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공을 이용해 놀이를 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서사시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는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었던 우루크라는 나라를 다스린 왕, 길가메시가 주인공인 서사시다. 그가 통치했던 시기가 기원전 28세기라고 하니, 호랑이가 피울 담배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길가메시가 영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영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실패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외에도 길가메시가 사람의 몸에 올라탄 후 막대로 공을 쳤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 데, 공으로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축구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축구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 그가 그 역사서를 편찬한 시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라고 한다. 《사기》중 소진열전을 보면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들이 축국(蹴鞠)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축(蹴)은 발로 찬다는 의미가 있고, 국(鞠)에는 가죽 공이라는 의미가 있다. 규칙은 지금과 다르겠지만, 발로 공을 찬다는 행위를 볼 때 유래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2022021201000304800012751.jpg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212010001275


게다가 소진이 태어나서 활동한 시기가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말인 것을 생각해 보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축구를 즐겼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중국에 이렇게 오래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국제 축구 연맹)에서는 2004년에 중국이 축구의 원류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축국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만들었던 김춘추와 김유신은 젊어서부터 친한 사이였다. 삼국유사에 보면 둘이서 축국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이 뜯어졌는데, 이를 김유신이 자신의 동생인 문희에게 바느질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문희가 김춘추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는데 아쉽게도(?) 더 자세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럽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각국에서 축구라고 부를 수 있는 놀이들을 해 왔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규칙도 다르고, 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축구와 비슷해지게 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공을 발로 차고, 공을 상대방의 골문 안에 차 넣는다는 형식은 있었으나 일관된 규칙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공을 손으로 잡고 뛰기도 하고, 상대를 향한 거친 몸싸움이 난무하기도 했다. 심지어 경기 시간도 90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경기 때마다 말다툼과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1848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모인 이들이 ‘케임브리지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1863년에 런던 근처에 있던 12개의 팀이 모여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를 만들었으며, 축구 규칙을 더 가다듬었다. 1873년에는 세계 최초로 축구 대회가 만들어져서 진행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FA컵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다 포함해 전국의 모든 팀이 나올 수 있는 대회였다. 게다가 FA컵은 세계 최초의 축구 대회였다. 지금이야 무수히도 많은 축구대회가 있지만, 여러 팀들이 모여서 정식으로 경기를 치르고 우승팀을 가리는 대회는 FA컵이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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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세계를 주름잡던 강국은 영국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가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 진출해서도 축구를 즐기곤 했다. 게다가 꼭 식민지가 아니라도 여러 나라에 상업적 거래를 위해서 진출하기도 했고, 그 나라에서 계속 축구를 즐겨하곤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본 현지인들 중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축구는 공과 빈 공터, 골대만 있으면 할 수 있었기에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기 쉬웠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FA컵 역시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FA는 Football Assosiation을 의미한다. 스페인에서는 '코파 델 레이(Copa del Ray)'라는 이름의 토너먼트 대회가 있는데, 국왕컵을 의미한다. 이 대회는 영국에서 시작된 FA컵과 성격이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에서도 대부분 이런 형태의 축구대회가 생겨났다.


그리고 각국마다 여러 축구팀들이 모여 1년에 한 번씩 경기를 하는 형태인 리그 형태의 경기도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형태인데, 그것이 축구에 적용되어서 그런 것인 것 같았다. 프리미어리그는 총 20개의 팀이 홈과 어웨이로 번갈아가며 상대팀과 경기를 치른다. 한 팀이 치르게 되는 경기수는 한 시즌에 38경기. 모든 경기가 끝나고 난 후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방식이다.


잉글랜드의 축구리그는 1888년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창립되며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최초로 창설된 전국 단위의 리그였다. 초기에는 12개 팀이 참여했고, 점차 규모가 늘어가면서 1부리그와 2부리그로 나뉘고, 3부리그와 4부리그도 생겼다. 그리고 4부리그 밑은 아마추어로 구분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최상위 리그였던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꾸며 새롭게 창립되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전국 단위 리그 형태를 지닌 대회들이 생겨났다.


오래전 배가 고팠던 인류가 사냥을 위해 시작한 행위에서부터 축구는 시작했고, 여러 형태로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다가 19세기 영국에서 정한 규칙대로 경기를 하면서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되었다. 이후 몇 번의 규칙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축구의 모습과 비슷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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