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떠오르는 태양처럼

by 아름다운 관찰자

KTX 고속열차 안이다. 오전 7시지만 서울을 오고 가는 정기권 승객들이 반 이상이다. 고속열차 안에 있으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매일 볼 수 있었다. 결혼 후 엄마가 되어 집에만 있을 때부터는 산책하면서 주로 저녁에 지는 해를 보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해는 점점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이 떠올라 우리가 교육원에 이르렀을 때는 환하게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다소 세찬 초봄의 찬 바람은 우리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었다. 저번 달만 해도 아이와 난 추운 겨울을, 따뜻하다 못해 살짝 덥기까지 한 정신병동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며 보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봄을 병원이 아닌 대학 교정 안에서 맞이하며 걷고 있다. 인생이 어디로 방향을 갑자기 틀지 몰라 나의 삶은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스릴이 넘친다. 교육원이 대학 캠퍼스 안에 있기 때문에 입시의 지옥을 통과한 후 한참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젊은 청춘들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만약을 대비해 아이가 수업을 마칠 때까지 학교 안 카페와 그 주변에서 나만의 시간을 아무 방해도 없이 몇 시간씩 갖는 것도 완전 특권이다.


청강생의 신분이었지만 아이는 정식 교육생처럼 다니고 있다. 교육원 측에서는 수업 첫날부터 오면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부터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날 기술교육원에 지원자가 200명이 넘었는데 약 80명 정도만 선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단순히 정원이 채워지지 않아서 아이를 청강생으로 받아 준 줄 알았는데 교육원 측에선 약 120명의 다른 지원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격도 완전히 갖추지 못 한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합격증을 보내고 다른 교육생들과 똑같이 아이에게 학생증을 발급하고 개인 사물함까지 준 것이었다. 학생증이 있으면 기술교육원이 있는 대학교의 모든 시설을 대학교 재학생들처럼 똑같이 이용할 수 있고 대학 기숙사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 이렇듯 교육원은 교육생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잘 되어 있었고 졸업 후 편입이나 취업 어느 길을 가든 잘 이끌어 주시려는 의지가 확실히 보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여전히 은총 가운데 있었다.


아이도 출석률 100프로를 목표로,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는 했지만 미리 연습하고 훈련하는 차원에서 정식 교육원생들과 똑같이 리포트를 제출하고 중간, 기말고사 등 교육원에서 시행하는 모든 시험을 응시하기로 했다. 첫날만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이 정식으로 다소 빡빡한 스케줄로 진행되었지만 아이의 얼굴에서 점점 빛이 나고 있었다. 흥미가 있었던 분야인 데다 수업내용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공기의 구조와 각 부분들 모두 영어로 익혀야 하고 전자전기,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의 내용이 걸쳐서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재미있어했다. 집에 와서도 검정고시 준비보다 그날 배운 과목들의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정리하는데 열정을 쏟았다. 집에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를 고속열차와 전철, 그리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그리 힘들어하지 않았다. 작년에 아이가 예고를 합격하였지만 일반고로 전학하여 잠시 학교를 다닐 때와는 달리 나의 마음에도 평안이 찾아왔다. 마치 아이가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아이가 이렇게까지 기술을 접목한 과학을 어려워하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에 와서 말하길 중학교 때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아이는 모든 과목 중에 그래도 가장 열심히 재미있게 공부한 과목이 과학이었고 그중에서도 전자파트였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고등 검정고시 모의 시험지를 풀면 공통과학이 한국사, 도덕, 국어에 비해 월등히 성적이 좋게 나왔다. 영어는 문법을 잘 이해를 못 하는데도 대부분 만점을 받았고 수학과 과학을 그다음으로 잘했다. 문과 체질이었던 학창 시절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아이는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초등 저학년 방과 후 수업 중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과목은 유일하게 로봇과학이었다고 했다. 나도 아이도 지금까지 배움의 과정이 모두 아이의 순순한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아이는 로봇 자동차를 설계도대로 나사와 드라이버로 조립하고 조종하길 좋아하였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진행되었던 심화과정인 코딩은 무척 어려워하였고 아이에게 특별히 학구적인 면은 안 보였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예체능 쪽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론 아이를 더 힘들게 하였던 것 같았다.


아직 내면의 성장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와 주변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기가 좋아해서 선택한 것인 줄 착각하고 떠밀려서 하기 쉽다. 사실 아이는 예체능을 선호하였던 엄마의 열망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 엄마나 선생님들한테 무척이나 인정받고 싶어서 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을 열심히 해 왔던 것이었기에 항상 버거움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져 마음까지 병이 났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은 계속 지금의 상담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던 아이가 정신적, 정서적으로 아프면서 아이는 자기의 길을 찾아가게 된 셈이다. 아이는 항공전문정비사가 되어야겠다는 확실한 목표 아래 생생하게 살아났다. 알아서 음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2주 가까이 토하지를 않았다. 한약을 먹으면서 체력이 다시 올라왔고 마음이 살아나면서 정신과 약도 불편해져서 용량도 줄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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