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문 앞에 있는데 발로 걷어낼 수 없는 공이 나에게 날아온다면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는 법이니, 그에 따라 보답을 받게 된다
축구 경기 중에는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들도 공을 손에 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아무런 의도가 없었는데, 공이 자신의 손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공을 향해 손을 뻗기도 한다. 2010년 월드컵에서 봤던 그 장면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우루과이와 가나가 맞붙었던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두 팀은 치열하게 싸웠으나 90분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렀고 연장 후반전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루과이의 골문 앞에서 혼전 상황이 벌어졌는데, 가나의 미드필더 안소니 아난이 헤딩으로 슛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때 골라인 앞에 있던 우루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가 공을 손으로 막아냈다. 주심은 그 장면을 보고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수아레즈는 레드카드를 받고 울면서 경기장 밖으로 퇴장했다.
핸들링 반칙으로 위기를 모면하긴 했으나 가나가 더 유리했다. 페널티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널티킥을 차러 나온 아사모아 기안은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점수도 1:1 동점. 두 팀은 결국 승부차기를 통해서 누가 4강에 진출할지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가 4:2로 승리하면서 4강에 올라갔다.
수아레즈의 핸드볼 반칙은 잘 못된 것일까? 아니면 팀의 승리를 위해 그 순간 자신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므로 인정받아야 할까? 수아레즈는 그 사건 이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아마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심지어 다른 천 명의 선수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다들 나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연장전 후반도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마침 골문 앞에 있던 그에게 공이 날아 왔다. 그는 어떻게든 공을 걷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그 공은 발로도 머리로도 건들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손으로 걷어 내는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아레즈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기얀이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기뻐했다는 점과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한 것이 진정한 ‘신의 손’이다. 난 대회 최고의 선방을 해냈다. 때때로 훈련할 때 골키퍼 역할을 했던 게 빛을 발했다.”
1986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있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발언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조국 우루과이에게 있어서는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다 깜짝 놀라며 ‘저래도 되나’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당시 가나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밀로반 라예바치는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수아레즈의 핸들링 반칙을 ‘부정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가나와 우루과이의 인연은 12년 뒤에 다시 이어졌다. 3년 전에 카타르에서 열렸던 월드컵 H조 조별 예선에서 그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H조에는 우리나라와 포르투갈도 포함되어 있었다.
팀당 두 경기씩 치르고 마지막 경기를 남겨 두었을 때 우루과이는 1무 1패, 가나는 1승 1패였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우루과이와 동일하게 1무 1패를 하고 있었다. 다만 득실차에서 앞서서 우리나라가 3위, 우루과이가 4위였다.
포르투갈은 16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우리나라, 가나, 우루과이 세 나라가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승부가 16강 진출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3,4위를 차지하고 있던 우리나라와 우루과이 모두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는 전반 5분 만에 선취골을 허용하고 수세에 몰렸으나 잘 버텼고, 전반 27분 김영권이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전 정규시간 다 끝나고 주어진 추가 시간에 황희찬이 역전골을 넣으면서2대 1로 승리했다. 하지만 16강 진출 여부는 같은 시간에 진행하고 있었던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었다.
다만 우리가 승리하면서 다급해진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우루과이 대표팀이었다. 그들은 가나를 상대로 2대 0으로 이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대로 끝나게 되면 우리나라와 승점도 동일하고, 득실차도 동일하지만, 다득점에 뒤져서 16강 진출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루과이 선수들은 한 골을 더 넣기 위해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득실차에서 앞서게 되어 16강 진출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조별 리그 순위는 승점, 골득실, 득점수가 많은 순서대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를 가나 선수들도 눈치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거기서 한 골을 더 먹히고 지든, 그 상태에서 지든 조 최하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12년 전 자신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우루과이를 잊진 않았다. 자신들이 올라가지는 못한다면, 우루과이도 올라가지 않기를 바랐다. 남은 시간 그래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수비하고, 우루과이의 공격들 다 걷어냈다.
경기가 먼저 끝난 우리나라 대표팀은 다 같이 둥글게 모여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를 지켜봤다. 우루과이가 한 골을 득점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 다행히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고,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하게 되었다. 2010년에 경기 후 웃을 수 있었던 우루과이의 공격수 수아레즈, 하지만 2022년에는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내가 지키고 있는 골문 앞에서 발로 걷어낼 수 없는 공이 날아온다면 나 역시도 손을 이용해 걷어낼 것 같다. 그 순간이 더욱 절체절명의 순간이면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자신의 나라가 처한 패배의 위기를 그렇게 해서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한다면 그역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경기가 끝나고, 여러 기자들 앞에서 내 손이야 말로 '신의 손'이라는 말을 하진 않고, 그 순간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볼을 걷어내야 했음을 이야기한다면 어땠을까? 12년 뒤에 만난 가나가 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공을 막으려 하진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사자성어는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는 말인데, 원인과 결과는 서로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가까스로 포르투갈을 이기고, 가나가 끝까지 우루과이와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