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두려움
이번 봄은 유난히 날씨가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다. 봄이 오는 듯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가 쌀쌀맞은 바람으로 인해 추위에 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봄은 왔지만 차가운 바람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진행형임을 알리는 듯했다. 아이에게 두려움이 생겼다. 낮에는 재미있게 수업 들으며 잘 보내지만 밤만 되면 밀려오는 슬픔과 우울함으로 잠들기 어려워했다. 그런 감정들이 쌓여 또 통제가 안되어 지금 다니고 있는 항공정비사 과정도 중간에 그만둘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잘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지만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을 때나 에스컬레이터 탈 때 다시 시작된 환청처럼 들려오는 안 좋은 말도 아이의 두려움을 더욱 커지게 했다.
난 아이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보았다. 자기는 잘 해내고 싶고 잘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 봐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초등 3학년 때부터 들어왔던 죽음을 유혹하는 환청 같은 소리는 올란자핀을 쓰면서 당분간 안 들렸었는데 다시 시작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 때문에 자신을 탓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절대 없다고 했다. 환청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율신경계와 같이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네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지만 사실 그 사자는 목에 줄이 단단히 묶여 있어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함을 강조해서 알려 주었다. 허상임을 인지하고 아는 순간 아이는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계속 떠올라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아이 스스로 대처하기 힘들기에 분명 다른 도움이 꼭 필요하다.
교수님은 올란자핀을 줄여서 그럴 수 있으니 크게 불편함이 없으면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라고 하셨다. 올란자핀은 손떨림이 있어서 10mg에서 5mg로 용량을 얼마 전 줄였었다. 그래도 조금 전의 기억을 잘 못하게 해서 아이는 임의로 다시 반으로 줄여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2년 넘게 아이가 투병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찾은 약이 올란자핀과 데파코트, 아빌리파이 주사, 콘서타와 메디퀴넷, 웰부트린, 아티반과 리보트릴이다. 약의 구성을 보면 아이는 '청소년기 정서장애'란 포괄적인 진단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약의 사용 범위가 광범위하다. 조현병과 조울증, 우울증, ADHD, 강박, 불안장애등에 대응해서 하나씩 쓰이는 약들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일반 정신과 의원에서 맞는 약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지금에 와서는 이해가 된다. 이 중에서 아이는 우울증을 가중시킬 수도 있고 탈모와 체중증가 부작용이 있는 데파코트는 제외시키고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이는 일주일간 엄마와 같이 다니더니 수업을 들으러 홀로 가고자 했다. 난 한 달 정도를 적응기간으로 예상하고 비상시를 대비하고자 아이를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아이는 예상외로 일찍 독립을 선언하였다. 아이는 엄마랑 오고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자신은 저녁과 밤시간이 힘들기 때문에 그때 엄마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 다니는 것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데 있어 더 좋을 것 같고 그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해서 두말하지 않고 2주째부터 혼자 보냈다. 이번에도 아이를 믿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황을 다 선에 맡기고 난 어떤 상황이 생기든 아이와 함께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에게는 감정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오기 전에 필요시 약으로 잘 대처하고 엄마에게 바로 전화할 것만 당부하고 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씩씩하게 일주일을 잘 다녔다.
인생은 겉으로는 우리에게 고난과 고생을 주로 주는 듯 하지만 사실 눈을 크게 뜨고 잠잠히 지켜보면 그 가운데 축복이 숨어 있다. 그래서 자신 있게 Everything is Okay! Don't Worry!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는 '주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확언하고 있고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부처님의 가부좌상도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잘 살펴보면 부처님은 앉아서 한 손은 무릎 위에 조용히 두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오케이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얼굴은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부처님이 전하고자 하였던 뜻도 생로병사 희로애락 그 어떤 일이 인생에 찾아와도 결국 예수님처럼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괜찮다. 평안하라는 깨달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봄을 품은 바람은 아직 쌀쌀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