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동”
종소리가 울리고 모두들 밖을 향해 뛰어간다. 교문을 열고 밖을 나오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반긴다. 구름 속을 걷는 듯한 하얀 안개가 눈 앞을 가로막고 있다. 흐릿한 물체들 속에서 눈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앞을 향해 걸어간다. 어둡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 속에서 어떠한 형태를 찾고 있다. 작은 점이 깜빡인다. 불빛을 향해 걸어간다. 반짝이는 불빛을 향해 걷다보면 마치 존재하지 않은 듯 어느새 안개는 사라진다. 눈 부신 그 곳에서의 걸음은 느리게 된다. 발도 엉거주춤 걷고 눈은 뜨지 못한 채 걸어간다. 흐릿한 물체가 뚜렷한 물체로 보이는 동안 눈 앞이 보일 듯 말 듯한 무언가가 아지랑이가 피듯이 꿈틀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앞을 향해간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형체모를 물체를 향해 돌진한다. 쾅!
“앗! 이건 뭐지?”
굉음을 내며 부딪친 기둥은 부딪친 나의 부주의에 화가난 듯이 울림소리를 낸다. 아픈 머리를 비비며 일어서면서 기둥을 바라보았다. 불빛으로 착각 하였던 기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두커니 서 있다. 기둥을 지나 앞을 향해 걷는다.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며 걷는 동안 앞에 무엇이 보이든 상관없다. 통증에만 몸은 신경을 쓸 뿐이다. 걷다보니 어느 새 친구가 팔짱을 낀다.
“야, 너 또 부딪쳤어? 넌 맨날 부딪치고 넘어지고 남아나는 뼈가 없겠다.”
친구는 엄마보다 심한 잔소리를 한다.
“오늘 시험 잘봤어? 난 오늘 집에가서 바로 무릎을 꿇어야겠어.”
친구의 말에 아픈 머리가 더 지끈거린다. ‘어쩌지. 나도 어제 시험을 망쳤는데……’ 주머니 속에 구겨진 시험지를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우물쭈물 하는 나의 표정에 친구는 신경이 쓰이나보다.
“괜찮아. 학생부에도 기록 안 되는 시험이래. 너가 잘 못봤으면 다들 똑같아.” 친구의 위로에 미소로 답했다.
터벅터벅 집에 도착하자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펑펑 울면서 방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에 TV를 보면서 웃고 떠들던 부모님께서 방문을 두드리셨다.
”왜 무슨일인데, 나와서 말해봐.!“
”시험을 봤는데 망쳤어.. 그냥 내버려둬“
방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온 엄마는 책상위에 구겨진 시험지를 보고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공부를 안하고 놀기만 하면서 무슨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생각해. 그냥 잊고 밥 먹어!“ 친구의 잔소리와 다르게 엄마의 잔소리를 가슴을 후벼판다. 잔소리의 스킬은 누구도 엄마를 따라올 수가 없다.
엄마의 잔소리에 책상을 쾅 쳤다. 아차 싶었다. 너무 아파서 손가락을 오므린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갱년기인 엄마와 사춘기 딸의 기싸움에 아빠가 엄마를 방에서 내보낸 후 문을 닫고 울고 있는 나를 토닥인다.
”너가 시험이 어려웠으면 다른 친구들도 시험이 어려웠을거야. 항상 좋은 점수만 받으면서 살아 갈 순 없어. 언젠가는 0점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100점을 받을 수도 있는 거야. 그래야 100점을 받을 때 더 기쁠 수 있어. 울지말고 다음에 시험을 잘보면 되니까. 다음 번 시험은 잘 볼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보자. 아빠가 도와줄게.“ 역시 우리 아빠다.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아빠 덕분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아빠의 위안에 슬픔이 복받쳐서 아빠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다 울다지쳐 잠들었다.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서 학교에 갔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만 눈이 퉁퉁 부인게 아니었다. 친구는 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받았다고 했고, 절망적인 시험 점수에 학원을 더 등록한 친구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너희들이 모의고사를 처음 봐서 충격이 컸지? 특히 수학을 풀면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로 가득찬 시험은 처음일거야. 우리반에 가장 높게 받은 점수가 58점이다. 다들 충격받은 점수를 책상에 붙여 놓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
‘엥? 58점이 가장 높다고? 그럼 내 점수잖아!’
아빠 말이 맞았다. 시험이 나만 어렵다고 느끼진 않는다. 눈 앞에 흐릿하여 보이지 않더라도 빛을 따라 걸으면 된다. 그 빛이 유년시절에는 아빠였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