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시지프 신화>의 공통점
<페스트>, <이방인>과 같은 소설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 그 역시 축구를 좋아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축구에서 배웠다.”
그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부조리란 쉽게 말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살아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로 절망적인 한계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다만 알베르 카뮈는 세상이 부조리하니까 당신이 무엇을 하든 세상은 변하지 않을 테니 큰 기대감 없이 대충 살아가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부조리에 맞서서 '반항'하라고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세상은 부조리한 일들로 가득하다. 당장에 뉴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은 그 자체로 너무나 부조리하다. 내 눈 앞에 있는 여러 일들을 보다 보면 정말 삶과 현실 자체가 너무나 암울하다. 착륙한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공항내에 설치되어 있던 벽에 부딪치는가 하면, 자신이 국민이 대표라고 이야기하면서 떠들어 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죄자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축구를 볼 때에도 그럴 때가 많다. 축구는 상대팀의 골대에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긴다. 득점하기 위해서는 상대 팀의 골대 근처라도 가야 할 텐데. 볼을 전진시키지도 못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상대의 수비로 인해서 공을 뺏긴다. 가까스로 패스를 통해 상대팀 골문 근처로 간다. 이때다. 슛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골대를 바라보며 슛을 시도한다. 이제 들어가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상대팀 선수의 발에 의해서 슈팅이 막힌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상대 팀의 압박에 막혀 아무것도 못할 때가 종종 많다.
압박. 이 단어만큼 현 시대의 축구를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없다. 압박이란 수비 방식의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이다. 수비수가 공격수의 공을 뺏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식의 수비 형태를 말한다. 그렇다고 공을 뺏으려고 무작정 달려든다고 해서 압박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는 팀으로써 하는 스포츠이고, 압박도 마찬가지로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한다. 한 선수만 공을 뺏어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수비적으로 좋지 않다. 다른 선수들도 함께 하지 않으면 공을 잡은 선수가 좀 더 여유있는 공간으로 패스를 하며 압박을 헤쳐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팀 단위로 압박을 해야 한다. 한 선수가 상대팀 수비수 a의 공을 빼앗기 위해 압박하면, 다른 선수는 a근처에서 패스를 전달 받을 수 있는 b가 패스를 받지 쉽게 받지 못하게 견제 하거나 패스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선수가 a선수가 패스할 수도 있는 c선수에게 달려든다. 상대팀 수선수 a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뻥하고 차거나, 혹은 뒤에 골키퍼에게 패스를 해주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수비하는 팀은 상대팀에 대해서 어떻게 압박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공격하는 팀은 상대의 압박에 어떻게 대처해서 공을 앞으로 전진시킬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압박이라는 개념은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에 의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대 축구에서 팀마다 상대팀을 압박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지 언정, 압박을 아예 하지 않는 팀은 없다.
우리가 보는 축구는 그야말로 압박과 탈(脫)압박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압박을 하기 위해서 선수들이 모여들게 되면 경기장의 다른 쪽 면에서는 넓은 공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일부러 활용하는 팀들도 있다. 수비하는 팀의 압박은 계속되고, 공격하는 팀은 어떻게든 그들의 압박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공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더 좋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압박하는 것과 압박을 이겨내는 모습은 우리의 삶과도 많이 닮아 있다. 무엇인가 큰 일을 마무리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해결해야 할 일이 또 생긴다. 축구 경기에서도 앞에 있던 한 선수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전진하지만 어느새 다른 수비수가 그를 막기 위해 나설 것이다. 힘들게 그 수비를 다시 제치고 다시 나아갔다. 이제 내 앞에는 골키퍼와 골문 밖에 없다 하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수비수가 다시 막아 선다.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부조리처럼, 축구에서도 한 골을 넣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우리를 막아서는 수비수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 <이방인>과 같은 소설로 유명하지만, <시지프 신화>라는 철학 에세이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지프 신화> 속에서 카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랍게도 축구와 닮아 있다.
시지프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신들에게 벌을 받아서 크고 무거운 공을 산의 정상까지 끊임없이 굴려서 올려야만 했다. 힘들게 산의 정상에 까지 공을 올려 놓으면, 공은 다시 떼굴떼굴 밑으로 굴러 내려갔다. 시지프는 다시 산을 내려가서 처음부터 공을 밀어 올려야만 했다.
시지프가 공을 위로 올리는 모습은 축구 선수들이 득점을 하기 위해 상대 수비수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는 모습과 무척 비슷하다. 공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상대 수비수들은 공격수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시지프가 있는 산 정상 부근은 바로 축구 선수들에게는 골대 부근이 될 것이다.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나고 그들은 편하게 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시 상대방의 공을 뺏어서 다시 골을 넣기 위해 시지프처럼 공을 굴려서 올라가야만 한다. 반대로 골을 넣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공을 뺏고, 이를 공격으로 전개 해야 한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일 때까지 공을 잡은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다툼은 계속 이어진다. 득점에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이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시지프가 공을 정상에 거의 밀어 올렸다가 공이 산 밑으로 떨어 진후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계속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수비수 앞에서 공격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그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다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다. 헛다리 짚기를 이용해서 상대 수비수를 뚫고 전진할지, 아니면 옆에 있는 우리 팀 선수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빠른 발을 이용해 빈 공안으로 공을 치고 달려서 시원하게 가볼지. 정답은 없다. 결국 계속 '반항'해보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예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방인>, <페스트>를 읽으며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많다. 때로는 세상이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축구 선수가 골을 넣기 위해 상대팀이 가지고 있는 공을 뺏고 골문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처럼, 그리고 시지프가 산 밑으로 다시 굴러 떨어진 공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반항’하며 살아 가야 한다.
삶 속에서 우리 앞에 어떤 부조리가 놓여 있을지 나는 모른다. 빈곤, 허무, 이별, 전쟁, 갑작스런 죽음 등등.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우리가 ‘반항’하더라도 그 부조리는 영원이 없어 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부조리가 없어지면 또 다른 부조리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말고, 기죽지 말고, 나와 함께 '반항'하는 삶을 살아 보자. 그 반항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