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화려한 뷔페 & 맛없는 대화

by 아름다운 관찰자

얼마 전 어렸을 적에 함께 잠시 살았던 외사촌 언니의 큰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멀리 광주까지 다녀왔다. 전에는 친척들의 결혼식이 있으면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되어 잘 가려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외가 쪽 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자원하여 동생들을 대신해 대표로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였다. 외사촌 언니는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전기 사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하여 부유하였는데 며느리가 되는 신부 쪽은 언니네 보다 더 부유하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장 앞에는 축하화환들이 즐비하였고 유명한 정치인들이 보낸 화환들도 눈에 띄었다. 주례도 어느 국회의원이 하였는데 서로가 존중할 줄 아는 민주적인 가정을 이루어줄 것을 당부하는- 주제가 명확하면서도 간결하고 짧은 주례사였다.


난 내심 결혼식 뷔페가 기대가 되었다. 죽 한 바퀴 돌면서 뷔페 음식들을 먼저 훑어보았는데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빛깔이 좋아 무척 맛있어 보였다. 먼저 거동이 불편하신 큰외삼촌을 대신하여 음식을 한 접시 골고루 담아 드렸다. 그러고 나서 샐러드와 먹고 싶은 것 조금씩 담아 와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순간 내 혀를 의심하였다. 요 몇 년간 이렇게 맛이 없는 음식을 먹어보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부모님이 가득 담아 오신 접시들의 음식들도 양해를 구하고 종류별로 한입씩 먹어보았는데 충격이었다. 겉만 번지르했지 고기는 무척 퍽퍽했고 심지어 하나같이 음식의 간도 맞지 않았다. 웬만하면 실패할리 없는 호박죽과 전복죽조차 밍밍했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 맛있게 하면 초대한 손님들의 양을 다 맞추어 낼 수 없기에 구색만 갖추고 맛은 일부러 없게 만들기로 한 웨딩홀의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적인 생각조차 든다. 부모님은 워낙 검소하시고 음식을 남기시는 법이 없기에 맛이 없어도 다 드셨지만 함께 앉아 음식을 드셨던 큰외삼촌과 작은 외삼촌은 음식을 거의 남기셨다. 나도 처음 가져왔던 한 접시로 수저를 내려놓았고 남은 시간 동안 블랙커피만 들이켰다. 왠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축하해 주러 온 하객들을 호구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음식이었고 화려함을 뽐내지만 알맹이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외가 식구들과의 대화도 그리 맛있지 않았다. 아니 맛이 없었다. 서로를 만난 반가움은 잠깐이었고 곧이어 나를 향해 왜 좋은 학벌을 두고 집에서 주부로만 있는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치아교정은 지금껏 왜 안 했는지 등을 대놓고 물어보셨다. 심지어 부모님이 지원해 주셨던 학비도 모두 토해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례한 말들을 나에게 스스럼없이 했다. 석가모니가 인간의 고통의 근본 원인을 찾고, 그 해결 방법을 깨닫기 위해 왕자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궁궐을 뛰쳐나간 것처럼 나도 알고 싶었다. 무엇이 나에게 참 만족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와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통의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세상이 화려한 뷔페처럼 보이나 그 속에서는 결코 참맛이 없었기에 나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진리를 알고 싶어 몸부림치고 헤맸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외가 쪽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에게 돈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면 난 돈을 추구했을 것이고 학벌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면 학벌을 열심히 추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결국 사람들이 돈과 학벌이 있든 없든 궁극적으로 그냥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싶었을 것이고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과감히 떠났을 것이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결혼식장을 뒤로하고 큰 이모가 누워계신 근처 요양원에 들려 잠깐 뵙고 드디어 조용한 시골집 길목에 들어섰다. 나는 광주에서 바로 헤어지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시골집에 들러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부모님은 필요한 물건이 있어 나를 마을 입구에 내려 주고 마트로 바로 가셨기에 난 한적한 시골길을 음미하며 홀로 자유롭게 걷을 수 있었다. 곧이어 싱그러운 가을 내음이 나를 포근히 감싸 안고 위로해 주기 시작했고 난 기쁜 마음으로 시골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시골집 마당의 잡초들을 친정어머니와 함께 정리하고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각종 김치들과 마당에서 딴 호박잎을 쪄서 쌈장에 찍어 먹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바로 이 맛이야 하고 난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고 밥을 두 공기나 뚝딱 비웠다. 화려한 뷔페가 주었던 공허하고 실망스러웠던 맛은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손맛으로 대체되어 그날 밤 나는 진수성찬의 황홀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