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딸이야!

작은 딸의 아픔

by 아름다운 관찰자

집 안에 질환이나 장애를 지닌 형제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형제에게도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아픔이 있게 마련이다. 가족 공동체로서 어쩔 수 없이 다른 형제의 질환과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어려움들을 함께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모가 아픈 형제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들고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건강하기 때문에 더 많이 배려하고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자기도 아직 어리고 한참 부모의 관심이 필요한 때인데 아빠는 일하면서 아픈 형제를 돌보느라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고 어쩌다 보더라도 잠깐이다. 엄마는 주로 병원에 가고 없을 때가 많고 아픈 형제에게 온 신경과 체력을 쓰고 왔기에 피곤해할 때가 많아 그런 엄마를 붙들고 있기도 미안하여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지도 못한다. 웬만한 일은 알아서 처리해야 하고 학교 다녀와서도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철이 들어버린다. 우리 집 작은딸이 그랬다.


작년 여름에 태안반도에 있는 풀빌라로 작은 딸을 데리고 단 둘이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낸 작은딸에게서 위험 신호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작은딸은 부모와 아픈 언니에게 화가 잔뜩 나 있는데 참느라 늘 짜증스러워했고 그로 인해 눈에 띄게 에너지를 잃고 우울함에 갇히기 직전이었다. 비용이 들더래도 서둘러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작은딸이 다시 활력을 찾을 줄 알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 옆에 있는 엄마의 마음이 언니에게 온통 가 있어서 유쾌하게 다녀오지 못했던 탓도 있으리라. 태안의 바닷가가 주는 경치로 인해 딸의 기분이 나아진 것은 잠시였고 일상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는 전처럼 늘 피곤해했고 기운 없이 겨우 학교를 다녔다. 같은 반 친구들 하고도 대립하고 갈등을 겪는 일이 잦아졌고 급기야는 학교를 다니기 싫다는 말까지 나왔다. 잘 기억하질 못해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잘 빠뜨리고 물건도 잘 잃어버렸다. 우울감이 더 짙어져 가는 딸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딸은 모르는 사람과 자기 문제를 얘기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후 추석 때도 남편이 아주버님네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작은딸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왔지만 작은딸은 무기력하게 누워 있으려고만 했고 학교도 계속 조퇴를 했다. 시험기간이 다가왔지만 전혀 힘이 나지 않아 공부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길래 작은딸에게 다시 상담을 권했더니 자기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상담을 수락했다. 급한 대로 나의 상담 선생님께 도움을 구했고 선생님은 아이가 원할 때 바로 하는 것이 좋겠다며 흔쾌히 그날 늦은 오후에 시간을 내주셨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또 저항감이 밀려왔지만 딸은 약속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왔다. 어색함과 거부감은 여전히 있었지만 엄마 없이 단독으로 상담은 진행되었다. 상담을 받고 나오더니 엄마가 왜 상담을 받는지 알겠다며 속이 많이 후련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당당하게 요청했다. "이제는 엄마 힘든 것 더는 안 들어줄래. 그건 엄마가 어린 나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아빠도 내 앞에서 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야. 나도 생각해 줘!"


그 말을 듣고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적으로 아픈 큰딸아이로 마음이 너무 아려서 작은딸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작은딸까지 상처받고 아파지는 건 순전히 시간문제로 보였다. 아픈 큰아이로 날마다 가슴이 매여 수시로 눈물이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이성을 찾았다. 그리고 아픈 언니에게 하는 것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시간이겠지만 작은딸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작은딸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은 작은딸에게만 온 마음을 쏟으려 노력했다. 아빠도 작은딸 앞에서 더 이상 슬픔을 내비치지 않고 작은아이를 더욱 자상하게 보살펴주었다. 대신 회사를 출퇴근할 때 홀로 차 안에서 날마다 울었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아이가 무엇이 가장 속상한지 들었고 아이의 요구사항을 존중했다. 자기가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불이 꺼져 있고 모두가 자고 있는 것이 가장 싫다고 했다. 그래서 작은딸이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엔 우리 부부 모두 깨어 집 안에 불을 환하게 밝혀두고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고 단 10분이라도 얼굴을 마주 보고 차근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음고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생활을 마지막까지 해 낸 작은딸을 위해서 제주도 여행도 계획해서 다녀왔었다. 그때는 전과 달리 엄마가 집에 두고 온 언니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매 순간 자기와 함께 여행을 즐겨서 고마웠다고 했다. 그 뒤로 아이는 차츰 정신적인 안정감을 다시 회복했다. 그리고 상담을 계속 받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했다. "언니에게 혹시라도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그리고 아픈 언니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기에 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어. 난 내 할 일에만 집중하며 살겠어." 작은딸은 언니의 문제는 부모에게 완전히 맡기고 정신적으로도 부모로부터 점차 독립해 자기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더욱 성실히 하였다.


아픈 형제를 두고 있는 아이도 가족 구성원 모두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혀 자신을 조율해 가려 늘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점을 당연히 여기거나 스스로 잘한다고 너무 혼자 내버려 두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나에겐 필요했다. 아이가 스스로 잘 지내고 있음을 고맙게 여기고 있음을 수시로 표현하고 칭찬하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아픈 형제에게만 온통 가 있으면 건강했던 아이에게 아픈 형제의 안 좋은 행동들이 무의식적으로 학습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형제간 유전적인 형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이 계속 쌓이게 되면 다른 아이도 아플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어렵지만 작은 딸을 위한 에너지도 아껴두고 만날 때마다 최대한 표현했다. 그 뒤로도 언니가 충동조절이 잘 안 돼서 계속 입퇴원을 반복하였지만 자기에겐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부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을 작은 딸이 어느 날 대화 도중 말하였다.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작은 딸의 마음이 어느덧 부쩍 자란 것 같아 대견하고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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